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온 이야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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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5살 때부터의 일을 어렴풋이 기억을 한다. 그 해에 할아버지 가 돌아가셔 장례식을 치렀다고 하는데 상가집 풍경을 내가 기억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해에 큰누나 손 을 잡고 교회 유년부에 들어가 요절을 외우며 하나님을 알아가기 시 작하였다. 일요일이면 오후 2시 주일학교에 가서 예배를 드리고 오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날 예배를 마치고 나오려는데 신장 에 벗어둔 내 고무신이 보이지 않았다. 지난 추석에 아버지께서 사다 주신 새 신발인데 내 것은 보이지 않고 다 찢어진 신발 한 켤레가 남 겨진 것이다. 어찌할 수 없어 그 신발을 끌고 집에 와서 마루 밑 안쪽 에 벗어놓았는데 아버지가 아시고 어찌 된 일이야고 물으시는 것이었 다. 사실대로 말씀을 드렸는데 바보같이 제 신발도 잊어버리고 다닌 다며 되게 꾸지람을 들었다. 헌 신발을 꿰매어 신고 다닌 지 한 달 후에서야 새 신발을 다시 사 주셨다. 내가 조금은 띨띨했던 것인지 초등학교에 들어가서 학습 진도를 제대로 따라가지 못하고 뒤처지기만 하였다. 2학년에 가서야 겨우 국 문을 해독하여 책을 읽기 시작하였고 공부하는데 힘이 들었다. 늦게 트이기 시작하였는지 3학년 가서야 중간을 가기 시작하더니 앞서기 시작했다. 5학년 가을 운동회 때 사촌들과 둘러앉아 점심을 먹고 있 는데 작은 아버지께서 나무로 된 총을 사가지고 오셔서 당신 아들에 게만 주고 하시는 말씀이 “너희들도 갖고 싶으면 말해, 내가 사 줄 테 니까” 하시는 것이었다. 갖고 싶은 마음은 굴뚝같았으나 비위가 없어 말을 못했다. 그래도 우리 집은 농촌에서 괜찮게 사는 편이었다. 세경 10가마짜 리 머슴이 있었고 비가 내리면 제 때 논밭을 갈 수 있는 소가 있었 다. 소 풀 먹이고 꼴을 베는 일은 내 몫이었지만 든든하였다. 아버지 는 농사일을 잘하셨다. 건장하시고 힘이 좋으셔 보통 사내들의 서너 몫은 거뜬히 하신다는 마을사람들의 후문이었다. 아버지를 뒤따라 다니면서 일을 거들어드릴 때에도 내가 하는 일이 시원찮다며 핀잔 을 주기 일쑤였다. 어머니는 정말 바쁘셨다. 밥하랴, 빨래하랴, 아이 들 돌보랴, 낮에는 논밭 일을 하랴, 저녁에는 바느질에 마름질까지 눈 코 뜰 새가 없었다. 그래도 어머니께서 지으신 밭농사는 최고였다. 채 전 밭에 가면 배추, 무, 상추가 탐스럽고 고추밭에 가면 주렁주렁 달 린 고추들이 빨갛게 익어갔다. 가뭄에는 물을 길어다 주고, 비가 올라치면 가다렸다는 듯이 소매통을 비워 비료로 뿌려준 어머니의 정 성과 땀의 결실이다. 우리 집은 감나무 집이었다. 감나무가 집 주변과 언덕에 스무 그루 가 넘게 있어 불리어진 이름이다. 먹을 것이 부족하고 더욱이 간식거 리가 없을 여름과 가을 어간에는 감나무가 큰 몫을 하였다. 장마가 지나고 태풍이 몰아치면 주먹만 한 감들이 견디지 못하고 쏟아졌다. 동네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물에 담가 우리어 떫은맛이 사라지 면 훌륭한 먹거리가 되었다. 할아버지께서 손지들에게 무슨 선물을 할까 고심을 하시다가 감나무를 남겨 주신 것이라 한다. 여기저기에 서 돌감나무를 구해 집근처에 옮겨놓고 접을 붙여 기르셨다는데 가 을이면 할아버지의 정성과 사랑이 노랗고 빨갛게 하늘에 달린다. 바 라보기만 하여도 배가 불렀다. 나는 어려서 내성적이었다. 하고 싶은 말이 있어도 바로 말하지 않 고 기다리는 편이었다. 그러나 남의 말을 귀 기울여 들을 줄을 알았 고 참고 기다리는 것을 잘했다. 후에 공부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된 것 같다. 그리고 호기심과 궁금증이 많아 책읽기를 좋아하였다. 당시 형 님이 대학교에 다니셨기 때문에 집에 책이 많았었다. 방과 후 신작로 에 나와 소를 먹이면서도 꼭 책을 들고 나와 책을 읽었다. 책 읽는 것 이 좋았었다. 그래서 동네 어른들도 장차 커서 무엇이 될 것인지 기 대가 컸다 한다. 우리 동네는 금강이 굽이쳐 흐르는 곳에 넓은 들판이 있고, 산세가 좋아 아름다운 곳이다. 봄이면 앞산에 진달래가 피고, 여름이면 뻐꾸 기가 울고, 가을이면 들판의 곡식들이 익어가고, 겨울에는 대밭의 참 새들이 소란스러웠다. 물이 맑고 먹거리가 풍부했다. 뒷동산에 오르면 굽이쳐 흘러가는 금강이 봇물을 이루고 산바람 이 시원하여 연날리기에 좋은 곳이었다. 어린 꿈들을 모아 연에 새겨 날리기를 얼마였던가. 밤새워 풀칠을 하여 만든 방패연이 하늘 높이 날아오르면 연줄의 짱짱한 긴장감, 연줄이 끊겨 하늘로 날아가던 허 망함, 수없이 날린 꿈들이 영글어 돌아올 날이 기다려진다. 부모님과 함께 9남매가 의좋게 살았다. 이불 한 채로 안방에서는 아랫목에 아버지, 어머니가 누우시고 그 다음 내가, 내 옆에 남동생 그리고 여동생 셋이 잠을 잤다. 건너 방은 누나들 셋이서 차지하였 고 그 옆방은 형님 방인데 대학교에 다니기에 책들로 가득 채워졌고 비어 있었다. 당시 초가집이었는데 조금도 불편한 줄 모르고 생활을 하였다. 나는 누나들로부터 여러 가지 많은 도움을 받았다. 내가 돈 을 벌게 되면 조카들 하나씩은 맡는다고 하였는데 오히려 누나들로 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 누나들이 하나 둘 시집을 가고, 그리도 건장하셨던 아버지가 암으 로 돌아가시고, 폐결핵 후유증으로 형님이 가시고, 동생들도 짝을 찾 아 모두들 나가고, 요양원에서 계셨던 어머니도 쓸쓸히 가셨다. 이제 부모가 없는 천생 고아로 살아간다. 동기동기 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동기들이 뿔뿔이 흩어져 살아가고 애경사나 있어야 얼굴을 겨우 보는 형편이니 사는 것이 무엇인지 트로트 가사의 한 소절처럼 인생은 미완성인가. 그렇게 끝나는 것인가? 70을 넘기면서 세월이 야속한 것 인지 시대가 야속한 것인지 알 수 없다.
/김영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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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08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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