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살아 있다는 것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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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가 없다면, 이는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자 않았더라면 이세상 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이다. 내가 이세상에 태어나지 않았 다 할지라도 태양은 뜨고 달은 지구를 돌며 어둠을 밝힐 것이다. 들판에는 벼가 자라고, 시냇물이 흐르고, 뒷동산 나무와 숲에는 새들이 노래하고 철따라 꽃들이 핀다. 그 가운데 사람들이 아웅다웅 살아갈 것이다. 자신이 이 세상에 없으면 큰일이라도 일어날 듯이 사람들은 야단 법석을 떨지만 장마가 휩쓸고 간 자리보다, 가을바람이 지나간 자리보다 표가 나지 않고 아무런 변화나 이상한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문제는 대상을 어디에 두느냐에 달려 있다. 내가 있으나 없으나 마찬가지일 것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다. 자연은 자연의 법칙에 의해 순리대로 돌아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생각을 한 번 바꿔보자. 내가 있으니 세상도 있고, 아름다운 자연도 있고, 국가도 있고, 교회, 직장, 가정도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내가 있으니 사랑하여야 할 사람이 있고, 섬겨야 할 사람도 있다. 이와 같이 내가 없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나 이외에 다른데 두었을 때는 나는 있어도 없어도 그만 이었지만 내가 있다는 사실을 나 자신에게로 맞추면 내가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 소중한 사실이 된다. 있다 없다의 차이는 객관적인 측면에서 바라볼 것이 아니라 주관적인 자리에서 보아야 할 것이다. 나를 중심으로 내가 있기에 세계가 있고 내가 없으면 아무것도 없다. 즉 내가 이세상에서 사라지면 나에게는 세상도 사라진다. 그러니까 내가 이세상에 있어야 다른 모든 것들도 존재하고 내가 사라지면 세계와 우주도 사라진다. 즉 나는 커다란 우주와 1:1의 관계다 그 처럼 소중하다. 내가 존재한다는 것, 이것이 모든 것의 출발이며 이로부터 세계와 우주에 의미가 부여된다. 우주의 중심점이 내게 있으며 세계의 초점이 나에게 있다. 나의 존재는 이와 같이 소중하고 지금 내가 여기에 있다는 사실이 세계로부터 이목의 대상이 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내가 있다는 것,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은 나의 육체, 몸이 있다는 것이다. 우주는 얼마나 넓고 광대한가? 수많은 별들 가운데 태양계를 돌고 있는 작은 지구에 발을 붙이고 살아가는데 그 지구의 인구는 70억이 넘는다. 70억 가운데 한 사람이 나라는 존재이다. 얼마나 작고 미미한 것인가. 그런데 사람들은 이작고 보잘것 없는 육체를 붙들고 울고불고 야단법석을 떤다. 성형을 한다, 틀니를 끼운다, 소화가 안된다, 발등이 부었다며 조금만 아프고 불편해도 병원을 찾아 다닌다. 이것이 인간이다. 나의 모습이다. 그러면 우리들의 일생을 생각해보자. 1920년도에 출생하여 2000년도에 돌아가셨다면 80년을 사신 분이다. 평안북도 동룡굴에 가면 석순이 1cm 자라는데 백 만년이 걸리는 종유석이 있다. 여기에 80년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우리는 이러한 유한의 시간 속에 살아가면서 누구는 장수했고, 누구는 요절했으니 불행하다고 말을 한다. 내가 너보다 두 살 더먹었으니 형이고, 저 사람은 5년이나 일찍 죽었다고 계산하면서 살아간다. 내 일생의 길이를 우주의 영원한 시간과 비교해 볼 때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다는 말인가? 병원에서 임종을 앞둔 아버지가 서울에 사는 막내딸이 내려온다 는 소식을 듣고 꼭 보고 싶다며 기다렸다. 딸은 아버지가 임종하신 5 분 후에야 도착하였다. 5분의 여유를 마음대로 못하여 보고 싶었던 딸을 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것이 우리 인간이 아닌가. 우리는 내 목숨을 내 마음대로 어찌하지 못한다. 꿈과 포부가 컸던 젊은이가 갑자기 시체로 돌아오는 일도 있고, 생명이 무엇인지 모르는 어린 아이가 고열로 인해 생명을 잃기도 한다. 지금 이 순간에도 무슨 일 때문에 자신의 생명을 잃어버릴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1분 1초의 시간과 싸우고 있는 사람도 있다. 데카르트는 “생각하기 때문에 내가 있다”라고 했다. 인간은 다른 동물과는 달리 사고와 생각하는 지각능력이 있다. 그러나 아주 작은 조건으로 사색과 생각이 중단될 수도 있다. 대뇌층에 생기는 좁쌀 같은 물질이 우수한 시인을 정신병자로 만들기고 하고, 내장에서 자라는 작은 암 덩이가 지도자의 목숨을 하루아침에 빼앗아가고 세계를 무너지게 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위대한 지각력은 태평양 바다라고 하는 무의식 위에 잠시 떠올랐다 사라져 버리는 물거품 일 수도 있다. 어쨌든 내가 있다는 사실은 부정할 수가 없다. 우주 속에 아주 작은 육신, 무한대의 긴 시간 가운데 한 순간을 차지하고 있는 나의 생명, 어둠의 상태로 소멸해버리고 말 찰나의 의식, 이것이 바로 나이다. 그래도 이 우주 안에 작은 내가 존재한다는 것 이 내가 살아있어야 하는 존재 이유다. 그래서 나는 살아야 한다.
/김영진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4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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