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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굴암 가는 길, 五體投地

실록의
무사귀환과 함께 뼈아픈 과거,
잘못된 정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체투지였을
것이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4월 26일
ⓒ e-전라매일
강화도까지 시종 이안에 참여했던 안의는 그만 병을 얻어 마침내 죽고 만다. 전쟁이 끝난 후 전주사고를 모본으로 3부를 재간행하여 춘추관·태백산·오대산·마니산·묘향산의 사고에 각각 봉안한다.
현재 남아있는 마니산본과 태백산본은 국보 151호로, 1997년 훈민정음과 함께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유네스코의 보호를 받는 소중한 문화재가 되었다.
실록은 그 방대함과 아울러 조선 시대의 모든 것을 총망라하고 있는 세계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운 귀중한 역사 기록물이다.
즉, 정치·외교·군사·제도·법률·경제·산업·교통·통신·사회·풍속·천문·지리·음양·과학·의약·문학·음악·미술·공예·학문·사상·윤리·도덕·종교 등 다방면이 수록된 백과사전이었음이다.
비록 지배층 위주의 기록이라는 한계에도 불구하고 조선의 모든 것이 담겨 있는 조선 그 자체였다. 전주사고본 마저 불타버렸다면 우린 역사를 잃은 민족이 되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주사고의 무사함을 보고 받은 선조는 “만약 그대들의 공로가 없었다면 다시 성조(聖祖)의 쉬용(晬容:임금의 화상)을 배알할 날이 없으련만 …‥ ”이라고 하며 눈물을 흘렸다고 전해진다.
사재를 털어서 올인 했던 안의와 손홍록에게 종전 후 두 번이나 종 6품의 벼슬이 내려졌지만 그들은 출사하지 않았다.
백성된 도리로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고만 했다. 나라의 근본을 지키는 것은 백성 된 도리로서 당연한 일이라고 여겼기 때문이다.
선조 자신도 종묘사직을 내팽개치고 피난이라는 미명 아래 도망가기에 바빴지만, 시골의 무지렁이 백성들은 그렇지 않았다.
비록 자신들에게는 아무 쓸모도 없는 종이 뭉치에 불과했음에도 나라의 역사를 담고 있는 신록을 목숨보다도 더 귀중하게 여기며 보존하기에 바빴다.
마치 엎드려 두 팔꿈치와 양 무릎을 땅에 대고 이마를 조아림으로써 최상의 예의를 표시하는 오체투지(五體投地)의 수행자를 떠올리게 한다. 신체를 구부려 내 몸의 가장 귀중한 이마를 상대의 가장 천한 발아래에 붙임으로써 공경을 표시하는 불가의 예법이었다.
민족의 가장 귀한 기록유산을 온몸 바쳐 이안하고 지키는 간절함은 그 어떤 것보다도 소중하고 신성한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가족도 계절도, 산속의 불편함도, 심지어 전란 중 피난길도 다 잊은 채 오직 실록과 함께 먹고 자고 뒹구는 삶 그 자체를 숙명으로 여기며 전념했다.
실록의 무사귀환과 함께 뼈아픈 과거, 잘못된 정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오체투지였을 것이다.
신선봉(635m)에서 월령봉(420m)까지의 9개 봉우리가 마치 말발굽처럼 내장사를 감싸며 병풍 치고 있는 모양이 이른바 “그 산(山)에 뭔가 중요한 것을 감추고 있다(藏)”는 내장산(內藏山)이다. 과연 이름 그대로 민족의 보배 조선왕조실록을 숨기고 있었으니 기막힌 작명이 아닐 수 없다.
실록이 내장에 도착한 6월 22일 ‘문화지김이의 날’을 택해 용굴암 가는 실록길을 걸으며 내장에 푹 안겨본다. 역사를 지키려 오체투지했던 선조들의 간절한 마음을 복기하면서.
“24시간 365일 임금 곁을 지키며/ 숨소리까지도 기록하던 사관들/ 모두 어디로 갔나요// 눈만 뜨면 임금 곁에서/ 기침소리까지도 옳다고 아부하던 고관들/ 모두 어디에 있었나요 임진년에// 시골의 서생 안의와 손홍록이/ 내장산 깊은 계곡 용굴암 은적암 비래암에서/ 눈비 맞으며 지켰다오 진짜로 쓴소리를// 그대들이 도망칠 때 백성들은 산속에서/ 외로운 밤 추위와 싸우며/ 자신들과는 상관도 없는 역사를 지켰다오// 피난길도 마다하고 1년하고 18일을/ 산짐승도 오르기 힘든 낭떠러지 바위길에서/ 오체투지 했답니다// 죽기 아니면 살기로 지켜냈답니다/ 도망가며 내팽개친 그대들의 역사/ 조선왕조실록을”/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4월 2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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