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온고을 문학산책] 죽마고우(竹馬故友)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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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코로나 19라는 불청객 때문에 방콕여행(방에 콕 처박혀 있음)을 한지가 꽤 오래 돼간다. 심심하고 따분한 차에 오랜만에 고향 죽마고우가 전화를 했다. 한 번 만나 대포나 한잔 하자고 주점에서 기다린다기에 주섬주섬 옷을 걸치고 집을 나섰다. 그는 막걸리 집에서 나를 기다리면서 막걸리를 반 주전자쯤 비우고 있었다. 피 순대 한 접시에 김치전을 곁들여 벌써 얼큰해 있었다. 어릴 때 초등학교에 다니던 얘기를 주고받으며, 고향의 고삿을 누비던 추억들과 죽마고우들을 하나하나 들춰내기 시작했다. 그는 동네에서 조금 개구쟁이여서 길에 허방을 파고 물을 부어 지푸라기로 위장해 어르신들이 지나가면서 그 허방에 빠지는 것을 보고 즐거워하던 일들을 지금도 재미있어라 애기했다. 봄날 야산에서 꽃 꺾어들고 여기저기 쏘다니던 일들을 기억하며 얘기꽃을 피웠다. 나는 술을 끊은 지 8년이 넘었지만 함께 술자리를 하는 것이 내가 마치 그와 함께 술에 취해있는 양 술판에 빠져들어 막걸리를 벌써 두 주전자를 다 비웠다. 그는 편모슬하에서 어렵게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독일 광부로 파견돼 꽤 돈을 벌어 귀국해서 수퍼마켓을 운영하기도 한 자수성가한 친구였다. 이제 60여 년 전의 고향 친구들을 만나서 자주 얘기도 나누고 자주 만나자는 것이었다. 얼큰해진 친구는 이제 집을 가야겠다면서 막차를 타러 시내버스 정류장으로 갔다. 친구는 손을 흔들어 보이면서 총총히 어둠을 비집고 걸어갔다. 초등학교시절 나와함께 가까이 보낸 그 친구를 보내고 나는 천변 길을 따라 걸었다. 졸졸거리는 시냇물 소리 옆에 봄의 들꽃들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아무도 없는 천변 길을 걸으며 봄 향기 가득한 밤하늘의 잔별들이 깜박이며 하나씩 내 머리 위를 비추고 있다. 萬里靑天 雲起雨來 空山無人 水流花開[구만리 푸른 하늘에 구름 일고 비 내리니 빈 산에 사람자취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네.] 문득 송나라 산곡(山谷) 황정견(黃庭堅) 시인의 시가 떠오른다. 오늘 밤 <空川無人 水流花開> [빈 냇가에 사람자취 없어도 물은 흐르고 꽃은 핀다.] 혼자서 엮어보는 나의 넋두리였다.나는 잠시 둑에 앉아 별빛내리는 밤의 향에 취해 둑에 핀 이름 모를 들꽃을 바라보며 옛 친구들을 그려보았다. 한국동란 때 아버지가 인민군에 가담하고 행방불명된 서울로 가서 지금도 소식 없는 춘석이, 어머니가 새아버지를 만나 의붓아버지 밑에서 성(性)조차 바꾸어버린 형진이, 황해도에서 피란 와서 1년 남짓 학교생활하고 경기도로 이사 간 금규, 인권이, 재만이-- 그들은 나 보다 두세 살 위인 친구들이다. 공산당이 싫어 남한으로 피란 와서 우리 고향에 정착해 살다가 모두 이사 간 친구들이다. 늘 고향을 그리며 일가친척들을 보고파하던 친구다. 한국 전쟁이 끝난 후 생활이 어려워 끼니도 제대로 못 찾던 고향 죽마고우들. 이제 머리가 하얀 할아버지가 돼 여기저기 흩어져 사는 고향 친구들을 찾기가 힘들다. 나는 가끔 고향을 찾아 그 몇몇 친구들을 만난다. 지금도 초등학교시절로 돌아가 <야야 자야>하면서 말을 터놓는다. 이런 친구는 고향 초등학교 친구들 뿐 이다. 친구는 세월이가면서 하나 둘 사라지거나 소식이 끊긴다. “친구를 갖는다는 것은 또 하나의 인생을 갖는다”고 하는데 사귀는 친구보다 잃는 친구가 더 많은 시간 속을 살고 있다. 오늘따라 봄기운이 만연하지만 코로나19 때문에 봄 같지 않은 날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꽃피고 우거진 숲을 거닐고 싶지만 그동안 세상이 허락하지 않았다. 천자만홍(千紫萬紅)하고 만화방창(萬化方暢)한 고향의 뒷동산에서 놀던 옛 친구들이 그립다. 그런데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 아니었던가. 사회적 거리두기로 온 세상이 봄을 느끼지 못하고 있는 시간에 그나마 옛 친구의 부름이 잠시 봄을 느끼게 했다. 이제 코로나19 거리두기가 완화돼서, 고향으로 달려가 친구들을 만나야겠다. 비가 오면 함께 맞고, 바람 불면 함께 어깨동무하고 시골길을 걷고 싶다. <우정은 길과 같아서 자주 다니지 않으면 잡초가 우거진다.>라고 하기에 자주 찾아가고 싶다. 오늘밤 봄이 움츠려들고 있지만 마음속에 고향 죽마고우와 봄을 함께 껴안고 싶다.
/나 인 구 전주문인협회 감사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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