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3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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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은 세상에 태어나는 순간부터 죽음을 향해 달려간다. 모든 사 람이 죽는 것은 분명한 이치다. 경험해 보지 못한 죽음을 누구나 한 번은 만나야 한다. 죽음에도 준비가 필요하다. 죽음 준비를 통하여 자신의 삶을 정리할 수 있고 자신의 삶을 한 단계 끌어올릴 수 있다. 우리 인생은 음악에서 크레센도(점점 소리를 크게 하는)와 디크레센도(점 점 소리를 줄여 가는)와도 같다. 아기가 태어나면서 맨 처음 엄마를 만나 게 되고 아빠와 형제, 친척들을 만나게 된다. 유치원에서 친구들을 만 나게 되고 초등학교, 중 고등학교에서 선생님과 친구들을 만나고 대 학교와 직장에서 동료 선배들을 만난다. 그렇게 35세쯤에서 정점을 이루다가 어느 날 동네 어른이 보이지 않더니 나의 할아버지가 가시 고 부모님이 가신다. 형님과 누님이 가시고 친구가 가고 내 차례가 온 다. 태어나 만남의 영역을 점점 확장해가더니 직장생활의 맛을 느낄때 쯤 소중한 만남의 주인공들을 하나, 둘 소실점을 향하여 상실해 간다. 잊혀 가고, 잊어 가는 것이 안타까운 일이다. 결국에는 없어서 는 안 될 소중한 자신마저도 이 땅에서 사라져할 때가 온다. 우리가 살아가다 보면 봄, 여름, 가을, 겨울 사계절을 만난다. 봄이 오면 앙상한 가지에 물이 오르고 새싹이 튼다. 단풍잎을 보면 새의 부리와 같이 뾰족뾰족 새싹이 터져 나온다. 신기함에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작은 이파리들이 하늘을 덮어갈 즈음 여름이 온다, 나뭇가지 가 굵어지고 매미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목소리의 새들이 찾아와 노 래를 부른다. 장맛비와 소나기가 내린 뒤에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하면 가을이다. 푸름으로 녹색물감이 떨어질 것 같았던 이파리 들이 서서히 단풍으로 물들어 간다. 가을의 단풍잎은 붉다 못해 선 홍색 핏물이다. 누가 흘린 물감인가? 감상에 젖을 즈음 가을비가 추 적추적 내리고 이파리들이 하나 둘 땅에 떨어져 다음을 위해 죽어갈 채비를 한다. 소슬바람이 불고 날이 어두워가기 시작하면 겨울이 온 다. 눈 낱이 희끗희끗 날리고 나무들도 옷을 벗고 알몸으로 겨울을 맞이한다. 찬바람과 추위에 맞서는 견고한 고독이다. 겨울의 추위에 죽어있던 나무들이 산 너머 남쪽에서 봄바람이 불어오면 슬며시 눈 을 뜨고 새 봄 맞을 채비를 한다. 기지개를 켜고 온 몸에 물을 올리고 새 옷을 입기 시작한다. 봄, 여름, 가을, 겨울. 봄이 가고 여름이 가고 가을이 가고 겨울이 간다. 그리고 봄이 다시 온다. 우리도 이러한 자연의 이법으로 한 해를 살아간다. 낙엽이 떨어져 죽으면 낙엽은 썩어져 밑거름이 되고 새봄에 피어나는 새싹의 자양 분이 된다. 부모님의 만남으로부터 태어나 사랑과 귀여움을 받으면서 성장을 한다. 친구와 학교, 직장생활을 통하여 사회와 세상을 알게 되 고 결혼을 통하여 가정과 사랑을 알게 된다. 안락함과 행복했던 순간 들도 한 때, 나이가 들어 입맛이 떨어지고 몸이 무거워지면서 병원신 세를 지게 된다. 어느 날 갑자기 들려온 암이라는 말, 그것도 자신이, 하늘이 무너지고 모든 것들이 내려앉는다. 청천벽력의 말이다. 태어 나서 부귀영화를 누리다가 늙어지면 병들어 죽는다. 한 마디로 인생 은 생로병사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그러나 우리 인생은 내가 죽는다고 끝이 나는 것은 아니다. 낙엽 이 떨어진 곳에 새봄을 맞이하여 새싹이 나고 잎이 돋아나듯이 내가 죽은 자리에 내 아들이 살아가고 손자가 이어갈 것이다. 죽어 이 땅 에서 완전히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싱싱한 잎으로 돋아나 푸름을 짙 게 만들어 가듯이 내 아들이, 나의 손자가 나보다 세상을 더욱 밝게 빛나게 만들어 갈 것이다. 자연의 이법에 순응하다 보면 죽음이 원통 하거나 절망할만한 일은 아니다. 