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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e-전라매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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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금 읽었던 책 내용이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잦다. 글을 쓸 때 도 적절한 어휘가 잘 떠오르지 않고, 손에 쥔 물건을 찾는 일 또 한 비일비재하다. 대화할 때도 생각들이 머리에서 맴돌기만 하 고 입으로 터져 나오지 않아 당황스러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 다. 나이에 따른 피할 수 없는 과정이라 위로도 해보지만 어쩐지 서글퍼진다. 그럴 때면 맨땅을 더듬어 푸르게 제 길을 가는 우리 집 텃밭 넌출들이 부럽다. 잠자리가 하늘을 높이는 것은 그들만의 길을 만드는 것이며, 푸석한 삭정이에 깃드는 한 줌 바람도 제 길을 쉬어가기 위함일 것인데, 나는 기억이 희미해지기 시작하는 나 이가 되도록 내 길을 알지 못한다. 준비한 자료를 서둘러 유에스비에 담는다. 여느 때처럼 똑같 은 길을 따라 강의실로 향한다. 자동차 라디오를 켠다. 끄트머 리 부분의 대중가요 가사가 사라지고 진행자의 다정한 목소리 가 옆자리에 앉는다. 평소 가던 길로만 가는 것은 치매 예방에 좋은 것이 아니라는 또박또박한 진행자의 멘트에 귀를 세운다. 내가 사는 곳에서 강의실까지는 그리 멀지 않다. 삼거리 신호 등 앞에 멈춰 선다. 유기된 듯한 개 한 마리 휑한 건널목에 서 있 다. 좌우를 살피더니 초췌한 모습을 끌고 길을 건넌다. 무슨 생 각을 하는 것인지 목을 늘어트린 채 천천히 걷는다. 어디로 가 는 것일까. 나는 직진을 해야 하지만 유기견을 따라 낯선 길로 핸들을 돌린다. 미행하듯 따라가는 내가 부담스러운 것인지 가 다 서기를 반복하며 뒤를 돌아본다. 좁은 갈림길에서 잠시 서성 이는가 싶더니 골목의 모퉁이를 남겨두고 사라진다. 낯선 길, 그 길에 펼쳐진 생의 그림들. 오늘따라 스쳐 지나가 는 풍경들이 가까이 다가온다. 저만치 엄마의 손을 잡고 아장아 장 걸어오는 아이의 걸음이 어설프다. 저 아이의 설은 걸음은 이 십 년 후 어디에 닿아 있을까. 도로 한쪽으로 지나가는 붕어빵 장수 리어카 지붕의 천막이 위태롭게 흔들린다. 끌고 가는 것인 지 끌려가는 것인지 모를 노인의 허리가 굽어 있다. 그 뒤를 종 종걸음으로 밀고 가는 햇살이 힘에 부친 듯 가다 서기를 반복한 다. 내가 살아가야 할 나머지 길이 궁금해질 즈음 라디오에서 ‘인 생은 나그넷길’이라는 노랫말이 흘러나온다. 최희준의 ‘하숙생’ 에서처럼 나는 어디서 와 어디로 가고 있는 걸까. 아무리 둘러봐 도 희미하다. 갑자기 앞차의 움직임이 둔해지더니 이내 멈춘다. 뒤따르던 나도 브레이크를 밟는다. 다른 때 같으면 조바심에 경적을 울려 대거나 얼굴 붉히기도 하겠지만, 오늘은 그러려니 하며 시선을 창밖에 둔다. 도로를 물고 서 있는 상가에서 수시로 들고나는 표정들을 바라본다. 어떤 이는 해맑은 얼굴이고 어떤 사람은 심 각한 모습이다. 한동안 서 있던 자동차들이 서서히 움직인다. 정체의 진원지 를 지난다. 오토바이의 잔해와 핏물이 어지럽게 흩어져 있고 레 커차가 꽃상여 같은 경광등을 허공에 흩뿌리며 사고 차를 견인 한다. 오토바이를 운전한 사람은 살았을까, 죽었을까. 길과 길 이 부딪힌 현장을 지나며 사람의 길이 이처럼 쉽게 끝날 수 있겠다는 생각에 운전대를 바투 잡는다. 뭇사람들은 성현의 말을 따라 삶과 죽음이 하나라고 한다. 예전엔 그런 말이 잘 와닿지 않았다. 하지만 기억도 쇠하고 몸이 자주 아프면서부터는 생사일여라는 말이 새롭게 느껴진다. 그 러니까 오토바이 운전자처럼 잘못 든 길도 그만의 길이듯, 이명 이 곁들고 잦은 병치레를 하는 내 길도 길이지 싶다. 절름발이 삶일지라도 내가 내딛는 곳이 길이 되었듯 기억이 아프고 쇠한들 어쩌랴. 한 포기의 풀도 그대로 있지 않고 계절 또한 똑같은 모습으로 오지 않는 것이거늘, 나는 어디서 무엇을 찾아 헤맸고 또 보려 했는가. 오늘처럼 굳이 다른 길을 선택하 지 않더라도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일여一如이며 길인 것을. 늦은 강의실 문을 연다. 이제부터는 느낄 만한 가슴이 있는 수강생들이 내 눈 속에 길을 내는 시간이다. 결국 사는 동안 세 상이 살 만하고 아름다운 건 이들의 눈과 내 눈이 길처럼 얽혀 있기 때문일 터, 닿는 인연의 길들을 귀히 여길 일이다.
/배귀선
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