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1-4)>유채꽃 필 때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8월 22일
|
 |
|
| ⓒ e-전라매일 |
| 곧게 뻗은 길을 두고 구불구불 해안선을 따라 든다. 차창을 내리니 성큼 바다가 들어온다. 휘감았다 펴지는 길을 따라 하섬 전망대를 지나다 보면 적벽강과 채석강을 잇달아 만난다. 이태 백과 소동파가 즐겨 찾았다는 중국의 강과 그 경치가 닮은 데 서 따온 이름인데, 오랜 시간 화강암과 편마암 퇴적층이 쌓아 올린 단애는 부안의 명소로 꼽힌다. 숨은 비경으로 사랑받는 적벽강 발치에 자동차를 세운다. 먼 바다를 향해 엎드려 있는 듯한 사자바위가 눈에 들어온다. 옛사 람이 걸어온 자취를 따라 가다 보면 심심찮게 만나게 되는 곳이기도처다. 바위 위에 소나무 몇 그루 두르고 자리 잡은 당집이 언제부터 있었는지 알 수는 없으나, 지형적으로 곶串에 위치해 있어 어느 시대건 이곳을 제의를 치를 만한 곳으로 정했을 성싶 다. 바닷바람에 유채꽃 흔들리는 언덕을 가로질러 오르다 보면 파도 소리 울타리처럼 두른 당집이 보인다. 가까이 다가간 당집은 정갈한 종부宗婦 같은 모습이다. 웅장 함을 자랑하는 그리스 신전과 달리 우리나라 당집들은 대부분 정겹다. 마침 당집을 관리하는 주민의 손에 제당의 문이 열린다. 바다를 내려다보는 듯한 당화가 한눈에 들어온다. 개양할미는 여느 가족 구성원처럼 친숙한 이름이지만 실은 칠산바다를 다 스리는 해양 수호신이다. 수성당水聖堂은 그런 개양할미의 당화 를 모신 제당이다. 좀 더 자세히 보기 위해 몸을 기울인다. 범접 할 수 없는 무서움과 근엄함이 서린 다른 신들(당화)의 모습과는 달리 개양할미의 얼굴은 동글동글하다. 그래선지 우러러 경외 해야 할 대상이라기보다는 무릎에 얼굴을 묻고 응석을 부려도 받아줄 것처럼 친근함이 느껴진다. 이웃집 할머니를 만난 것 같 은 내 관심이 재밌어 보였는지 청소하던 마을 주민이 다가온다. 그는 제당 뒤편 신우대 서걱이는 소리를 훔치더니 내 곁에 앉는 다. 여울굴 해조음과 함께 주민의 이야기가 이어진다. 당화 속 개양할미는 여덟 딸과 함께 이곳 칠산바다의 풍요와 무사를 관장한단다. 수성당이라는 당호 역시 물의 신, 그러니까 ‘열 개’ 자와 ‘바다 양’ 자를 써서 바다를 열고 닫는, 바다를 관장 하는 의미에서 ‘개양開洋할미’라 불린다는 주민의 힘주어진 말에 개양할미가 나막신을 신고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 같다. 이야기가 무르익는 동안 하루가 기울어진다. 노을 짙어지는 수성당 멀리 수평선을 가르며 고깃배 한 척 통통거리며 들어온 다. 그 옛날 가랑잎 같은 풍선風船에 목숨을 맡겨야 했던 고기잡 이나, 봄마다 고깃배들이 밝힌 불빛으로 불야성을 이뤘다고 하 는 파시철이나 모두 신의 돌봄이 필요했을 터, 시간에 쫓겨 눈 인사나 나누는 게 대부분인 관광객들의 추임새가 주민의 흥을 돋웠을까, 파도처럼 꼬리를 물고 귀를 세운 사람들에게 묵은 이 야기가 이어진다. 어느 날, 한 어부가 고기잡이 나갔다가 안개가 끼어 길을 찾 지 못하고 고군산군도까지 밀려가고 있었단다. 안타까워하는 가족의 외침을 듣고 개양할미가 바다에 들어가 어부를 구해 왔 는데 자세히 보니 바닷물이 발목에도 미치지 못할 만큼 키가 컸 다고 한다. 큰 키의 개양할미는 나막신을 신고 수시로 바다를 오가며 깊은 곳은 치마폭에 돌을 주워 담아 메우고, 풍랑이 일어나면 물살을 잠재워 풍어와 무사 항해를 도와주었더란다. 