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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칼럼-시인의눈] 김장김치가 보고 싶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2월 15일
ⓒ e-전라매일
밴댕이 속 같은 고백 하나 해볼까. 요즈음 김장 김치가 보고 싶다. 늦둥이 아빠도 아닌데 아내와 단둘이 끙끙 담가서일까. 오늘도 퇴근 시간이 첫눈처럼 기다려진다. 알 수 없는 포근한 정이 내린다.
왜 그럴까. 불현듯 간물 속 배추처럼 생각이 잠기다 둥둥 떠오른다. 김장은 화합의 종합예술이요 사모곡이다. 가히 유네스코 무형 문화유산으로 등재된 이유를 실감한다.
10년 전일까? 늙은 고향에서 김장을 얻어오는 것은 더 이상 불효라는 짓이 들었다. 아직도 밤색 제사상은 다리를 절룩인 채 시골 뒷방에 완고히 살고 있다. 그러나 김장만큼은 무작정 팔순 노모로부터 모시고 왔다. 이듬해 마지막 단풍잎이 김장 개시 명령처럼 날아왔다. “독이란 관에 묻힐 때까지 모름지기 배추는 다섯 번은 죽어야 깊은 맛을 얻을 수 있다”(김종제 ‘깊은 맛’)고 했는데, 동지처럼 캄캄해져 갔다. 남들은 벌써 뻐꾸기 울 때 첫물 고추 두 물 고추 샀다는 소식이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배추를 고를 줄 아나? 간 칠 줄 아나? 새우젓 황석어젓을 아나? 하지만 겨울이 오기 전, 귀뚜라미처럼 베갯머리 김장이 속삭이기 시작했다. 처음 서너 해 김장은 첫애를 난산한 맛이었다. 귀하디귀했지만 맛있다는 소문은 들리지 않았다. 또 서너 해는 삼대독자에 시집온 어머니가 시부모 앞에 줄줄이 낳은 셋째 딸 맛이었다. 예쁘디예뻤지만 송구했다. 설상가상 작년엔 몹시 짠 사돈 맛을 내더니 올 김장은 싱거운 아들 맛이랄까? 그런데 어느 해부터 김장은 담그면 담글수록 소금에 전 어머님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하얀 행주로 닦아내는 붉은 고추 속에도, 자식 같은 단단한 육쪽마늘 속에도 어머님의 눈물이 숨어 있었다. 그리고 어머님의 슬픈 허리도 보았다. 골백번도 넘게 배추를 안고 씻어 주었을, 갖은양념치마를 골고루 입혀 주었을, 똥 싼 기저귄 양 뒷설거지하며 끊어질 듯 끊어질 듯 그 매운 허리. 어머님의 허리는 자식을 바다로 이끄는 강물이었다. 김장이란 어머니의 구불구불한 억새꽃 핀 들길과 예쁜 남새밭을 모시는 노을빛 축제였다. 전답보다 귀한 무형유산이었다. 나아가 희미해지는 이웃 간 나눔의 잔치였다. 오고 가는 한 포기김치는 고층아파트 벽을 삭히고 삭힐 희망의 가닥이 될 것이다. 수많은 양념 중에서 어느 유별난 맛이 아닌 골고루 버무려지는 공동체의 맛을 김장은 소망할 것이다. 주말 아침엔 내 몸도 한 포기 김장 통에 실려 고향으로 달려갈 것이다. 실패의 어머니에서 가보로 내려온 사모곡을 부르며….

/왕태삼 시인
전북시인협회 이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12월 1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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