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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 요일별 특집 종합

<서주원 작> 봉하노송의 절명 제25회-최후의 만찬 12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30일


호걸이 봉하부인의 빈 맥주잔에 맥주를 따랐다.

“아니 어머니, 무슨 또 걱정거리가 있으세요?”

“미국 식구들이 걱정 돼 그런다.”

“어머니, 제 처가 보기 보단 강합니다. 그러니 걱정 마세요.”

그미는 호걸이 잔에 따라 놓은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목이 몹시 타는 모양이다.

“띠리띠리띠리 띠디리리 띠디리리 띠디리리…”

호걸의 핸드폰이 울렸다.

“어 호연아!”

호걸의 여동생 호연의 전화다.

“어 미국에 있는 느네 언니와 방울이랑 통화를 좀 하느라고!…”

호연이 호걸의 핸드폰이 왜 계속 통화 중이었는지 물은 듯하다.

“KBS아홉시뉴스? 아차차 내가 깜박했구나. 뉴스를 보면서 맥주를 마시기로 했는데…어, 지금 아버지랑 어머니랑 거실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거든.…뉴스에 뭐가 나왔는데?…어…어…어머닐 다시 검찰에 소환하지는 못할거야.…아 참 걱정 말라닌까!…에잇, 그럴 리가 있나!…”

호걸과 호연의 전화통화에 귀를 기울이고 있던 봉하부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글쎄 걱정 말라닌까!…그럴 리가 없다고 했잖아!…어 그래.…그래 어머니 바꿔 줄게, 잠깐만!…어머니, 전화 받아 보세요!”

호걸이 건넨 핸드폰을 그미가 받았다.

“어 나다.…난 괘않다.…아버지도 괘않는데 그래 병원에서 퇴원한 뒤로 어때 몸은 괘않나?”

호연은 최근 병원에 입원한 바 있다. 박차대 게이트 발생 후,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가 하면, 계좌 내역을 추적당하는 등 모질게 시련을 겪고 있다. 해서 호연의 건강은 매우 좋지 않다.

호걸이 리모컨을 찾아서 들고 거실 벽면에 있는 TV를 켰다. KBS9시뉴스가 나왔다.

“…올해 들어 상장폐지 된 코스닥 기업은 모두 서른 곳, 코스닥 시장에서 진행되고 있는 대규모 상장폐지를 계기로 자신들의 권리를 되찾고 회사도 살리겠다는 소액주주 운동이 본격화되고 있습니다.…”

퇴출이 확정된 코스닥 상장사 소액주주들이 단단히 뿔이 나서 소송은 물론이고, 아예 경영권까지 내놓으라며 똘똘 뭉치고 있다는 뉴스다. 이어진 뉴스는 메이히로와 관련된 청와대 소식이다.

“메이히로 대통령은 오늘 제21회 중소기업 주간의 마지막 행사로 중소기업인 사백여 명을 청와대로 초청해 어려운 상황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중소기업인들을 격려했습니다. 메이히로 대통령은 중소기업인들이 지속적으로 기술을 개발하고 저탄소 녹색성장 산업에도 앞장서 달라고 당부했습니다.…”

TV화면에 메이히로의 얼굴이 나오자 봉하노송의 눈이 곤두섰다. 이승의 마지막 날 메이히로의 얼굴을 TV로 본 것이다. 가슴 속에서 울화통이 터졌는지 그는 맥주잔을 들었다.

눈 위에 혹인 메이히로의 얼굴이 TV에 나오자 호걸의 눈빛도 심상치 않다. 거칠어진 그의 눈에 적개심이 가득했다.

봉하노송과 호걸이 TV화면을 주시하자 호연과 통화를 하고 있던 봉하부인이 TV화면에 시선을 고정시켰다. 눈이 시린 뉴스를 흘겨보느라 그미는 핸드폰에서 흘러나오는 호연의 목소리를 귓전으로 듣는 듯 했다.

“올 여름, 유난히 견디기 힘들 것 같습니다. 예년보다 무덥고 비도 많이 올 거라고 기상청이 예보했습니다.…”

‘메이히로가 녹색성장에 앞장서 달라고 당부’하는 뉴스에 이어 ‘올 여름은 예년보다 무덥고 장마가 일찍 시작된다.’는 뉴스가 나오자 봉하부인은 전화통화에 집중했다. 봉하노송은 계속 이어지는 TV뉴스를 시청하면서도 그미와 호연의 전화통화에 귀를 세웠다.

“애들은 잘 있나?…목서방도 별고 없제?…”

2003년 2월 결혼한 호연과 목서방은 2005년 미국으로 건너갔다. 목서방은 뉴욕대 로스쿨에 입학했고, 출산을 위해 잠시 귀국한 호연은 2006년 6월, 서울에서 둘째 딸을 출산했다.

2004년 친손녀에 이어 외손녀를 본 봉하노송은 ‘딸딸이 할아버지’로 통했다. 그 해 그는 공석과 사석을 가리지 않고 손녀 얘기를 자주 꺼냈다.

2004년 11월, 봉하노송은 MBC 라디오의 한 프로그램에 출연했다.
“대통령님, 어떤 때 행복을 느끼십니까?”

프로그램 진행자가 이렇게 묻자 봉하노송은 이렇게 대답했다.
“안 풀리던 일이 딱 풀릴 때 행복을 느낍니다.”

“실타래 같이 뒤엉킨 국정 현안을 하나씩 풀어가면서 행복을 느끼실 듯한데, 올해 친손녀도 보시고, 외손녀도 보셨죠? 손주들도 대통령님께 큰 기쁨과 행복을 전해 줄 것 같은데요?”

“아 물론이죠. 손주들과 함께 있을 때는 정말이지 순간순간에 아주 큰 기쁨을 느끼는데요. 요새 가장 행복한 때는 손주들과 함께하는 시간입니다.”

그 무렵, 봉하노송과 봉하부인은 주말이면 아들 내외와 딸 부부를 청와대 관저로 불렀다. 두 손녀와 즐거운 시간도 보냈다. 주말이 아닌 주중에도 손녀들이 관저를 찾는 경우도 있었다.

봉하노송의 그런 각별한 손녀사랑은 친손녀와 외손녀의 구분이 없었다. 친손녀 방울이처럼 외손녀 두 명을 자전거에 연결한 유모차에 태우고 봉하마을의 도로와 산길을 달리기도 했다.

이 순간, 봉하노송은 외동딸 호연과 통화를 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 그미에게 “전화 좀 바꿔 달라!”고 말하고 싶다. 그러면서도 그는 그 말을 입 끝에 옮기지 못했다.(계속)


서주원 기자 / 입력 : 2018년 12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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