[온고을 문학산책] 시든 꽃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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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주말 조카 결혼식이 있었다. 호텔은 온전히 꽃세상이었다. 수국, 글라디올러스, 백합. 그밖에 이름을 알 수 없는 수많은 꽃이 구름처럼 하얗게 장식되어 있었다. 꽃이 너무 많아 조화려니 생각했다. 그러나 문득문득 맡아지는 꽃향기가 있어 자세히 살피며 만져보니 작은 꽃 한 송이까지 모두 생화였다. 세상에. 이 많은 꽃이 전부 생화라니. 꽃값이 많이 들었겠다는 현실적인 생각에 갑자기 환상이 깨지는듯해 픽 웃음이 나왔다. 꽃은 온통 흰색이었다. 순백의 결혼식장이 환하고 깨끗해서 좋긴 했는데 살짝 아쉬웠다. 분홍색 꽃이 섞였더라면 좀 더 새콤달콤한 분위기가 아니었을까 해서였다. 그러나 결혼식을 축하하기 위해 꾸며놓은 꽃장식이었으니 색깔은 아무래도 좋았다. 신부가 화이트를 워낙 좋아해서 정해진 컨셉이라니 축복할 일이다. 꽃도 아름답지만 신랑 신부가 꽃 못지않게 눈부셔서 흐뭇했다. 난 조카 부부가 부디 흰 꽃처럼 얼룩 없이 순수한 초심을 유지하며 결혼생활을 이어가길 간절히 빌었다.
예식이 끝나고 식사시간 도중에 전갈이 왔다. 식장 안의 꽃 중에서 마음에 드는 꽃이 있으면 가지고 갈 수 있도록 포장을 해준다는 것이었다. 꽃을 골라 로비로 가져갔더니 전담 플로리스트들이 꽃을 예쁘게 포장해주고 있었다. 역시 꽃을 받는 건 행복한 일인 것 같다. 난 욕심스럽게 꽃다발을 여러 개 만들어왔다. 수국은 크리스털 꽃병에 꽂아 책상에 두고 글라디올러스는 노란 꽃병에 꽂아 거실 장에 올려놨다. 그밖에 꽃들은 식탁과 거실 곳곳에 두었다. 눈송이같이 흰 꽃 무더기를 바라보고 있자니 갑자기 귀족이라도 된 듯 도도한 기분까지 들었다. 집안에 이토록 많은 꽃을 둔 적이 없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이틀이 지나자 뚝뚝 꽃들의 고개가 꺾였다. 화무십일홍이란 말이 무색할 지경이었다. 하루가 더 지나니 꽃잎이 우수수 떨어지고 백합은 누렇게 변했다. 시든 꽃은 음식물쓰레기에 버려야 하나? 그러기엔 꽃대와 오아시스, 꽃을 싼 종이까지 버려야 할 게 너무 많았다. 전에는 시든 채 말려서 일반 쓰레기에 버렸는데 이번엔 꽃의 양도 많고 더운 날씨 탓인지 상한 냄새가 너무 심해 말릴 수도 없었다. 20리터 봉투에 한가득 담긴 시든 꽃은 어느새 애물단지가 되어있었다. 떨어진 꽃잎을 치우고 꽃병을 씻어 말리고 주변을 청소하고 나니 꽃을 보며 행복했던 잠깐의 시간에 비해 노동의 대가가 만만치 않아 씁쓸했다. 사람도 시들면 이처럼 귀찮은 존재가 될까. 갑자기 쓰레기봉투에 담긴 시든 꽃이 꽃들의 일만은 아닌 듯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다. 때때로 난 나를 말할 때 어중간한 나이와 젊음을 달리 표현할 말이 없어 반 시든 꽃이라 말한다. 완전히 시든 꽃은 되기 싫은 까닭이다. 반 시든 꽃은 물을 뿌려주거나 햇빛을 피해 서늘한 곳에 두면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비참한 모습으로 폐기되는 시든 꽃과는 달리 기적까지는 아니라도 경이로운 반전이 있어 설렌다. 꽃이 시든다는 건 시간의 현상일 뿐 꽃의 본질이 아주 변하는 게 아니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탄식할 일도 아니다. 순환의 섭리 같은 거라고 이해하면 크게 애달플 일도 아니지 싶다. 영원히 시들지 않는 꽃은 이미 꽃이 아닐 터. 피고 지고, 다시 돌아오는 게 꽃의 순리 아니겠는가.
/최화경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09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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