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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고을 문학산책] 꽃무릇을 손에 쥔 여인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09일
ⓒ e-전라매일
10월 어느 날, 화산공원 정상을 향해 올라가다가 정상에서 내려오는 한 여인을 만났다. 그 여인은 한 손에 모종삽을, 다른 손엔 푸른 풀을 쥐고 있었다. 요즘 새싹이 올라온 꽃무릇이었다. 그때 불현듯 꽃무릇에 대한 젊었을 때의 추억이 떠올랐다.
친구 중에는 오랜 연애 끝에 학교에 들어갈 나이가 된 아들까지 두었지만, 부모들의 반대로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이가 있었다. 죽어서 총각귀신 신세를 면하도록 하기 위해서라도 상투만큼은 틀어주어야 한다는 친구들의 주선으로, 11월 하순 어느 날 고창 선운사 도솔암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결혼식을 마치고 내려올 때였다. 겨울이 코앞인데도 길가 계곡에서 이름도 모르는 푸른 식물을 발견했다. 직장 동료 중에 선운사로 춘란을 캐러 다닌다는 말을 들은 기억이 떠올라 춘란일 거라 여기고 한 움큼을 캤다. 화분에 담겨진 탐스럽고 싱싱한 모습을 보는 이들이 이름을 물을 때마다 고창 선운사에서 캔 춘란이라고 자랑했다.
여름 어느 날이었다. 싱싱하던 춘란이 갑자기 몸살을 앓고 있었다. 수분 부족으로 시들어가는 줄 알고 물을 흠뻑 주었지만 말짱 헛일이었다. 마침내 말라비틀어진 것을 버리는 셈치고 화분 채 화단 한쪽에 놓아두었다. 그런데 그 화분 속에서 기적이 일어났다. 가을이 되자 파릇파릇한 새싹들이 올라오고 있었다. 반가워서 얼른 거실에 들여 놓았다. 다음날 생물 선생으로부터 춘란이 아니라 꽃무릇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때까지도 꽃무릇의 이름을 아는 이들이 별로 없을 정도로 희귀한 식물이었다.
꽃무릇과 상사화(相思花)는 잎과 꽃을 함께 볼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같은 식물로 착각하는 이들이 많다. 하지만 생태도 모양도 엄연히 다른 식물이다. 꽃무릇의 꽃은 가을에 피고, 상사화는 여름에 핀다.
식물 중에는 보리처럼 겨울철에 뿌리가 땅속에서 얼었다 녹기를 반복하며 추위를 견뎌내야 꽃눈이 생겨 봄에 꽃을 피우는 것이 있다. 이를 춘화현상이라 한다. 백합이나 수선화처럼 알뿌리(球根)식물도 이에 속한다. 따라서 겨울철에 따뜻한 실내에만 보관된 꽃무릇에서는 푸르고 싱싱한 잎을 즐길 수는 있지만 꽃을 볼 수는 없다.
꽃무릇의 꽃은 동계훈련을 위한 군졸들의 출연을 예고하는 나팔수다. 꽃이 지면 푸른 제복의 군졸들이 우후죽순처럼 떼를 지어 출현한다. 다른 식물들이 추위가 두려워 잎을 물들이며 월동준비에 한창일 때 경쟁이라도 하는 듯이 당차게 솟아오르는 풋풋한 모습은 정말 환상적이다. 꽃무릇을 손엔 쥔 여인도 꽃보다는 그런 군졸들의 발랄한 모습에 매혹되어 욕심을 부린 거라 생각된다.
꽃무릇을 손에 쥔 여인이 꽃무릇에 대해 어느 정도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멀쩡한 식물이 용기 있는 한 여인의 손에 걸려 몸살을 앓으며 생고생을 할 거라는 것은 명약관화하다. 그리고 꽃도 피울 수 없는 이상한 식물로 전락되지 않을까 우려된다.

/이희근
전주문협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1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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