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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 사람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사람이 죽는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을 누구나 한 번은 만나야 한다. 그러나 준비가 필요하다. 죽음의 준비는 소중한 나의 삶을 윤택하게 만들어 주고 값어치 있게 할 것이다. 존엄하고 품위 있는 죽음을 맞이하기 위해 구체적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하는가? 개인이 지향하는 삶의 방식이 다른 것처럼 생애말기 돌봄과 죽음의 방식은 다를 수 있다. 스스로를 돌볼수 없는 생의 마지막 시기에 어느 곳에서 누구로부터 어떠한 돌봄을 받으며 떠나야 할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리고 이를 기록해두거나 가까운 사람들에게 분명하게 밝혀 둘 필요가 있다. 마지막 때까지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면 모르지만 대부분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많다. 어떠한 치료에도 회생 가능성이 없고 회복이 되지 않아 죽음이 임박하였을 때가 있다. 이때 임종과정만을 연장하는 연명의료를 중단하기를 원한다면 ‘연명의료결정법’에 따른 ‘사전연명의료의향서’를 사전에 작성해둘 필요가 있다. 환자가 건강할 때 자신의 의사를 분명하게 밝혀둘 수 있는 자기 결정 존중의 법적 제도의 하나이다. 또한 장기 기증서를 작성해 두면 내 몸의 신체 일부가 누군가의 소중한 생명을 살릴 수 있는 계기가 된다. 이에 못지않게 마음의 준비도 필요하다. 죽음은 예기치 못하게 빨 리 찾아올 수도 있다. 질병으로 인하여 죽음을 맞이할 수도 있지만 뜻하지 않은 사고로 인하여 죽음이 찾아오는 경우도 있다. 어쩌면 죽음은 우리 삶에 있어 자연스러운 과정의 하나이다. 자신의 죽음을 자신이 알지 못하고 죽어간다면 얼마나 황당한 일이 될까? 우리 주변에는 생각한 것보다 자신의 죽음을 알지 못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의사를 비롯하여 가족은 환자에게 알려주어야 한다. 주위사람들이 다 알고 있는데 본인만 자신의 죽음에 대하여 모르고 있을 수가 있다. 본인이 죽음을 알지 못하고 있다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이 될 것인가. 가까운 사람들과 마지막 작별 인사조차 나누지 못하고 간다면 얼마나 애석한 일이 될 것인가. 죽음은 다른 사람에게는 물론 자신에 대해서도 용서와 화해, 감사가 있어야 한다. “그래, 그 간 살아온다고 고생이 많았어, 잘했어, 수고했어” 자신이 고생한 자기에게 위로와 격려를 보낼 수 있어야 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이기 때문이다. 또한 특정인에게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미리 생각하여 전하고, 유품이나 재산을 분배하는 일에 대해서도 소홀해서는 안 된다. 유언과 상속이 제대로 이루어져야 자손들에게 평화가 있다. 장례와 장묘, 부의금에 이르기까지 고인의 말씀에 따라 장례가 진행되어 가족들이 당황하거나 갈등을 일으키지 않도록 서면이나 말로 남겨야 한다. 만약 당신이 지금 호스피스 병상에 누워 있다고 생각을 해보자. 사회에서 중요한 직책을 맡았고, 명예로운 위치에 있었고, 명품으로 온 몸을 치장하였다 할지라도, 벌거벗겨진 몸에 환자복을 입고 까끌까끌 하고 딱딱한 침대 시트 위에 눕는 순간 전해오는 서늘함은 자기 자존 감을 무참히 꺾어버릴 것이다. 당신은 선생님도 교수님도 박사님도 아니며 누군가의 소중한 부모도 자녀도 친구도 아니다. 그저 몇 호실의 환자일 뿐이다. 사람들은 당신을 병을 가진 몸으로 대한다. 시도 때도 없이 의료진이 드나들고 다가오는 사람들은 낯설고 무표정하다. 이게 환자의 현주소다. 나는 어떻게 준비하고 어떻게 그들을 대할 것인가? 세상에는 세 부류의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첫째는 살아있는 사람, 둘째는 살아서도 죽은 사람, 셋째는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이라 한다.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그 가운데 ‘죽어서도 살아 있는 사람’ 은 세상의 빛이 되어 수백, 수천 년이 지나도 세상을 밝
혀줄 것이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의 삶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일이다. 나는 어 떤 사람이 될까?
/김영진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