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8-08 08:58:20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07:00
·17:00
··
·17:00
··
·16:00
··
·16:00
··
·16:00
뉴스 > 칼럼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1-4)>유채꽃 필 때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08월 22일
ⓒ e-전라매일
곧게 뻗은 길을 두고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든다. 차창을 내리니 성큼 바다가 들어온다. 휘감았다 펴지는 길을 따라 하섬 전망대를 지나다 보면 적벽강과 채석강을 잇달아 만난다. 이태 백과 소동파가 즐겨 찾았다는 중국의 강과 그 경치가 닮은 데 서 따온 이름인데, 오랜 시간 화강암과 편마암 퇴적층이 쌓아 올린 단애는 부안의 명소로 꼽힌다.
숨은 비경으로 사랑받는 적벽강 발치에 자동차를 세운다. 먼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는 듯한 사자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옛사 람이 걸어온 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곳이기도처다. 바위 위에 소나무 몇 그루 두르고 자리 잡은 당집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지형적으로 곶串에 위치해 있어 어느 시대건 이곳을 제의를 치를 만한 곳으로 정했을 성싶 다. 바닷바람에 유채꽃 흔들리는 언덕을 가로질러 오르다 보면 파도 소리 울타리처럼 두른 당집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간 당집은 정갈한 종부宗婦 같은 모습이다. 웅장 함을 자랑하는 그리스 신전과 달리 우리나라 당집들은 대부분 정겹다. 마침 당집을 관리하는 주민의 손에 제당의 문이 열린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한 당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양할미는 여느 가족 구성원처럼 친숙한 이름이지만 실은 칠산바다를 다 스리는 해양 수호신이다. 수성당水聖堂은 그런 개양할미의 당화 를 모신 제당이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인다. 범접 할 수 없는 무서움과 근엄함이 서린 다른 신들(당화)의 모습과는 달리 개양할미의 얼굴은 동글동글하다. 그래선지 우러러 경외 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응석을 부려도 받아줄 것처럼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웃집 할머니를 만난 것 같 은 내 관심이 재밌어 보였는지 청소하던 마을 주민이 다가온다. 그는 제당 뒤편 신우대 서걱이는 소리를 훔치더니 내 곁에 앉는 다. 여울굴 해조음과 함께 주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당화 속 개양할미는 여덟 딸과 함께 이곳 칠산바다의 풍요와 무사를 관장한단다. 수성당이라는 당호 역시 물의 신, 그러니까 ‘열 개’ 자와 ‘바다 양’ 자를 써서 바다를 열고 닫는, 바다를 관장 하는 의미에서 ‘개양開洋할미’라 불린다는 주민의 힘주어진 말에 개양할미가 나막신을 신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하루가 기울어진다. 노을 짙어지는 수성당 멀리 수평선을 가르며 고깃배 한 척 통통거리며 들어온 다. 그 옛날 가랑잎 같은 풍선風船에 목숨을 맡겨야 했던 고기잡 이나, 봄마다 고깃배들이 밝힌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뤘다고 하 는 파시철이나 모두 신의 돌봄이 필요했을 터, 시간에 쫓겨 눈 인사나 나누는 게 대부분인 관광객들의 추임새가 주민의 흥을 돋웠을까, 파도처럼 꼬리를 물고 귀를 세운 사람들에게 묵은 이 야기가 이어진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안개가 끼어 길을 찾 지 못하고 고군산군도까지 밀려가고 있었단다. 안타까워하는 가족의 외침을 듣고 개양할미가 바다에 들어가 어부를 구해 왔 는데 자세히 보니 바닷물이 발목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키가 컸 다고 한다. 큰 키의 개양할미는 나막신을 신고 수시로 바다를 오가며 깊은 곳은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메우고, 풍랑이 일어나면 물살을 잠재워 풍어와 무사 항해를 도와주었더란다. 동 네 주민은 마치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는 것 같은 정겨운 이야기보따리를 철썩거리는 바다에 풀어놓는다.