자연의 순리에 맡겨야 한다. 성경에 도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 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 12:24)가 뒷받침해주고 있다. 죽기만 하면 30배, 60배, 100배의 열 매를 맺는다고 하였다. 죽는다는 것은 태어나기 전의 상태와 같다고 말한다. 실체가 없고 존재하지 않는 무의 상태로 돌아가는 것이므로 끝이 아닌 ‘시작되기 전’이라는 관점으로 보아도 무방하다. 그리고 매일 밤에 잠들 때 우리 의 삶은 잠시 멈춘다. 수술대 위에 누워 마취를 하여 의식을 잃을 때 에도 마찬가지다. 시간은 흐르지만 우리의 삶은 멈춘다. 그래서 수면 과 마취는 일시적이고 가역적인 죽음의 경험이다. 죽음을 미리 연습 하며 삶을 돌아볼 기회를 갖는 것도 좋은 일이다. 사랑과 증오는 이율배반적인 상대어다. 사랑을 하다보면 어느 날 미워하게 되고 증오하게 된다. 사랑과 증오는 일직선상에서 마주보 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과 증오는 하나로 볼 수 있다. 이와 마찬가지 로 삶과 죽음은 상대어다. 살아가다 보면 어느 날 죽음에 이르는 날 이 온다. 삶과 죽음은 일직선상에서 마주하고 있다. 삶과 죽음을 하 나로 볼 수 있다. 그렇다고 보면 죽음을 크게 두려워하거나 무서워할 것도 아니다. 우리가 살아가듯이 죽음도 저쪽 끝에 있다. 사랑하는 사람과 미워하는 사람이 만나지듯이 ‘살아가다 보면 죽을 때도 있겠 지’라고 하면 죽음을 쉽게 받아들일 수 있다. 강 건너 불빛이 반짝이 는 그곳이 바로 천국인데, 나도 한 번은 가봐야지, 이는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내는 훈련이다.
한 번 태어나면 언젠가 한 번은 죽을 수밖에 없고 다정한 만남이 있으면 반드시 헤어져야 하는 이별의 시간이 온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되돌려놓고 반납하고 가야 할 것들에 미련을 갖고 집착을 하게 된다. 알고 있는 것들을 몸으로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나이가 연만한 이들은 서서히 빌린 몸을 반납하여야 할 채비를 해야 한다
지나온 삶을 가만히 되돌아보면서 떠남과 작별에 대해서 죽음에 대해서도 생각해 보아야 한다
떠남과 죽음을 어둡고 쓸쓸하고 두려운 것만이 아닌 영혼의 새로운 탄생으로 맞이하고 준비하는 자세를 배워야한다
낡은 집은 두고 이제 새집으로 이사 가는 것이다
이 글은 다른 곳에서 빌려온 ‘반납의 시간’이라는 시다. 본래 내 것 이 아닌 빌려온 것을 이제 되돌려 놓아야하는 시간, ‘반납의 시간’이 온 것이다. 공감이 가는 글이다. 마치 내 것인 양 그간 의기양양하게 살아 왔는데 내 것이 아닌 몸도 마음도 내려놓고 가야하는 시간이 찾 아온 것이다. 낡고 어둡고 냄새가 나는 집이 아닌 신선하고 밝고 향기 가 나는 새집으로 이사를 가는 것이다. 가는 것이라면 끌려가지 않으 려 버둥대지 말고, 기쁜 마음으로 소풍을 가듯이 가자. 그래서 죽음 을 이렇게 말하지 않던가? 삶과 죽음은 하나다. 죽음과 삶은 하나다. 이렇게 보면 죽음은 남 의 이야기가 아닌 내 이야기인 듯하다. 죽음이 두렵지 않느냐고 친 구에게 물으니 친구가 “우리가 삶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삶 뒤에 죽음이 연결되어 있어”라고 하였다. 그 말의 의미는 죽음으로 끝나 는 것이 아니라 죽음 속에 다른 삶이 있다는 것이 아닌가? 그 세상을 믿고 있기에 그곳이 참 궁금하다 하였다. 어떻든 마지막까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없이 친구는 편안히 갔다. 나는 친구에게 묻는다. 그 궁금했던 세상에서 지금 잘 살고 있는가. 그런데 네가 참 보고 싶다.
* 죽음은 마지막 성장의 기회다 * 죽음은 인생의 완성단계이지 결코 끝이 아니다 * 죽음은 또 다른 상태 혹은 다른 차원으로 변화 내지는 이동이지 종말은 아니다 * 죽음이란 신이 선사한 최고의 선물이다
/김영진 시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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