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재스민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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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록이 우거져서 온 산야에서 신차(新茶) 물이 고이는 듯, 입안의 단물 삼키기에 바쁜 5월이 왔다. 차 숲에 안개비라도 내리면 촉촉한 찻물이 우러날 것 아닌가. 차밭으로 가지 못하니 괜스레 창밖을 내다보며 서성거린다. 화분의 차나무 한 그루에서 새잎이 쫑긋쫑긋 나와서 내게 손짓한다. 새 찻잎을 따서 씹으면 신차 맛이 입안에 고여 생기를 북돋운다. 움직일 때마다 내게 안겨드는 것이 무엇인가. 고요하게 깊은 숨결 뿜어내는 듯한 향. 거실 창문을 열고 창가에 재스민 화분에 눈길이 닿자 온몸에 전율이 일었다. 얼마 만에 돌아온 임이던가. 그리워도 만나지 못하는 임들이 형체 없는 향으로 돌아온 것 같아 그리운 얼굴들이 꽃잎에 어린다. 재스민 향에 젖은 찻잔을 나누는 듯하다. 꽃피는 4월을 바라기 바빴다. 흘러가는 시간에 쫒기는 듯, 남녘의 매화로 시작하여 봄의 절정을 이루는 벚꽃 잔치까지 꽃비를 맞으며 보냈다. 마침내 초록 물이 꽃불을 끌 때쯤이 되니 흰 꽃들이 하얀 눈송이처럼 푸르른 잎에 쌓인다. 배꽃도 피기 시작하고, 조팝나무와 이팝나무들이 들뜨는 마음을 고요히 가라앉혀 기도하는 마음이 된다. 어려운 시대 선인들은 조팝나무는 조밥을 생각나게 하고, 이팝나무는 ‘이밥에 고깃국’을 연상하게 했다지. 재스민도 신비스러운 보랏빛으로 왔다가 향기를 품어내면서 하얀색으로 변한다. 힘겹게 피워낸 생을 말하듯 하얗게 바래는 꽃잎 앞에서 나도 깊고 내밀한 호흡으로 위안 받곤 한다. 도대체 그 향기는 어디에서 오는 것인지 냄새가 들어오는 내 신체의 기관인 코가 없으면 향을 느끼지 못할 건지. 그러나 가까이 가서 가끔 킁킁거려 보지만 결코 그 향은 코로만 들어오는 것 같지는 않다. 글쓰기도 향기를 품을 수 있는 글을 써야 하건만, 문향(聞香)이나 향성(香聲)에 대하여 내 무슨 말을 할 수 있을 건가. 들리는 듯 보일 듯 말 듯, 온몸의 세포를 쫑긋거리면서 꽃 주위를 돌아본다. 모든 향기 나는 꽃들은 그 꽃잎이 나무의 영혼을 담는 그릇인가. 어디에 있다가 나무의 가지를 통하여 꽃잎에 담기는지. 비록 실내에 있긴 해도 나무가 자라고 꽃잎이 피기까지 공기와 물과 빛의 작용이 한데 모였을 것이다. 그 비좁은 그릇 안에서…. 나무가 살아가는 데 나는 가끔 물을 주었을 뿐이다. 얼마큼 물을 주어야 하는지도 모르고 그저 내 감각으로 주었을 뿐이다. 그렇게 자란 녹차 잎을 따서 내가 먹듯, 사람은 태양과 바람과 물이 엉겨서 만든 영양을 먹고 탄생하는 다른 생명체를 먹어야만 한데 말이다. 재스민 향을 들을 수 있다면 식물과 같이 한 자리에서 그렇게 고요히 살 수 있을까. 생명의 신비를 어찌 다 알려고 한단 말인가. 세월이 흘러도 나에게는 막막한 무지(無知)의 허약만 드러날 뿐이다. 끝까지 향내를 하얗게 내는 재스민 같기만 하면 얼마나 좋으랴! 그저 아름다운 생명의 몸짓에 찬탄만 토할 뿐이다. 몇 년 전이었던가. 재스민 꽃이 모두 하얀색이 되었던 5월 중순 무렵 주말에 서울의 아이들이 내려왔다. 어린 손녀가 현관문을 들어서면서, 아! 냄새 하였다. 며느리는 ‘할머니 냄새’라고 덧붙였다. 재스민 꽃 냄새가 아니었다면, 쾨쾨한 냄새를 상기하기 쉬운 ‘할머니 냄새’라고 하지 않았을 것이다. 집안에 재스민 향이 스며 있어 순수한 어린이는 금방 알아차렸던 것이다. 향(香)이란 말을 모르니 냄새라고 했다. 사람이 향을 낼 수 있다면 어떤 향을 낼 수 있을까. 사는 토양에 따라서 영육(靈肉) 간에 먹고 마신 것과, 정신과 마음에 따라서 사람도 분명 어떤 냄새를 지니기 마련이다. 모든 물상과 사람에는 그가 지닌 성질과 성격을 나타내는 분위기란 것이 있기 마련이다. 인간은 그 어떤 생명 개체도 가지지 못한 정신을 가지고 있기에, 정신의 향을 내는 것이 사람다운 냄새가 아닐까. 빛바랜 세월은 흔적도 없이 사라지고 있는데, 거대한 우주의 역사 속 별 하나에서 말할 수 없을 만큼의 협소한 시공에서 뱅뱅 돌며 어떤 삶의 향기를 남길 수 있을까. 후에 내 손자들이 할머니를 기억할 때면 재스민 고운 향을 떠올려도 좋겠다. 아니, 할머니를 볼 때마다 ‘할머니, 차(茶) 마셔요.’ 하는 애들이니까 할머니가 그리울 때면 재스민 꽃내음을 떠올리며 차를 마셔주면 더 좋겠다.
/조윤수 전주문협회원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5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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