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와 두 전주 사람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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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무주상보시(無住相報施) 내가 누구에게도 주었다는 생각조차 버리는 것, 이 법문을 그대로 삶을 통해 실천해 주신 분이 있을까? 지난 MBC경남이 설날특집으로 방송한 ’어른 김장하‘가 세상에 드러나 커다란 감동을 시청자에게 선물하였다. 진주의 남성당 한약방의 주인장, 김장하 어른(1944년생) 지금까지 신문이나 방송같은 대중미디어에 한 번도 소개되지 못한 숨겨진 진짜 어른의 본 모습을 착하게 보여주었다. “아픈 사람의 돈을 함부로 쓸 수 없어 차곡차곡 모아 돌려준 것 뿐인데...”라고 말끝은 흐리는 어른의 모습에서 참 어른다움을 보여 주었다. 전 경남도민 신문의 김주완 기자가 성실하게 찾아다닌 인연으로 MBC 경남의 김현지 피디와 함께 만들어진 다큐멘터리이다. 한 번도 제대로 공개된 적이 없던 그의 나눔의 삶, 중학교를 졸업하고 한약방 머슴살이를 한 덕분에 전쟁 후 처음 실시한 한약업사 국가 자격시험에 통과했다. 당시 아직 미성년자여서 1년을 기다렸다 1963년 19세 나이로 남성당한약방을 시작했다. 약값이 싸게하고 좋은 한약재를 써 효능이 매우 좋아서 전국에서 손님이 몰렸고 그렇게 20년간 모은 돈으로 1983년 경남 진주에 명신고등학교를 세웠다. 학교 설립을 할 때 내세운 조건이 그 답다, 첫째는 친척은 한 사람도 쓰지 않겠다. 둘째 돈을 받고 한 사람도 채용하지 않겠다. 셋째 권력이 굽히지 않겠다는 원칙을 철저하게 지키고 난 이후 학교 운영이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때가 되자 1991년 아무런 조건을 달지 않고 국가에 헌납했다. 당시 110억원이 넘는 자산이었다. 김장하 선생의 나눔의 시작은 바로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의 등록금과 생활비를 대어주는 장학금 전달이었다. 아직까지 정확한 장학생의 인원수 조차 파악하지 않았지만 약 천여명이 넘는 학생들이 도움을 받았고 금액으로도 약 30억∼40억원 정도로 추산된다. 그리고 학생을 선발해서 도움을 주면 그들이 대학 때까지 어떤 그럴듯한 장학금 전달식 한 번 없이 지원했다. 그래서 수많은 ‘김장하 키즈’를 길러냈으나 “나는 사회에 있는 걸 준 것이니 갚아야 한다고 생각한다면 사회에 갚아라”고 했다. 당시 중학교 진학조차 어려웠던 부산대학교 조해정교수는 김장하 선생 자택 입주 장학생으로 도움을 받고 대학에 갔는데 데모를 해 구속이 되었을 때도 도리어 ‘그 역시 국가를 위한 일’이라 어깨를 다독여 주었다. 장학금을 받고도 특별한 인물이 못 돼 죄송하다는 이에겐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한다”는 그의 생각까지 나눠 주어 더 큰 공감을 주었다. 이뿐만 아니라 1990년 창간한 옛 진주신문에는 매월 천 만원에 달하는 적자를 10년간 보전해주었고, 1992년부터는 백정들의 신분을 철폐하는 인권운동이었던 형평운동 기념사업회를 되살려 공평함이 사회의 근본임을 일깨우는 정신운동도 앞장섰다. 그리고 지난해 60년간 운영해온 한약방 문을 닫으면서 남은 자산인 34억원조차 경상국립대에 기증하고 그 말대로 사부작 사부작 걸어 다니는 평범한 노인으로 돌아갔다. 그러나 자신을 내세우는 인터뷰는 자신이 10여년간 지원한 진주신문조차에게도 일절 거절했다. “돈이라는 것이 똥하고 똑같아서 모아놓으면 악취가 진동하지만 밭에 골고루 뿌려놓으면 좋은 거름이 된다.” 그의 어른다움이 더욱 높아 보이지만 또 한편 씁쓸하기만 한 것이 윤정권 아래 권력에 그늘에 서 있는 두 전주사람 때문이다. 단 한번의 행정고시로부터 시작된 권력쫗기에 승숭장구하던 분, 김대중 정부가 출범하기 전까지는 전주 출신 지역을 숨겨왔던 그가 노무현정부에선 경제 부총리 및 재정경제부 장관((2005∼2006.7) 이어 국무총리 (2007.4∼2008.2)로 살던 그가 다시 얼굴을 바꾸어 윤석열 정부의 국무총리로 등장 신념이나 지조는 절대 내색하지 않는, 있으나 마나한 총리라는 오명을 쓰고 있다. 그리고 또 한 사람 윤석열 대통령, 김앤장 소속 변호사 30여명과 함께 청담동에서 술자리를 주선했다는 이세창 전 자유총연맹 총재 권한대행 역시 전주 사람으로 이 사실이 보도되자 마자 다시 뻔뻔하게 기자회견을 자청 “한동훈이라는 이름의 한 자도 아는 사실이 없으며 사적으로 대통령님을 만난 사실이 없음을 하늘에 두고 맹세한다”는 거짓말을 다시 늘어놓아 양심조차 자기 손으로 가린 사람이 되어버렸다. 그도 역시 전주 사람이니 동 시대 한 하늘아래 살면서도 어떻게 이렇게 다른가? 어른 김장하와 두 전주 사람, 어떻게 살아야 고귀한 삶인지는 어린 아이도 다 알 것이다.
/최공섭 프로랜서 피디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3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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