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칼럼-시인의 눈] 고전을 품은 여인의 곡선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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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하 노피곰 도다샤’로 시작하는 백제 가요 ‘정읍사’는 행상을 나간 남편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다 망부석이 되었다는 설화이다. 며칠 전 망부상을 보기 위해 정읍사 공원을 찾았다. 3층 정도의 계단을 오르니 쪽 진 머리와 긴 저고리에 치마를 입은 여인이 손을 모으고 있었다. 마치 달님에게, 돌아오는 남편의 발길에 밝은 빛을 비추어 달라고 빌고 있는 듯하였다. 날이 곧 어두워지니 장사는 그만두고라도 몸성히 돌아오기만을 바라는 마음, 그 여인의 마음으로 아양산에 올라보니 정읍시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이곳의 건축물은 다른 곳에서 느낄 수 없는 달의 원형을 닮았고 발을 디딤으로 느껴졌다. 곡선은 둥그렇게 내 안에서 파문이 일더니 물보라로 퍼져나가 그 선에서 멈추지 않고 손끝으로 전해졌다. 공원 주변은 모두 곡선으로 되어 있다. 여인상은 이제 고전이 되어 현재를 밝히고 있다. 곡선으로 된 계단, 여인상을 보려고 오르는 계단이 둥그렇게 한 계단씩 이어져 있었다. 여인의 마음이 보름달처럼 둥글게 퍼져 달빛이 먼 곳까지 길을 밝혔음을 표현한 것이 아닐까. 직선은 반듯하고 정확한 계산이 깔려 있다면 곡선은 보이지 않는 어두운 곳까지 살필 수 있는 세심함을 담았다. 이탈리아의 피렌체는 르네상스의 꽃을 피운 곳으로 유명한 작품들이 많다. 미켈란젤로는 메디치가 교황의 의뢰로 산 로렌초 수도원에 도서관을 설계하게 된다. 바로 세상의 어둠 속에서 깨어나는 라우렌치아나 도서관이다. 미켈란젤로는 친구에게 편지를 쓴다. 꿈속에서 둥근 계단을 보았는데 그것을 작품으로 표현하고 싶다고 말이다. 이 도서관은 이렇게 하여 탄생하였고 세계 최초로 둥근 계단이 있는 공공 도서관이 된다. 정읍사 공원도 라우렌치아나 도서관 못지않게 주변 경관과 함께 백제의 고풍스러움을 감출 수 없었다. 정읍사는 한글로 된 백제의 가요로 구전되어 오다가 악학궤범에 기록되어 천년 부부 사랑을 전하는 옛 노래의 고전이 되었다. 백제의 문화를 우리 고장에서 느낄 수 있어서 참 다행스럽다. 고전이 책으로만 한정되어 도서관에서만 볼 수 있다면 불행한 일이다. 도서관에 들어가지 않아도 공원을 거닐며 옛 선인들의 발자취를 향유할 수 있다면 더 좋은 일이 아닌가. 우리는 이미 빛의 속도에 길들여져 있지만 걸어 다니면서 고전을 발견하고 느끼고 취할 수 있다. 여기 정읍사 아양산 공원에서 둥근 계단을 발견하고 계단의 선을 통하여 새삼 백제의 후손인 것 같아 자랑스럽다.
/김은유 시인 전북시인협회 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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