칠산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조기잡이 어장으로 파시 를 이루던 곳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고깃배들이 조업을 시작하 기 전 빼놓지 않고 하는 의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개양할미를 향한 제의였다. 믿음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에 있는 것이 듯 이들의 제사의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풍어와 무사고를 빌 고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하게 빠져나간다. 잊고 있던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린다. 수성당 옆 여울굴을 휘돌아 나오는 해조음 이다. 해식동굴인 여울굴은 개양할미의 또 다른 거처다. 말하자 면 수성당은 개양할미의 공식적인 거처이고 여울굴은 사저(?) 인 셈이다. 입과 입을 거치는 동안 설화적 입장이 어떻게 변형되 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어림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역 어민들에게 개양할미는 바다에 빠지지 않을 만큼 키가 큰 존재 였으며, 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뱃사람들의 안녕 을 돕는 해신이었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당화 속 개양할미는 여덟 딸을 낳아 인근 바다를 관장하게 하고 막내딸만 데리고 이곳 수성당에서 살았다 고 한다. 그 설화를 뒷받침하듯 당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개양 할미가 막내딸을 안은 채 중앙에 앉아 있다. 그 앞과 양옆으로 일곱 딸이 모여 있는 구도다. 마치 가족사진을 찍어 벽에 걸어 놓은 것처럼 다복한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당화 속 딸들 역시 칠산바다를 중심으로 위도* 와 전라남도 영광과 고창 등의 당집에 거주하며 뱃길을 관장하 고 고기잡이를 돕는다는 설화적 입장을 갖고 있다. 구전의 양상 이야 이렇든 저렇든 부안 죽막동 사자바위 등허리에 거처하는 수성당 해양설화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신과 인간의 이야기 다. 삼면의 거친 바다를 살아내야 했던 부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화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문제 를 넘어 삶으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 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칠산바다의 노을이 여울여울 당집을 찾아든다. 사람이나 풍 경이나 마음을 넘나드는 조우는 늘 그렇듯 아쉬움을 자아낸다. 생의 그림자 같은 미련과 소망을 거슬러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떠나갔듯 나 또한 일상의 삶을 향해 이제 그만 돌아서야 한다. 집을 향하는 발등에 축축한 해조음 얹힌다. 개양할미와 여덟 딸이 둘러앉은 다복한 거처는 아니지만, 가만히 눈 감으면 누렇 게 바랜 그리움이 물드는 곳. 오래된 벽지 속 유채꽃 속에서 어 떤 때는 개양할미처럼 따뜻한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는 내 영혼 의 당집. 살다가 힘들어질 때 마주하면 금방이라도 속삭일 것 같은 벽지의 언어가 기다리는 낡은 내 거처를 향해 걸음을 재촉 한다.
파도 소리 촘촘한 유채꽃 속에서 고독의 기척이 인다. 내 삶 의 또 다른 문양이 노을 속으로 이울어간다.
* 부안에 위치한 섬 이름. 고슴도치 섬이라고도 불린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08월 22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귀농·귀촌으로 다시 뛰는 김제, 지역 활력으로 이어지다  
전주비전대, K-컬처 기술인재 양성 AI 실무연수 성료  
도서관, 책을 넘어 사람과 지역을 잇다  
김제, ‘머무름’의 가치를 깨우다… 체류형 관광 이정표 제시  
지역소멸의 시대, 마을의 시간을 기록하다  
정읍시 ‘잘 쓰는 행정’ 선언…재정혁신으로 미래 기반 마련  
고창군, 민선 8기 3년…산업·관광·복지 10대 성과 결실  
김제시, 생활밀착형 자살예방 안전망 확대  
포토뉴스
어반자카파·심수봉부터 AI 판소리까지…전주세계소리축제 `풍성`
2026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대중음악과 전통예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감성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 
국립민속국악원, 임서연 `강산제 심청가` 완창 무대
국립민속국악원이 판소리 완창의 깊은 멋을 느낄 수 있는 '소리 판' 무대를 마련한다.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22일 오후 2시 예음헌에서 소리꾼  
지역 창작연극 `감정거래소` 8일 우진문화공간 무대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지원하는 창작 연극 '감정거래소'가 오는 8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이번 공연은 전북문화관광재단 
백정신 센터장 ˝청년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 만들겠다˝
삼천생활문화센터가 청년들의 취향 탐색과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오늘은 딴짓 좀 하겠습니다 : 기지개 기록'을 운영하며 참가자를 모 
전주문화재단 공연예술지원 선정작 `전주-무경` 무대 오른다
전주문화재단의 2026 공연예술지원 사업 선정작인 '박현희 무브먼트'의 창작 한국무용 공연 'RETURN-전주-무경(舞景)'이 오는 8일 전주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