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기는 비처럼 가슴을 적시고(1-8)]설렁탕 앞에서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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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쓰린 속 움켜쥐고 ‘원조해장국집’을 찾는다. 내가 자주 찾는 이곳은 나처럼 쓰린 속을 달래려고 온 사람이 있는가 하면 일터 에 가는 사람들이 이른 아침을 먹기 위해 오기도 한다. 출입문 안에는 벌써 몇몇 사람들이 밑반찬을 앞에 두고 해장국을 기다 리고 있다. 전날 술에 치인 사람의 행색은 어딘가 표가 난다. 부 스스한 얼굴에 밥은 먹지 않고 연신 국물만 입에 넣는 사람들이 다. 화장실 가는 쪽 구석에 앉아 있는 남녀는 설렁탕과 선짓국을 앞에 놓고 서로의 그릇에 담겨 있는 국물을 떠서 맛을 본다. 이른 아침에 부부가 어인 일로 해장국집을 찾았을까. 깍두기를 우 걱우걱 씹으며 곁눈질로 가늠해본다. 미루어 백년해로한 부부 는 아닌 것 같고 설렁설렁 사는 사람인 듯도 싶은데 오가는 대 화가 예사롭지 않다. 코 고는 소리에 잠을 못 잤다는 여자의 말 로 미루어 이 사람들은 분명 부부가 아닌 것 같았다. 그렇다 하 더라도 서로의 그릇에 담겨 있는 국물을 떠먹는 모습은 여느 부 부처럼 다정해 보인다. 이윽고 내 테이블에 설렁탕이 나왔다. 부연 국물을 한 수저 떠먹는다. 사골의 고소한 맛보다는 분유 냄새 같은 게 비위를 상하게 한다. 육천 원짜리 설렁탕이 얼마나 진할까마는 최근 떠 돌고 있는 소문이 사실인 듯싶다. 더군다나 ‘설렁탕’이라는 이름 에서 느껴지는 이미지처럼 진한 것을 요구하기에는 무리인 듯 싶어 밥을 말아 휘휘 젓는다. 설렁탕은 누구나 부담 없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인 만큼 시대 를 초월하여 대중적 인기를 누린 것은 분명한 것 같다. 설렁탕 의 기원으로 조선시대 임금이 선농단先農壇에서 풍년을 기원한 뒤 소고기와 뼈를 푹 고아 나눠 먹었다는 선농탕先農湯이 설렁탕 으로 발음되었다는 이야기에서부터 국물이 눈처럼 희고 진하다 하여 한자의 눈 설 자를 차용해 설농탕雪濃湯이라고도 했다는 설도 있다. 또한 육당 최남선은 고려시대 몽골에서 고기를 맹물에 넣고 끓이는 조리법이 들어와 설렁탕이 됐을 것이라고도 했다. 어떻게 유래가 되었든 간에 설렁탕은 애주가들의 해장을 돕 는 음식이며 때와 격식과 예를 따지지 않고 누구나 부담 없이 나눌 수 있는 음식임에는 이견이 없는 것 같다. 그런 만큼 제대 로 된 한 그릇의 국물을 만드는 데 많은 시간과 정성이 들어간 다. 살아가며 실오라기 하나도 허투루 얻어지는 게 없는 것이고 보면 뿌연 국물을 우려내는 정성이야 어찌 말로 표현할 수 있을 까. 그러나 오늘처럼 보기에도 민망한 설렁탕을 대할 때면 아쉬 운 마음이 든다. 시간과 정성을 우려낸 국물은 차치하고라도 설 렁탕에는 소의 편육에 섯밑과 만하, 콩팥 따위가 골고루 들어가 야 보기에도 좋거니와 제대로 된 설렁탕일 것인데 고춧잎만 한 얇은 편육 두 점 달랑 들어 있다. 가끔 이렇게 성의 없는 집에 들 어오면 음식을 앞에 두고 나가지도 못하고 여간 곤혹스러운 게 아니다. 하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설렁탕의 어감을 생각해보면 그리 탓할 만한 일도 아닌 것 같다. 설렁설렁 만들었으니 설렁탕일 것 이라는 위로를 하며 한 숟갈 욱여넣는다. 국물이 진하거나 내용물이 많으면 그만큼 가격이 올라갈 것이고 그러면 아무나 쉽게 먹을 수 있는 설렁탕이 될 수 없을 것이라는 논리가 간간한 젓 갈 밑반찬처럼 그나마 위안이 된다. 이렇든 저렇든 아쉬운 것은 설렁탕집 간판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예전에는 빨간 깃발에 설렁탕이라는 문구가 음 식점 앞에 비스듬히 기대어 오가는 사람의 입맛을 붙잡았고 네 모난 입간판에 그려진 설렁탕 그림은 식욕을 자극하기도 했었 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설렁탕 간판이 하나둘 사라지고 그 자 리를 갈비탕이라는 간판이 채워 가는 것 같다. 설렁탕이나 갈비 탕이나 주재료가 소라는 것은 같고 국물 또한 마찬가지일 것이 나 갈비탕은 가격이 좀 비싸게 연상되고 느낌상 설렁탕에 비해 고급스러운 느낌이 든다. 가격도 보통 만 원이 훌쩍 넘으니 서 민적이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구석에서 막걸리 한 병을 곁들여 먹는 부부 아닌 부부의 뚝배 기가 어느새 바뀌어 있다. 반 정도를 먹은 다음에 서로의 그릇 을 바꿔 먹는 것 같은데, 숟가락질한 뚝배기를 바꿔 먹을 정도 면 부부보다 더 친함이 있는 것 같다. 저 사람들이 부부이건 아 니건 한 그릇의 설렁탕 앞에서 설렁탕처럼 설렁설렁 사는 게 부 러운 해장이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3년 11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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