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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 문학산책] 시래깃국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1월 26일
ⓒ e-전라매일
겨우내 가마솥은 눈물이 끊이지 아니했다. 새벽에 일어나 어머니는 물을 끓여 식구들의 세숫물을 준비하고, 큰 솥에는 밥, 작은 솥에 시래깃국을 끓이면 온 집안에 된장국 냄새가 진동했다. 간 시래기를 쫑쫑 썰어 멸치 한 줌 넣고 집된장을 풀어 끓이기 시작하면 새까만 솥뚜껑이 부르르 떨며 어느 정도 눈물을 흘려야 드디어 아침을 먹는다. 아버지상은 참게장과 조기, 그리고 입안에 넣으면 녹아버리는 김이 올라왔다. 딸네들이 먹는 밥상엔 무 싱건지와 단무지 그리고 경종 배추를 소금물에 절여 들깨죽과 진한 생 젓국으로 담근 가닥 김치가 전부였다.
문고리가 쩍쩍 얼어붙고 상을 닦아 반찬을 차려놓으면 그릇들이 상위에서 미끄럼을 탔다. 혹독한 추위 속에서 우리는 어머니가 끓여주신 시래깃국이 속 다습게 하는 데는 최고였다.
오늘 아침 어릴 적 먹었던 시래깃국을 끓였다. 들깨를 갈아 붓고 멸칫국물을 내고 청양고추도 넣고 오랫동안 끓였다. 갑자기 오빠 생각이 났다. 뜨끈한 국물을 좋아했던 오빠였는데 한 달 전 오빠는 우리 곁을 떠나셨다. 우리는 만나고 헤어지는 연습을 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런 연습도 없이 오빠를 보내야만 했다. 달은 하나이지만 달빛은 천 군데를 비춘다는 말이 있다. 그렇다. 오빠는 한 분이었지만 오빠의 덕을 본 사람은 수없이 많다. 그날도 해가 일찍 저물었으나 어머니는 외가에서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오빠와 나는 아홉 살 차이지만 아버지 돌아가신 후 오빠가 아닌 나의 보호자였다.
몸이 약한 동생을 위해 햅쌀을 씻어 안쳐주고 오빠는 캄캄한 밤을 데리고 고기를 사러 갔다. 그사이 난 모락모락 아궁이에 불을 지피다 그만 불똥이 솔가지에 붙어 불을 내고 말았다. 불덩이가 무섭고 혼자가 무서웠던 밤. 마침 오빠가 돌아와 불을 끄고 방안에 눕혀 나를 안정시켰던 일. 그리고 방학 숙제는 오빠가 있어 걱정할 일이 없었다. 오리를 만들어 나뭇가지로 목을 고정하고 여러 날 그늘에 건조 시켜 개학 날 학교까지 데려다준 일. 덕분에 만들기 상은 내가 받았던 오빠와의 추억이 많다. 그뿐이랴. 시골에서 도회지로 진학시켜 하숙비를 대주며 공부를 시킨 오빠였다. 식솔을 거느리며 효자로 살기 위해서 자기를 억제하며 희생만 했던 오빠. 그래서 살아가면서 은혜를 꼭 갚으리라 했는데 살다 보니 이렇게 되고 말았다.
입동이 지난 월요일 비가 내렸다. 갑자기 수술하게 되어 퇴원 후 수술 자리가 아물면 바로 오빠를 뵈러 요양병원에 갈 계획을 세웠다. 꼭 갈 테니 며칠만 기다려주세요. 했는데 비바람이 어지럽게 부는 날, 돌아오지 못할 먼 곳으로 이사를 하고 말았다. 오빠는 기다려주지 않았지만 나는 오빠한테 지금 가고 있다. 만경강 갈대밭을 거닐며 마른 풀씨를 뽑아 강물을 핑계 삼아 울고, 내일은 영화를 핑계 삼아 울 것이다. 우리가 살았던 시골집에는 누구를 위한 것인지 흙벽엔 마른 시래기 바람에 오들오들 떠는소리가 눈물에 젖어있다. 주인 없는 멍멍이의 컹컹거리는 소리도 더 들을 수가 없다.
이렇게 잠시 살다 떠나간 오빠를 생각하면 이별은 짧지만 슬픔은 너무나 길다는 생각이 든다. 오늘 또다시 시래깃국을 끓인다. 멀리서 오실 오빠를 위해 뜨끈한 시래깃국 한 그릇의 맛과 냄새를 그대로 전하고 싶다. 간은 나의 눈물로 하련다.

/안 영
전북문인협회 위원장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1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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