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죽음이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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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경은 죽음이 죄와 아주 깊은 연관성이 있음을 말하고 있다. 즉 인간은 불사불멸하도록 지음을 받았으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금기시 되었던 하나님 권위의 상징인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음으로 영생의 조건을 스스로 파기하여 죽음이라는 벌을 자 초하게 되었다. 이 비극은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 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롬 5:12)”에서 보듯이 모든 인류에게 운명적인 원죄로 불려지고 있다. 성경에서 죽음은 아름답게 미화시키지 않는다. “맨 나중에 멸망 받을 원수는 사망이니라(고 15:26)”. 죽음을 원수라고까지 말을 한다. 사망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에게 원수요 가장 피하고 싶은 대상이기도 하다. 그래서 인간은 본능적으로 죽음을 두려워하고 죽음에서 벗어나려고 애를 쓴다. 고린도후서 5장 1절을 보면 바울은 집과 옷의 이미지로 육신의 죽음을 말하고 있다. 이 땅에서 우리가 입고 있는 육신을 ‘장막 집’ 즉 임시 천막에 비유한다. 예수를 믿는 자에게 죽음이란 일시적인 이동 천막을 걷고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으로 옮겨가는 것과 같다. 우리는 세상의 몸을 벗을지라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을 입는다. 죽음의 세력이 강해 보여도 결국 죽음은 영원한 생명에 묻힐 것이다. 현재 겪는 고통이나 고단한 삶이 잠시뿐임을 기억하고,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마련해 놓은 영원한 삶을 소망해야 할 것이다. 그리스도인에게 죽음은 육신의 장막을 벗고 영원한 나라에 입성하기 위해 부활의 새몸을 입는 과정이다.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영혼불멸설에 근거하여 죽음을 매우 초연한 모습으로 받아들였다. 죽음을 매우 고상하고 아름다운 것으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 이론을 정리해보면 육체는 영혼을 가두어 두는 감옥이다. 영혼은 육체로부터 벗어나는 것을 기다리는데 죽음을 통해서만이 이루어진다고 생각한다. 사람이 죽으면 육체는 본디 흙으로 돌아가고 영혼은 자유를 얻어 날아간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을 아름다운 것이며 영혼의 위대한 친구라 했다. 그는 제자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가르침을 실천하듯이 독배를 들며 초연한 모습으로 죽음을 맞이하였다. 김형석교수는 죽음에 대하여 언급을 하고 있다. 신체적 죽음이 없으면 오히려 우리가 밝혀야 할 삶이 빛을 잃어가는 것으로 생각한다. 초는 불타서 빛을 발하는 동안에 사라져가며 그 빛이 책임을 다한 뒤에는 초로 남지 않는다. 그러나 초가 남겨준 빛은 초와 완전히 차원이 다른 밝음으로 이 우주 공간에 영원히 남는다. 또한 그렇게 되기 위해 초는 불타 사라져야 한다. 더 많은 열매를 위해 한 알의 밀은 썩어져야 한다. 그것이 조물조의 섭리이며 참된 삶의 의미이다. 그래서 신앙인들은 죽음을 영원에 동참하는 영적 삶의 새로운 탄생이라고 믿는다.
/김영진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2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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