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하는 다섯 가지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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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필자가 호스피스병원에 들어와 근무하게 된 것은 죽음에 대한 궁금증에서 시작하였다. 말기 암으로 죽음의 문턱에서 환자들은 무슨 생각들을 하고 있을까? 참 궁금하였다. 시간이 날 때마다 대화로 소통이 가능하신 분들에게 다가가 이런 저런 이야기로 시작하여 의미가 있는 질문을 하였다. 정리하여 보면 다음 몇 가지로 집약이 된다. 죽음에 가까이 이르게 되면 사람들은 순수해지고 진실해진다고 한다. 잘 살아온 것에 대한 자랑보다는 많은 분들은 죽음을 앞에 두고 그동안 잘못 살아온 삶에 대하여 많은 후회를 하고 있었다. 나의 삶을 살지 못했다 한번사는 인생인데 내 뜻대로 내 마음 대로 살지 못하고 남을 의식하며 제대로 살지 못한 것이 가장 후회가 된다는 것이다. 제 마음 제 뜻대로, 자기하고 싶은 대로 살아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마는 이를 가장 후회되는 것으로 환자들은 꼽고 있다. 이는 자신에게 정직하지 못했음을 말함이다. 자신의 삶을 사는 대신 주위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삶을 살아왔음을 의미한다. 아울러 눈치 사슬로 먹고 싶은 것, 사고 싶은 것, 가고 싶은 곳, 하고 싶은 것들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왔음을 늦게나마 후회하고 있다.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 이것저것 생각하지 말고 마음이 가는 곳으로, 생각이 기우는 곳으로 저질러 보자. 가족 돌봄에 소홀했다 농경사회였던 우리나라는 먹고 살아가는 일들에 바빠 가족을 돌보는 일에 소홀하여 왔음을 시인한다. 일터에 나가 열심히 일하다 보면 하루해가 저물고 저녁이 되면 잠을 자야 다시 일터에 나갈 수 있었기 때문에 가족끼리의 오붓한 시간을 갖는 것도 쉽지 않았다. 보통의 가장들은 아내나 자식, 가까운 가족에게 사랑한다는 말이나 행동을 하지 못했다. 마음은 있으나 감정을 솔직히 표현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버지가 그래왔고 아들이 이어받아 대물림하는 한국의 전통적 가정환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수있다. 우리가 보아도 서구인들은 ‘사랑한다’는 말과 함께 허그나 스킨십 을 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보이지만 우리는 서투르다. 이제라도 ‘사랑 한다’는 말은 많이 하여도 부족함이 없으니 시간불문 장소불문 많이하라고 하지만 이마저도 쉽지가 않다. 어떻든 가족과 시간을 더 많 이 가졌어야하는데 여러 가지 핑계거리로 단란한 시간을 갖지 못했음을 아쉬워하고 있다. 직장에 매어 살았다 오로지 직장에 목을 매고 올인하였다는 것이다. 가정을 책임지고 한 가정을 꾸려나가려면 직장이 중요하다. 그러나 직장도 가정이 있은 뒤에 필요하지 직장이 가정보다 우선일 수 는 없다. 하루를 배분한다면 일과시간, 가정생활, 잠자는 시간으로 3등분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그간 많은 직장인들은 일과시간에 매몰되어 살아왔음을 부인할 수가 없다. 그리고 직장도 한번 쯤 바꿀 수 있었는데도 바꾸지 못하고 한 직장에서만 생활하여 왔음을 후회하고 있다. 즉 변화에 두려워 한 것과 직장이나 일에 매달려 가족에 소홀하여왔음을 뒤늦게 후회한다고 하는 것이다. 어느날 돌아보니 아이들은 이미 다 커버렸고 배우자와의 관계는 서먹해져버렸다는 것이다. 일에 너무 많은 시간을 소비하여 왔다는 것이다. 용기를 내지 못했다 살아가다 보면 용기를 내지 못하고 머뭇거리고 주저하다가 기회를 놓친 것이 한두가지가 아니다.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 때의 일이다.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는데 작은 아버지께서 오셔서 당신 아들인 사촌에게 권총을 사주시면서 나에게 ‘너도 하 나 사줄까’ 하는 것이었다. ‘예,’ 하면 되었을 것을, 비위가 없어 대답을 하지 못하고 총을 얻어 갖질 못했다. 지금도 그 총이 눈앞에 어른거릴 때가 있다. 용기가 없어 사랑하는 사람에게 고백을 하지 못해 만나야 할 사람들이 갈린 경우도 있고, 자기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지 못해 직장에서 승진 기회를 잃는 경우도 있다. 내가 잘못한 일에도 용기를 내어 잘못을 시인하고 용서를 구해야 한다. 용기를 내는 일에도 때와 시간이 있다. 친구와 연락하지 못했다 요즘처럼 각박한 세상에 친구처럼 좋은 것이 어디 있으랴. 네캉 내캉 구분하지 아니하고 흉허물 없이 장난 치고, 뒹굴어도 부족함이 없는 고등학교 동창생과 같이 좋은 친구가 있으랴. 잘 지내다가도 사소한 이해관계로 멀어져가는 친구들이 한 둘이 아니다. 친구는 잃기는 쉬어도 만들기는 어렵다. 모임에도 얼굴 을 보여주지 않고, 이젠가 저젠가 10여 년이 지나고 남이 되어버린 친구, 병상에 있다 보니 친구가 한없이 보고 싶고 그리울 때가 있다. 제 놈이 찾지 않는데 내가 찾을 필요가 있겠는가 하다가 친구는 남이 되 고 영 볼 수조차 없게 된다. 전화나 연락 오기를 기다릴 일이 아니라 내가 먼저 연락을 하자. 친구야 보고 싶다. 오늘따라 네가 보고 싶다.
/김영진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4월 1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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