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음을 디자인하다(1-6)] 언감생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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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겨울 산이 얼었다. 돌돌 흐르던 계곡은 촛농 빛 하얀 띠로 길게 멎었다. 산등성이에서 등을 따습게 감싸주던 말간 햇빛은 골짜기에 미처 닿지 않았다. 이른 산행을 마칠 즈음, 직박구리 한 마리를 발견했다. 새는 하늘 끝에라도 닿을 듯 우뚝한 돌감나무 주변을 허둥대고 있었다. 감나무에는 농익었다가 얼어붙었을 자잘한 돌감이 가지마다 성글게 매달렸다. 이른 시간 산속에 떠도는 새가 이상한 건 아니었지만, 나무 위에서 총총대는 몸짓과 지저귐에 시선이 끌렸다. 가족의 포식 장소를 찾아왔을까. 아니면 나처럼 산책이라도 즐기고 있었을까. 어미였을까, 아비였을까, 배필을 만나러 길을 떠난 청춘 새였을지 상상하다가 몹시 수다스러운 정황으로 보아 짝을 부르는 모습은 아니라고 판단하였다. 언젠가 들은 이야기인데 직박구리는 상대를 그리워할 때 매우 예쁜 소리를 낸다고 들었다. 저렇게 호들갑스러울 만치 부산한 상태는 간절하게 찾던 밥을 발견한 설렘과 기쁨의 표현으로 해석되었다. 일용할 양식을 찾았으니 어딘가에 있을 무리를 향해 어서 떼 지어 오라고 “찌르륵 찌르륵” 신호를 보낸 것으로 읽혔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을거리 앞에서 기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밥을 떠올리고 보니 잠재된 내 의식은 저 새가 어미 새일 거라고 낙점했다가 ‘아니지, 가족을 건사하려는 아비 새일 수도 있어.’라고 관점을 바꿨다. 그 아비 새의 외침은 이렇게 들렸다. “야호! 얘들아, 아빠가 맛있는 먹을거리를 발견했어. 어서 이쪽으로 날아오렴.” 그 소리는 심산유곡에서 산삼을 발견하고 “심봤다!”라며 외치는 심마니의 일성 같았다. “아주 잘 익은 홍시야. 한동안 우리 가족의 양식으로 훌륭하지 않니?” 잦은 날갯짓은 흥분으로 더욱 파닥거렸다. 마치 ‘이 감나무는 내가 찜했어, 내가 맡았으니 내가 주인이야, 아무도 침범할 수 없어.라고 큰소리치며 이 가지 저 가지로 옮겨 앉기를 반복하는 것 같았다. 또 한편으로는 “아, 이를 어쩌지? 심술궂게도 감이 꽁꽁 얼어버렸어. 먹기에는 언감생심이지 뭐야?” 이렇게도 들렸다. 아비 새는 농익다 못해 검은빛을 띠기 시작한 돌감을 보고 성찬을 나눌 것에 들떴다가 뒤늦게 얼음덩어리가 된 사실을 알아차렸다. 작은 발을 통통거리는 새의 몸부림에 팽팽한 겨울 하늘이 쨍하고 깨질 것 같았다. 안절부절못하는 직박구리를 뒤로하고 돌아오는데 기억 속의 어느 풍경이 떠올랐다. 우리 집에는 겨울에 감을 보관할 수 있는 저장고가 있었다. 아버지가 뚝딱거려 만든 궤였다. 지금 생각하면 집에 감나무도 없는데 보관 용기가 있었다는 게 아이러니였다. 하지만 사고팔지 않아도 마을에 감나무가 흔해서 과실을 나눠주는 집들도 있었고 물물교환 형태로 주고받기도 했다. 덕분에 집집이 겨우내 군입정 거리로 얼마간 비축할 수 있었다. 저장고는 뒤주 모양이었는데 송판을 켜서 손에 가시가 박히지 않을 정도로 다듬어 만들었다. 어른이 허리를 굽혀 팔을 내밀면 닿을 만큼 깊었는데 넓적한 떫은 감 몇 접은 너끈히 들어갈 크기였다. 직사면체의 이 궤는 윗면 한쪽은 붙박았고 한쪽은 뒤주처럼 여닫는 문을 냈는데 자물쇠를 채우지는 않았다. 