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훈 공감, 톡톡! 이달의 독립운동가] 이종암·이강훈·엄순봉 선생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0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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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보훈부는 10월의 독립운동가에 조국의 독립을 위해 친일파 처단 등 의열활동을 펼친 이종암·이강훈·엄순봉 선생을 선정했다. 이종암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서간도 신흥무관학교에서 속성과정을 거쳐 수료했고, 동창생들과 1919년 11월에 의열단을 창립했다. 선생은 국내로 밀입국해 최수봉을 만나 폭탄 거사를 제의해 거사를 성공시키고 1921년 12월 북경의 의열단 본부에 합류했다. 또한, 1922년 3월 28일 황포탄 부두에서 일본 육군 대장 다나카 기이치 암살 거사에 참여했으나 실패 후 탈출했다. 선생은 의열단 조직정비 때 최고지도부 격인 5인 ‘기밀부’의 일원이 됐으며, 국내 투쟁을 위한 요원으로 선정돼 비밀리에 입국했으나 경북 달성군에 은신하던 중 일제 경찰의 급습을 받아 체포됐다. 선생은 경찰과 검사국에서 혹독한 신문을 당했고 이후 가출옥 됐지만 지병과 고문 후유증으로 인해 조국의 독립을 보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이강훈 선생은 임시정부에 뜻을 품고 중국으로 망명했고 신민부 군사위원장 김좌진의 지령을 받고 국내로 귀국해 함경도를 순회하며 군자금을 모집했다. 선생은 무정부주의자 비밀결사 남화한인청년연맹에 가입하고 ‘항일구국연맹‘의 결성에도 참여해 적극 활동했다. 선생은 중국 정부 요인과 은밀히 접선한다는 일본 공사 아리요시 아키라를 암살하기 위한 육삼정 의거를 계획했으나 실패해 일본영사관 경찰서로 끌려가 심한 고문을 받았다. 광복 후 출옥한 성생은 백정기·윤봉길·이봉창 3의사의 유해 발굴과 봉환 문제를 임시정부 요인들과 상의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3의사의 유해를 모두 찾아내어 귀국했으며, 선생과 국민들의 노력으로 합동 장례를 치르고 효창공원에 안장할 수 있었다. 엄순봉 선생은 남만주로 망명했고 안도현으로 이동해 이강훈 선생을 통해 북만주 해림에서 김좌진 장군을 만나 신민부에 합류했다. 이후 한족총연합회 청년부 차장으로 활동했으며 상해로 이동해 남화한인청년연맹과 항일구국연맹에 가입해 독립운동을 이어나갔다. 선생은 육삼정 의거가 실패로 끝나자 안경근·오면직·이달·이용준 등과 함께 일본영사관 밀정인 이종홍을 처단하고, 독립운동에 방해물이 되는 옥관빈을 사살했으며, 1935년 봄 친일파 이용로를 처단한 끝에 중국 순경들에게 붙잡히고 일본 영사관 경찰로 넘겨져 모진 고문을 받았고 치안유지법 위반 등으로 사형 선고를 받아 젊은 나이로 순국했다. 정부는 조국 독립을 위해 목숨을 아끼지 않는 희생정신으로 의열투쟁의 불꽃을 크게 피운 선생들의 공훈을 기리기 위해 이종암 선생에게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엄순봉 선생에게는 1963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각각 추서했고, 이강훈 선생에게는 1977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했다. /제공=서부보훈지청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0월 0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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