동 네 주민은 마치 할머니 무릎을 베고 누워 듣는 것 같은 정겨운 이야기보따리를 철썩거리는 바다에 풀어놓는다. 칠산바다는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조기잡이 어장으로 파시 를 이루던 곳이다. 전국에서 모여든 고깃배들이 조업을 시작하 기 전 빼놓지 않고 하는 의식이 있었으니, 다름 아닌 개양할미를 향한 제의였다. 믿음은 이해의 차원이 아니라 실천에 있는 것이 듯 이들의 제사의식은 지금까지도 이어져 풍어와 무사고를 빌 고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왁자하게 빠져나간다. 잊고 있던 소리가 귓가에 어른거린다. 수성당 옆 여울굴을 휘돌아 나오는 해조음 이다. 해식동굴인 여울굴은 개양할미의 또 다른 거처다. 말하자 면 수성당은 개양할미의 공식적인 거처이고 여울굴은 사저(?) 인 셈이다. 입과 입을 거치는 동안 설화적 입장이 어떻게 변형되 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한 가지 어림해 볼 수 있는 것은 이 지역 어민들에게 개양할미는 바다에 빠지지 않을 만큼 키가 큰 존재 였으며, 나막신을 신고 서해를 걸어 다니면서 뱃사람들의 안녕 을 돕는 해신이었다는 것이다. 일설에 따르면 당화 속 개양할미는 여덟 딸을 낳아 인근 바다를 관장하게 하고 막내딸만 데리고 이곳 수성당에서 살았다 고 한다. 그 설화를 뒷받침하듯 당화의 특징을 살펴보면, 개양 할미가 막내딸을 안은 채 중앙에 앉아 있다. 그 앞과 양옆으로 일곱 딸이 모여 있는 구도다. 마치 가족사진을 찍어 벽에 걸어 놓은 것처럼 다복한 모습이다. 중요한 것은 당화 속 딸들 역시 칠산바다를 중심으로 위도* 와 전라남도 영광과 고창 등의 당집에 거주하며 뱃길을 관장하 고 고기잡이를 돕는다는 설화적 입장을 갖고 있다. 구전의 양상 이야 이렇든 저렇든 부안 죽막동 사자바위 등허리에 거처하는 수성당 해양설화는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신과 인간의 이야기 다. 삼면의 거친 바다를 살아내야 했던 부안 사람들의 이야기가 신화화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것은 어쩌면 삶에 대한 문제 를 넘어 삶으로부터 이탈할 수밖에 없는 죽음에 대한 공포 때문 일 거라는 생각을 해보며 자리에서 일어선다. 칠산바다의 노을이 여울여울 당집을 찾아든다. 사람이나 풍 경이나 마음을 넘나드는 조우는 늘 그렇듯 아쉬움을 자아낸다. 생의 그림자 같은 미련과 소망을 거슬러 수많은 사람이 이곳을 찾고 떠나갔듯 나 또한 일상의 삶을 향해 이제 그만 돌아서야 한다. 집을 향하는 발등에 축축한 해조음 얹힌다. 개양할미와 여덟 딸이 둘러앉은 다복한 거처는 아니지만, 가만히 눈 감으면 누렇 게 바랜 그리움이 물드는 곳. 오래된 벽지 속 유채꽃 속에서 어 떤 때는 개양할미처럼 따뜻한 어머니를 만나기도 하는 내 영혼 의 당집. 살다가 힘들어질 때 마주하면 금방이라도 속삭일 것 같은 벽지의 언어가 기다리는 낡은 내 거처를 향해 걸음을 재촉 한다. 파도 소리 촘촘한 유채꽃 속에서 고독의 기척이 인다. 내 삶 의 또 다른 문양이 노을 속으로 이울어간다. * 부안에 위치한 섬 이름. 고슴도치 섬이라고도 불린다.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8월 22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