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8-08 08:00:49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07:00
·17:00
··
·17:00
··
·16:00
··
·16:00
··
·16:00
뉴스 > 칼럼

[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1-5)]새참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0월 24일
ⓒ e-전라매일
볕이 고추만큼이나 매워졌다. 땀을 닦으며 집에 드니 참 때 다. 주머니에 넣어온 풋고추 몇 개 꺼내놓고 아침 겸 점심을 찬 물에 만다. 탱탱해진 밥 한 수저 욱여넣는다. 된장 얹은 고추를 베어 물자 전화벨이 울린다. 원고청탁이다. 목소리로 미루어 미 안한 마음 뚜렷하다. 급작스러운 청탁인 만큼 어디 편하겠는가. 한두 번 경험한 일도 아니어서 덤덤히 듣는다.
“오늘 오후 6시까지 칼럼 좀 써 주셔야겠어요. 꼭 좀 부탁합 니다.”
지역신문 관계자의 목소리가 뙤약볕 푸성귀처럼 숨죽어 있다. 얼마나 다급했으면 나 같은 사람에게 부탁하겠나 싶어 고추 수확을 미루고 책상 앞에 앉는다. 어찌 보면 땜빵인 셈인데, 문 득 ‘땜빵에 대한 단상’이라는 주제가 떠올라 글의 가닥을 잡는 다.
주관적으로 기울면 식상한 글이 되고 너무 객관적이면 글에 힘이 없으므로 손에도 눈에도 적당한 페이스를 유지하며 써 내 려간다. 그렇지 않으면 항의가 일기 때문에 최대한 평정심을 지 키며 이끌어 간다.
땜빵에 대한 단상
사전적 의미로 ‘사고로 머리에 남은 상처, 또는 머리에 군데군 데 머리카락이 나지 않는 부분’을 의미하기도 하지만, 다른 의미 로는 ‘대리, 대체, 대신해서 채우다’라는 말로 느낌상 어딘가 모 르게 부족한 듯한 뜻으로, 차선책인 꿩 대신 닭쯤으로 생각해도 무방할 것 같다.
그러나 영화에서 주연보다는 조연의 역할이 더 중요하고 문 학에서도 원관념보다는 보조관념이 살아 있어야 한다. 주제보 다 소재가 중요하듯 인간사에도 보일 듯 보이지 않게 드러내지 않는 보조적 행위야말로 주체를 있게 하는 미덕이 아니겠는가.
예수는 인간이라는 주체를 위해 사랑이라는 보조적 역할을 들 고 이 땅에 온 사람이다. 그는 자신의 삶을 사랑 땜빵에 바치고 십자가를 짊어졌다. 부처도 자비라는 땜빵의 역할을 인류에게 남기고 열반에 들었다. 풀 한 포기에서 사람에 이르기까지 아픈 곳을 어르고, 꺼져 가는 등잔의 심지를 끄지 않으며, 갈대 하나 에도 낭창한 허虛의 이치를 심어주고 스스로 땜빵에 든 사람들.
인간은 합리로만 해결될 수 있는 단순한 동물이 아니다. 현대 는 산업화의 지적 우월주의로 인간의 깊이에 무관심한 시대가 되었고, 감성은 상실되어 가고 있다. 즈음하여 우리 사회는 얼마 나 많은 사람이 땜빵의 역할보다는 주류가 되려 하는가. 그 주 류를 위해 갖은 술수를 마다하지 않는 게 현실이다.
나는 선거 때마다 위정자가 되려 하는 위인들의 문화예술 공 약에 관심이 많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의 문화예술에 대한 빈약한 열정과 지식에 아쉬움이 크다. 위정자로서 문학과 문화 예술에 대한 무관심은 곧 인간애의 발로인 감성의 물꼬를 막는 것이며 자기 근원을 상실한 것과 다름 아니기 때문이다. 감성이 없는 인간은 그저 단순한 동물로 전락하고 말게 된다는 말이다.
노벨 문학상과 국가적 차원의 문학 박물관 하나 없는 대한 민국의 문인들과 정치인들은 땜빵의 역할이 무엇인지 고민해야 한다. 21세기는 창의와 문화의 시대라고 한다. 이는 인간을 인 간답게 하는 예술을 터부시해서는 안 된다는 뜻으로 세계적 흐 름이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인간애적 인문학을 바탕으로 한 문학, 문화예술의 깊이와 저변의 지원을 고민할 때 국익의 효과 는 부차적으로 얻어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하겠다.
사람에겐 지식적인 것뿐 아니라 정적情的인 요소도 중요하다. 인생을 깨닫는 데는 두 가지가 있다. 책을 통해 깨닫는 것과 주 유천하, 즉 경험을 통해 깨닫는 방법이다. 한마디로 대자와 즉 자의 관계로 비견될 수도 있겠다. 하여, 논리와 합리에 치우쳐 인간의 깊이를 잊어버리는 우리에게 정적情的인 부분은 시사하 는 바가 크며, 그것은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감성이다.
