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10-30 23:30:04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15:00
··
·15:00
··
·15:00
··
·15:00
··
·15:00
··
뉴스 > 요일별 특집

[온고을 문학산책] 재스민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5월 11일
ⓒ e-전라매일
신록이 우거져서 온 산야에서 신차(新茶) 물이 고이는 듯, 입안의 단물 삼키기에 바쁜 5월이 왔다. 차 숲에 안개비라도 내리면 촉촉한 찻물이 우러날 것 아닌가. 차밭으로 가지 못하니 괜스레 창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린다. 화분의 차나무 한 그루에서 새잎이 쫑긋쫑긋 나와서 내게 손짓한다. 새 찻잎을 따서 씹으면 신차 맛이 입안에 고여 생기를 북돋운다.
움직일 때마다 내게 안겨드는 것이 무엇인가. 고요하게 깊은 숨결 뿜어내는 듯한 향. 거실 창문을 열고 창가에 재스민 화분에 눈길이 닿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얼마 만에 돌아온 임이던가.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는 임들이 형체 없는 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 그리운 얼굴들이 꽃잎에 어린다. 재스민 향에 젖은 찻잔을 나누는 듯하다.
꽃피는 4월을 바라기 바빴다. 흘러가는 시간에 쫒기는 듯, 남녘의 매화로 시작하여 봄의 절정을 이루는 벚꽃 잔치까지 꽃비를 맞으며 보냈다. 마침내 초록 물이 꽃불을 끌 때쯤이 되니 흰 꽃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르른 잎에 쌓인다. 배꽃도 피기 시작하고,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들이 들뜨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어려운 시대 선인들은 조팝나무는 조밥을 생각나게 하고, 이팝나무는 ‘이밥에 고깃국’을 연상하게 했다지.
재스민도 신비스러운 보랏빛으로 왔다가 향기를 품어내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힘겹게 피워낸 생을 말하듯 하얗게 바래는 꽃잎 앞에서 나도 깊고 내밀한 호흡으로 위안 받곤 한다. 도대체 그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냄새가 들어오는 내 신체의 기관인 코가 없으면 향을 느끼지 못할 건지. 그러나 가까이 가서 가끔 킁킁거려 보지만 결코 그 향은 코로만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글쓰기도 향기를 품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하건만, 문향(聞香)이나 향성(香聲)에 대하여 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건가. 들리는 듯 보일 듯 말 듯, 온몸의 세포를 쫑긋거리면서 꽃 주위를 돌아본다.
모든 향기 나는 꽃들은 그 꽃잎이 나무의 영혼을 담는 그릇인가. 어디에 있다가 나무의 가지를 통하여 꽃잎에 담기는지. 비록 실내에 있긴 해도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피기까지 공기와 물과 빛의 작용이 한데 모였을 것이다. 그 비좁은 그릇 안에서…. 나무가 살아가는 데 나는 가끔 물을 주었을 뿐이다. 얼마큼 물을 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내 감각으로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자란 녹차 잎을 따서 내가 먹듯, 사람은 태양과 바람과 물이 엉겨서 만든 영양을 먹고 탄생하는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만 한데 말이다. 재스민 향을 들을 수 있다면 식물과 같이 한 자리에서 그렇게 고요히 살 수 있을까. 생명의 신비를 어찌 다 알려고 한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도 나에게는 막막한 무지(無知)의 허약만 드러날 뿐이다. 끝까지 향내를 하얗게 내는 재스민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저 아름다운 생명의 몸짓에 찬탄만 토할 뿐이다.
몇 년 전이었던가. 재스민 꽃이 모두 하얀색이 되었던 5월 중순 무렵 주말에 서울의 아이들이 내려왔다. 어린 손녀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아! 냄새 하였다. 며느리는 ‘할머니 냄새’라고 덧붙였다. 재스민 꽃 냄새가 아니었다면, 쾨쾨한 냄새를 상기하기 쉬운 ‘할머니 냄새’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 재스민 향이 스며 있어 순수한 어린이는 금방 알아차렸던 것이다. 향(香)이란 말을 모르니 냄새라고 했다.
사람이 향을 낼 수 있다면 어떤 향을 낼 수 있을까. 사는 토양에 따라서 영육(靈肉) 간에 먹고 마신 것과, 정신과 마음에 따라서 사람도 분명 어떤 냄새를 지니기 마련이다. 모든 물상과 사람에는 그가 지닌 성질과 성격을 나타내는 분위기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그 어떤 생명 개체도 가지지 못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정신의 향을 내는 것이 사람다운 냄새가 아닐까. 빛바랜 세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 별 하나에서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협소한 시공에서 뱅뱅 돌며 어떤 삶의 향기를 남길 수 있을까. 후에 내 손자들이 할머니를 기억할 때면 재스민 고운 향을 떠올려도 좋겠다. 아니, 할머니를 볼 때마다 ‘할머니, 차(茶) 마셔요.’ 하는 애들이니까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재스민 꽃내음을 떠올리며 차를 마셔주면 더 좋겠다.

/조윤수
전주문협회원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2년 05월 11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정읍, 지원금부터 상권 혁신까지 민생경제 선순환 이끈다  
곰소만의 깊은 맛, 줄포대박젓갈에서 만나다  
제4회 김제 자원순환 새로보미 축제 10월 30일 개막  
장수군 민선9기 출범 100일, 성과를 잇고 군민이 체감하는 변화로  
대한민국 농업수도 과학으로 미래를 심다  
민생부터 첨단산업까지… 김제시, 국가예산 대응 총력  
익산 천만송이 국화가 새롭게 활짝 핍니다  
노을이 무대가 되고, 바다가 축제가 된다  
포토뉴스
전북문화관광재단, 베트남 관광시장 공략 본격화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베트남 현지 여행업계와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전북 관광상품 개발과 해외 관광객 유치 확대에 나섰다.전북문화관광재단은  
전주국제영화제 화제작 21편, 서울서 다시 만난다
올봄 전주국제영화제를 빛낸 국내외 화제작들이 오는 11월 서울 관객들과 다시 만난다.전주국제영화제(공동집행위원장 민성욱·정준호)는 제27회 영 
전주문화재단, 한·중·일 전통종이 교류 ‘삼국지향’ 성료
전주문화재단이 한국과 중국, 일본의 전통종이 청년 장인들이 참여하는 국제교류 행사를 열고 전통 제지기술의 보존과 계승을 위한 협력 기반을 마련 
한국전통문화전당, 특별한 결혼식 무대로 변신
한국전통문화전당이 특별한 결혼식 공간으로 변신해 신랑과 신부의 새로운 출발을 함께했다.지난 24일 한국전통문화전당 실내 공연장에서는 가족과 친 
남원서 해금의 깊은 선율 만난다… ‘산조+더하기Ⅱ’ 공연
해금 특유의 애절한 선율과 전통 악기들의 조화로운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국악 공연이 남원에서 펼쳐진다.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11월 7일 오후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천요강을 준수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