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디자인하다(1-4)]쑥물 한 중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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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를 몰고 어느 음식점 앞을 지나가는데 간판 우측에 내 건 정호승의 시 「여름밤」이 눈에 띄었다. 시를 운율에 따라 읊기라도 하듯 커다란 직사각형 현수막이 바람결에 살살 흔들리고 있었다. 들깻잎에 초승달을 싸서 / 어머님께 드린다 / 어머니는 맛있다고 / 자꾸 잡수신다 // 내일 밤엔 /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려야지 달과 별이 한꺼번에 쏟아져 가슴을 쿵쿵 친다. 들깻잎에 싸다니 얼마나 향기롭고 친근한 맛인가. 맛있다고 잡수시니 내일은 또 상추잎에 별을 싸서 드린단다. 달도 별도 자주 보지만 달처럼 특별하고 별처럼 빛나는 게 있을까. 자식이 주는 정성이 얼마나 기꺼웠으면 어머니는 맛있다고 자꾸자꾸 잡수셨을까. 상념에 빠지다가 나는 어머니께 무엇을 저리 정성껏 싸 드려보았나. 차창 밖으로 멀리 시선을 옮겨본다. 한참을 떠올려 보아도 향기로운 아무것도 드린 게 없다. 나이 열일곱 살에 어머니를 여의었다고 변명처럼 중얼거리는데 희미한 기억 하나가 스친다. 어림잡아 여섯 살쯤이었다. 그것도 드렸다고 친다면 쓰디쓴 쑥물 한 중발이었다. “엄마, 쑥물 드세요.” 진하게 만든 쑥즙을 어머니 앞에 내밀었다. 딴에는 엎질러지지 않도록 조심하면서 어서 마시라고 재촉까지 하였다. 하던 바느질을 밀쳐두고 재봉틀에서 내려와 있던 젊은 엄마는 마실 나온 이웃집 할머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이었다. 방문을 열어놓고 마루에 앉았었는데 앞산에서 우는 뻐꾸기 소리가 손에 잡힐 듯한 늦봄 무렵이었다. 둘은 담소를 나누며 고개를 끄덕이기도 했고 가끔 심각한 표정을 짓기도 했다. 흡사 나이가 지긋한 어머니와 젊은 딸 사이 같았다. 그러던 사이에 어린애가 불쑥 내미는 약그릇을 보고 어른들은 뜬금없다는 듯 한참 동안 말없이 서로 바라보았다. 할머니는 내 얼굴도 번갈아 바라보다가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감 잡았다는 듯이 내게 물었다. “아가, 엄마가 머리 아프다고 하니까 약 만들어 왔냐?” 그랬다. 두 어른 곁에서 놀다가 대화의 한 토막을 얼핏 들었다. 어머니는 머리가 아프다고 하였고, 할머니는 걱정스러워했다. 그러고 보니 엄마는 기력이 없어 보였다. 얼굴이 창백하기도 하고 살짝 수심이 깃든 모습이기도 하였다. 그 순간 나는 어머니가 병이 났으니 약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중발 하나를 챙겨서 집 앞 냇가로 나갔다. 풀잎을 뜯어다가 반찬을 만들고, 몽근 흙을 퍼서 밥이라며 냠냠거렸던 소꿉놀이 터에서 쑥즙을 만들기 시작했다. 산골 마을 냇가에는 여느 시골처럼 쑥이 많았다. 샘물에 진배없이 도랑물은 깨끗했다. 쑥 잎을 뜯어서 물에 씻은 후 납작한 돌 위에 얹었다. 동그란 돌멩이를 공이 삼아 짓찧었다. 소꿉장난할 때 여러 번 해보았던 놀이를 재연했으리라. 찰방찰방하게 쑥물이 배어 나오면 작은 손아귀로 있는 힘껏 쥐어짰다. 손가락 사이로 흘러내리는 암녹색 쑥즙에서 강하고 씁쓸한 향이 올라왔다. 이 맛과 향이 약이 되리라 찰떡같이 믿었다. 당시 쑥은 국이나 떡, 쑥버무리 등으로 접했고 그 즙을 약으로 마셨던 일을 흔히 보았다. 특히 체하거나 기운이 없을 때 코를 잡고라도 목 안으로 넘겼다. 그래서 어머니도 머리가 아프니 체했을 것이라고 예단했다. 쑥즙을 만들어서 체기가 ‘쑥’ 내려가게 마셔야 한다고 내 맘대로 처방을 내렸다.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 그때 어머니의 그 두통은 셋째를 수태하여 입덧 중에 나타난 증상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식사를 제대로 하지 못해 기력이 없었고 수심이 깃든 얼굴은 내리 두 딸을 낳고 또 딸을 낳을까 봐 불안한 마음 때문이었단다. 상큼한 풋살구 같은 과일이나 입덧을 이기는 음식이 필요했을 시기에 소화제 같은 쑥물이나 마시라고 들이밀었으니 얼마나 가당찮고 우스웠을까. 메스꺼운 울렁증이 가라앉기는커녕 부추기지는 않았을지. 아주 가끔 그때 그 쑥물을 왜 만들었을지 자문했다. 어린 마음에도 나와 동생의 전부였던 어머니가 아파서는 안 된다는 간절함이었을지, 삶과 죽음이 뭔지도 몰랐을 때였지만 어머니가 아니면 죽을 수밖에 없으니 본능적으로 밀착된 건 아니었을지, 생활 능력이나 현실감이 적었던 아버지를 신뢰하기보다는 거목에 붙은 매미처럼 엄마에게 달라붙어야 한다는 일종의 영악함이었을지. 아니면 심청이 같은 효심이 싹트고 있었나, 두둔하다가 그예 웃고 만다. 살면서 얼토당토않은 생각과 판단을 한 적이 더러 있었는데 그 첫 번째가 이 쑥물 사건이지 싶다. 그나마 지금은 씁쓸한 한 중발의 효성을 대접할 어머니가 없다. 할 수만 있다면 귀하디귀한 달이나 별은 제쳐두고 구운 삼겹살 한 점이라도 싸서 어서 드시라고 권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다. 그리고 어느 늦봄의 한나절 마루에 앉아 도란거리던 풍경 속에 어머니와 내가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그림 한 조각을 덧대 본다.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0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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