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차꽃 같은 시를 쓰고 싶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1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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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꽃보다 화려한 단풍이 정신을 놓은 듯 한순간에 우수수 떨어지는 11월에 산을 찾았다. 풍경 때문에 외로워지는 내 마음은 더 쓸쓸한 풍경 속에서 위안을 찾고 싶었을지도 모르겠다. 오래전에 사찰이 있었던 절터 부근에는 아무도 돌보지 않아 야생이 된 차나무들이 있는 법, 싱싱한 잎 사이로 노란 산호초 같은 수술을 내뿜고 있는 차꽃을 발견하고 걸음을 멈췄다. 앙상한 나무들 사이에서 늘 푸른 잎사귀도 놀라운데 수줍게 핀 하얀 꽃이라니, 그 강인함과 우아함이 메마른 가지에서 잎 없이도 툭툭 피는 매화처럼 감동적이다. 더구나 앙증맞은 열매가 꽃과 동시에 맺혀있다. 사실 차나무는 열매와 꽃이 함께 있는 유일한 식물이다. 작년에 피었던 꽃의 열매가 올해 꽃필 무렵이 되어서야 씨앗을 맺기 때문에 일어나는 현상인데, 열매와 꽃이 만나는 나무라고 해서 실화상봉수(實花相逢樹)라고 부른다. 차꽃을 몇 개 따와서 녹차 우려낸 잔에다 띄워보니, 찻잔 안에서 다시 핀 꽃은 정말 아름답다. 물론 차꽃을 1주일 이상 그늘진 곳에서 말렸다가 찻잔에 2~3송이 정도 넣고 차꽃만으로 우려내어 마시기도 한다. 두통, 소화력 향상, 알코올 해독에 효과가 있다고 하니 맛과 풍류와 건강까지 챙길 수 있지 않을까? 차꽃은 겸손을 상징하고 꽃말은 추억이라고 한다. 하기야 좋은 사람과 마시는 따뜻한 차는 좋은 추억이 아니겠는가. 순백의 꽃잎 색깔은 백의민족을 상징하고, 다섯 개의 꽃잎은 신맛, 단맛, 짠맛, 쓴맛, 매운맛을 나타낸다고 한다. 차 한 잔에 우리 민족의 기상과 세상에서 겪는 인생의 모든 의미가 다 담겨 있는 것 같아서 찻잔을 든 손이 무겁다. 봄에 찻잎으로 피어날 기운까지 꿈틀거린다. 외로움이 향기를 갖는 11월의 차꽃, 푸른 잎은 겨울을 견뎌내고 하얀 꽃은 서리를 이겨내기에 그토록 맑은 향을 품을 수 있다고 본다. 그래서 스님들이 차를 좋아하는 것은 아닐까? 나는 술을 마시지 못하기 때문에 차를 좋아한다. 술에 차꽃을 재워 숙취가 없는 차 술을 만들기도 한다니, 차와 술이 영 못 어울릴 것도 아니지만 말이다. 찬 바람을 뚫고 피어나는 그 소박하고 순결한 꽃의 향기를 맡다보니, 차꽃 같은 시를 쓰고 싶어졌다. 겨울밤 혼자 조용히 차를 마시면서 차꽃을 닮아간다.
/김영기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1년 1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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