감 궤를 만든 아버지는 현실감이 적어 생계를 꾸리는 것에 더뎠다. 하지만 귀 뒤에 연필을 꽂고 먹줄을 퉁기거나 대패질할 때는 퍽 자부심을 느꼈다. 이렇게 저렇게 목재를 다룰 때는 소목장 같았다. 싸리나무 속대로 채반이나 광주리를 엮을 때는 공예가 같았다. 다만 이상과 현실의 괴리감을 극복하지 못했던지 시대에 적응할 수 없어서였던지 경제적으로 가족을 온전히 책임지지는 못했다. 그런 아버지를 향해 주변 사람들은 “그 사람은 다 좋은데 한 가지 술이 문제”라고 뒷담화했다. 어린 내게는 “한 가지 안 좋은 점이 열 가지 장점보다 더 문제”라는 역설로 명치에 꽂혔다. 그래서였던지 세월이 이렇게 흐른 후에도 아버지와 함께했던 추억이나 애틋함을 드러내는 건 땡땡 언 감을 손에 쥐고 있는 것 같다. 부친이 손수 만든 궤는 부엌 뒷문을 열면 왼쪽 모퉁이 쪽에 놓였다. 먼저 궤짝 바닥에 지푸라기를 깔고 그 위에 감꼭지가 아래로 가게 한 후 감을 가지런히 늘어놓았다. 다시 지푸라기를 펼쳐서 감과 짚을 켜켜이 쌓아 보관했다. 그곳에서 겨울이 될 때까지 홍시가 만들어졌고 우리 입안에서는 군침이 고여갔다. 동지섣달 그야말로 긴긴밤에 어머니는 백열등 불빛 아래 재봉틀을 돌렸다. 8명 식구의 삶을 감당했던 힘겨운 재봉틀 소리 사이로 부엉새 울음이 들렸다. 한편으로 삶을 이겨내려는 어머니의 절규 같기도 했는데 그것보다 어린 마음에는 한밤중 부엉이 소리는 무서웠다. 듣기에 따라서는 깊고 그윽할 수도 있었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부엉이 뒤에는 호랑이가 따라다닌다는 옛이야기 때문에 더 음산하게 느껴졌다. 그런 밤, 얼근하게 취해 집에 돌아온 아버지는 꽁꽁 언 홍시 몇 알을 저장고에서 꺼내왔다. 그 감은 직박구리가 만난 돌감처럼 얼어 있었다. 마음으로는 금방 먹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아랫목에 파묻어볼까. 손으로 감싸 쥐어보기도 하면서 간절한 마음일 때 오랜만에 우리 집 가장이 호기롭게 말했다. “조금만 기다려 봐.” 양푼에 차디찬 찬물을 붓고 그 속에 감을 담갔다. 뜨거운 무엇으로 녹여야 할 것 같았는데 찬물에 감을 녹인다는 거였다. 이미 홍시 냄새가 날 만큼 술기운에 젖은 아버지의 취중 실언이었거니 했는데 얼마나 기다렸을까. 믿을 수 없는 광경이 나타났다. 말랑한 홍시를 남기고 얼음덩어리가 쏙 돌아 빠져나왔다. 돌감나무는 누가 버린 씨앗에서 발아했던지 참나무 틈새에서 살아남으려 무진무진 높게 자랐다. 드문드문 매달린 열매는 살구 크기만 했지만, 찔레나 망개나무 열매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하산길에 감이 익어가는 모습을 올려다보며 한 가지 꺾어다가 백자 항아리나 옹기 화병에 척 꽂아놓으면 그럴싸한 정물화 한 폭이 연출되겠거니 눈독을 들이기도 했었다. 하지만 날짐승의 절박한 밥이 되는 현장을 목격하고 좁은 소견을 접었다. 그리고 내 아버지 마음속에도 직박구리의 날갯짓처럼 가족을 위한 애틋함이 있었을 것으로 미루어 짐작해 본다. 돌아가신 후에도 아버지를 향해 언감생심 다가갈 수 없는 부분이 있었는데 찬물에도 돌아 빠지던 얼음처럼 이제 그 마음을 녹이고 싶다.
/김숙 전)중등학교교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1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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