19세기, 키르케고르와 니체, 도스토옙스키 등 많은 철학자와 시인, 예술가들이 인간의 깊이를 찾아 헤맸던 것은 좀 더 새로운 이상 세계를 꿈꾼 땜빵의 역할이었다. 이 시대도 인간 삶에 대한 깊이를 고민하는 문학, 문화예술의 땜빵 행위자들이 존중되어 야 한다.
지방정치든 중앙정치든 앞으로의 리더는 문학, 문화예술에 관한 감성이 지극한 사람을 선選해야 한다. 그런 사람일수록 땜 빵 역할을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또한 서로에게 땜빵이 되어주는 삶을 스스럼없이 행할 때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겠는 가.
글은 발효식품과 같은 것. 잠시라도 묵혀 둘 마음에 자판에 서 손을 뗀다. 청탁받은 1,500자의 원고가 숙성되기를 바라며 아침에 따 놓았던 고추를 실으러 손수레를 끌고 간다. 그새 더 농익은 고추잠자리가 하늘을 높이고 볕은 이랑까지 들었다. 고 추 부대를 옮겨 싣는다. 떨어트린 고추 하나까지 챙기고 두어 두럭 남겨진 고추에 눈이 간다. 마파람이 부는 것이 예사롭지 않다. 첫물을 다 따기도 전에 비라도 올까 걱정이 앞선다. 앞일 을 미리 고민하는 내가 주춤주춤 어쩌지 못하고 서 있다. 내일 일을 당겨 걱정으로 바라보는 나를 내 안의 또 다른 내가 알아 차린다. 과감히 돌아선다.
두고 온 원고의 문장들이 좁은 밭두럭까지 따라와 있다. 동 네 모정 오래된 팽나무 이파리에도 매달려 있는 낱말들. 햇살에 자꾸 뒤챈다. 묵어야 하는 것이 어디 글뿐일까. 멀리 소 울음소 리가 아스라이 들려온다. 되새김질 같은 시간을 묵묵히 눈에 담 아 묵히고 또 묵혔을 소의 울음. 그래서 소의 눈은 촉촉이 깊다.
고추밭에 다녀오는 동안 얼마나 숙성되었을까, 기대 반 설렘 반으로 원고를 들여다본다. 초고 때 드러나지 않은 허물들이 비어져 나온다. 수식 관계가 마음 따로 몸 따로인 연인처럼 저만 큼 떨어져 있다. 중언부언 복문은 연애의 속도감을 줄이고 소유 격 조사는 단어와 단어가 지니는 동등성의 의미를 절감시키고 있다. 고친다. 추상적 어휘의 반복은 식상하고 관념적이며 일상 에 회자하는 남의 말들이 진부하게 늘어져 있다. 또 고친다. 그 러나 이러한 수필 형식은 고집한다. 획일화되어 가는 나를 경계 하고 싶기 때문이다.
이제는 그만 새참에서 일어나 신문사에 원고를 보내야 한다. 부족한 점은 독자가 땜빵해 주시고, 신문사 관계자의 숨죽은 목 소리가 고추처럼 힘이 좀 생겼으면.

/배귀선
시인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0월 24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귀농·귀촌으로 다시 뛰는 김제, 지역 활력으로 이어지다  
전주비전대, K-컬처 기술인재 양성 AI 실무연수 성료  
도서관, 책을 넘어 사람과 지역을 잇다  
김제, ‘머무름’의 가치를 깨우다… 체류형 관광 이정표 제시  
지역소멸의 시대, 마을의 시간을 기록하다  
정읍시 ‘잘 쓰는 행정’ 선언…재정혁신으로 미래 기반 마련  
고창군, 민선 8기 3년…산업·관광·복지 10대 성과 결실  
김제시, 생활밀착형 자살예방 안전망 확대  
포토뉴스
어반자카파·심수봉부터 AI 판소리까지…전주세계소리축제 `풍성`
2026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대중음악과 전통예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감성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 
국립민속국악원, 임서연 `강산제 심청가` 완창 무대
국립민속국악원이 판소리 완창의 깊은 멋을 느낄 수 있는 '소리 판' 무대를 마련한다.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22일 오후 2시 예음헌에서 소리꾼  
지역 창작연극 `감정거래소` 8일 우진문화공간 무대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지원하는 창작 연극 '감정거래소'가 오는 8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이번 공연은 전북문화관광재단 
백정신 센터장 ˝청년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 만들겠다˝
삼천생활문화센터가 청년들의 취향 탐색과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오늘은 딴짓 좀 하겠습니다 : 기지개 기록'을 운영하며 참가자를 모 
전주문화재단 공연예술지원 선정작 `전주-무경` 무대 오른다
전주문화재단의 2026 공연예술지원 사업 선정작인 '박현희 무브먼트'의 창작 한국무용 공연 'RETURN-전주-무경(舞景)'이 오는 8일 전주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