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니요.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할머니, 끝까지 참고 견뎌 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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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날 남원 119 구조대에 반지가 손가락에 끼어 반지 절단을 위해 소방서에 방문을 하겠다는 전화가 한통 걸려왔다. 전화를 끊고 우린 부랴부랴 장비들을 하나씩 꺼내왔다. 오랜 침묵을 깨고 소방서 앞 주차장에서 노부부를 모시고 한 아주머니가 걸어오고 계셨다. 거동이 불편하셨는지 딸의 손을 두 분이 꼭 붙들고 천천히 오시는 모습에서 가족의 애틋함이 느껴졌다. 한때는 저 두 분의 손을 잡고 걱정과 기대 속에 딸이 천천히 걸음마를 떼었을 텐데 세월은 활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지나 이젠 딸의 걱정 속에 걸음을 떼고 있었다. 우린 얼른 뛰어나가 인사를 건네고 자동차 문을 열어 주었다. 자리에 앉아 할머니의 손가락을 보니 금반지 두 개가 할머니의 손가락을 옥죄는 형태의 사고였다. 옆에 있던 딸이 몇 번 반지를 빼려고 시도를 했다가 오히려 손가락이 더 부어오른 상황이라고 설명을 해주었다. 할머니는 딱히 말씀은 없으셨지만 이미 찌푸린 미간으로 아픔과 두려움을 충분히 표현하고 계셨다. 첫 번째 반지는 반지 절단기로 수월하게 잘려 나갔지만 문제는 할머니를 소방서 까지 오게 만든 두 번째 반지였다. 종종 TV에서 개 목줄이 목을 졸라 살까지 파고들어 망상하게 말라 구조된 개의 목처럼 반지가 손가락 마디를 깊숙하게 조르고 있었다. 다시 할머니의 시선을 수건으로 가리고 작업을 시작했다. 반지 절단기의 진동이 손가락에 전달될 때마다 할머니의 몸은 움찔움찔했다. 급기야 “ 아파! 뜨거워!”라는 말과 함께 귀중한 물건을 품 안에 숨기듯 다른 손으로 반지 낀 손을 감싸 안고 품으로 가져갔다. 난감한 상황이었다. 다른 장비들은 첫 번째 반지를 절단할 때 이미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고 반지 절단기만 유일한 대안이었기 때문이다. “할머니 반지 절단기가 금속은 자르는데 사람 살엔 상처를 못 내요. 천천히 할 테니까 조금만 참으세요. 아셨죠?”라고 말로 안심시키며 작업을 이어갔다. 달리 방법이 없었다. 할머니의 어깨를 딸이 더욱 꼭 감싸며 할머니께 잘 참고 있다고 응원을 보내는 것 같았다. 몇 분의 시간이 더 흐르고 반지가 툭 하고 끊어지며 할머니의 손가락 혈색이 원래대로 돌아왔다. 걱정으로 굳었던 딸의 표정도 환하게 돌아왔다. “엄마 이제 엄마 손가락 안 잘라도 돼. 난 엄마 손가락 잘라야 하는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다고. 감사합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가슴이 먹먹했다. 시간이 지나 이 말은 내게 두 가지의 깨달음을 주었다. 첫째로 사고자의 마음이었다. 구조대에 접수되는 사고의 정도를 놓고 볼 때에 반지가 손가락에 낀 사고는 매우 위험성이 낮고 시급하지 않은 사고로 분류가 된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며 별별 상상을 다 하는 가족들의 마음은 얼마나 미어지고 애가 탔을까. 여러 사고를 경험하며 점점 사고자의 마음보다는 사고처리에만 집중하게 되는 나를 돌아보게 했다. 두 번째로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직업인으로 사는 삶에 대한 감사였다. 재미있게 봤던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에서 술집을 운영하는 동백이의 꿈은 기차역 분실물센터 직원이었다. 저 직원은 하루 종일 앉아서 사람들한테 감사하다는 인사를 받는다는 게 그 이유였다. 고맙다는 말, 감사하다는 말. 세상에 흔해서 아쉬움이 없었던 말이었다. 감사하다는 말을 듣는 직업이 그리 많지 않다는 깨달음을 주는 대사였다. 그 말을 듣는 직업인으로 산다는 것에 나 또한 감사함을 느낀다. 교통사고 현장에 도착해서 요구조자를 구조하면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빛으로 우리에게 감사의 인사를 건넨다. 119 구조차를 타고 시내 모퉁이만 돌아도 간 혹 동네 중고등학생들이 허리를 숙여 인사를 건넨다. 이런 직업으로 살 수 있음에 감사하고 그래서 더욱 열심히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훈련하고 뛰어야겠다는 마음이 생긴다. 아마 모든 소방관들이 내 맘과 같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작업을 다 마친 할머니께선 딸의 부축을 받고 일어나 세월에 구부러진 허리를 쭉 펴고 손으론 허리를 두 번 툭툭 두드리곤 다시 허리 숙여 감사하다는 인사를 몇 번이고 건네셨다. 우리는 그때마다 손사래를 치며 아닙니다 아닙니다를 앵무새처럼 반복하였다. 정문을 지날 때 센터 직원 두 명이 더 따라 나와 할머니의 가는 모습을 배웅하였다. 그리고 그땐 미처 이 말을 하지 못했다. “아닙니다. 할머니. 끝까지 참고 견뎌 주셔서 저희가 더 감사합니다. 부디 오래오래 건강하게 사세요. ”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06월 0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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