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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챙이 숟가락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1월 29일
ⓒ e-전라매일
어머니의 기일이다. 아내가 제사상을 차렸다. 제사상이라고 해야 제수진설법에 의해 차린 것이 아니다. 소반 위에 영정을 모셔놓고 양쪽으로 촛불을 켜 놓았다. 영정 앞에는 꽃바구니가 자리를 잡았다. 어머니가 좋아하시던 장미와 안개꽃을 장식한 꽃바구니다. 살아생전에 꽃을 좋아하신 어머니였다. 추석 성묘나 어머니의 묘소에 갈 일이 있으면 우리 형제들은 국화가 아닌 꽃다발을 만들어 가지고 갔다. 제사상에 놓은 가지가지 꽃들을 섞어 만든 꽃바구니를 내려다보는 어머니는 금방이라도 웃으시며 걸어 나올 것 같다. 꽃바구니 앞, 하얀 접시에 놓은 숟가락이 눈에 띄었다. 한 눈에 봐도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이었다. 순간 뜨거운 것이 울컥하더니 목구멍을 막았다.
오늘 낮에 찬장 속을 정리하다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마침 어머니의 기일이어서 제사상에 올려놨다는 아내의 말이다.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을 바라보는 우리 육남매는 아무 말이 없었다. 서로의 가슴속에서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이 어머니를 추억하고 있었다.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이 자식들의 가슴 속에서 깜밥을 긁고 있었다. 따뜻한 것은 깜밥이 아니라 닳고 닳은 달챙이 숟가락이었다. 달챙이 숟가락은 생이 무너졌어도 향기가 있고 울림이 있었다.
달챙이 숟가락은 어머니의 분신 같은 것이었다.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은 여름철 하지감자를 긁거나 김장을 할 때 배추뿌리나, 무, 생강 껍질을 벗겼다. 그런가 하면 고구마도 바닥에 놓고 득득 긁으면 탱글탱글한 속살을 보여줬다. 이처럼 달챙이 숟가락은 한 몫을 할 때가 많았다. 껍질을 벗길 때 칼 보다는 달챙이 숟가락이 효용 가치가 컸다. 칼로 껍질을 잘못 벗기면 껍질보다 속살이 두텁게 깎여져 나가기도 한다. 그러나 달챙이 숟가락은 겉껍질만 살짝 긁어내어 허실을 적게 한다. 특히 감자나 생강을 깎을 때는 달챙이 숟가락의 끝부분에 대고 살살 돌리거나 긁으면 껍질이 잘 벗겨진다. 그런가하면 씨눈이나 상한 부분을 오려내는 데도 그만이다. 울퉁불퉁하여 껍질을 깎아내기 어려운 생강도 달챙이 숟가락으로 좁은 골을 따라가면 구석구석을 긁어낼 수 있다. 늙은 호박 껍질도 달챙이 숟가락 앞에서는 고분고분하다. 밥솥 바닥에 눌어붙은 깜밥은 달챙이 숟가락이 있어야 쉽게 긁을 수 있다.
달챙이 숟가락은 끝이 닳아서 반달 같이 생긴 숟가락이다. 그것을 전라도 지방에서는‘달챙이 숟가락’라고 부른다. 그런가 하면 충청도 지방에서는 ‘모지랑 숟가락’이라고 한다. 이 말은‘모지랑’과‘숟가락’의 합성어다. ‘모지랑’은‘모지라지다’라는 뜻으로‘물건의 끝이 닳아서 없어지다’이다. 말 그대로‘모지라진 숟가락’이란 뜻이다. 보통 숟가락이 보름달이라면 달챙이 숟가락은 반달이었다가 세월에 부대끼면서 그믐달이 되고 종당에는 끝이 뭉툭한 달챙이 숟가락이 된다.
달챙이 숟가락은 무쇠 솥 바닥을 긁는 때 진가가 확연히 드러난다. 밥을 다 푸고 난 다음 깜밥을 긁어낼 때 달챙이 숟가락을 대신할 수 있는 것은 없을 것이다. 어머니가 달챙이 숟가락으로 깜밥을 긁는 소리는 주전부리가 흔치 않았던 시절 자식들에게 최고의 복음이었다. 나는 가끔 어머니가 저녁밥을 지으려고 아궁이에 불을 땔 때 옆에서 쭈그리고 앉아 아궁이를 바라보았다. 활활 타는 불빛을 바라보는 어머니의 얼굴은 새색시 얼굴처럼 환했다. 말없이 불을 때고 있는 어머니는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어머니는 왜 불 앞에서 입을 다물고 있을까? 하고 궁금해 한 적이 있었다. 코밑수염이 구둣솔처럼 자라면서 어머니는 그 때 첫사랑을 생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내가 첫사랑에 열병을 앓고 있었던 때였다. 지금도 목을 움츠리고 서로의 얼굴을 보며 웃는 젊은이들을 보면 저녁 아궁이의 불빛을 보는 것 같다. 할 수만 있다면 젊은이들의 사랑이 깨지지 않기를 바라며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으로 긁은 깜밥 한 볼탱이를 선물하고 싶다.
초등학교 시절 어느 여름날이었다. 학교가 파하고 집에 돌아왔다. 대문에 들어서기도 전에 배속에서는 개구리들이 울고 있었다. 책보를 마루에 집어던지고 부엌으로 달려갔다. 마침 어머니가 계셨다. 어머니는 달챙이 숟가락을 들고 계셨다. 나는 어머니가 방금 깜밥을 긁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어머니가 들고 있는 달챙이 숟가락 끝에 아직도 붙어 있는 밥풀을 보았기 때문이다. 내 눈치를 눈치 챈 어머니는 살강 위에 엎어 놓은 밥그릇을 들추더니 한 볼탱이가 될까 말까 한 깜밥을 내 주셨다. 아직도 온기가 남아 있었다. 보리밥을 긁은 것이었다. 보리깜밥을 한 입에 몰아넣고 우물거리자 어머니는 급히 먹다 체한다고 천천히 먹으라고 했다. 동생들이 오기 전에 먹어야 빼앗기기 않을 것이라는 생각으로 제대로 씹지도 않고 한 순간에 먹은 것이다. 이 때 대문에서 동생들이 우르르 들어왔다. 나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입을 쓰윽 닦고 부엌을 나왔다. 바로 아래 동생이“형? 깜밥 먹었지?”나는 시치미를 뚝 떼고 동생에게“깜밥 좋아하시네? 놉밥 푸기도 모자란단다. 알았냐 잉?”큰소리를 치고는 돌아서서 입을 막고 킥킥거렸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는 달챙이 숟가락으로 과일을 긁어 먹었다. 어머니의 젊은 시절 시어머니께서 달챙이 숟가락을 사용했던 것처럼 과일을 긁어 과즙이 흥건하게 담긴 숟가락을 입에 넣기도 했다. 잇몸 부실한 어머니에게 달챙이 숟가락은 효자 노릇을 했다. 지금 제사상에 놓은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은 자식들에게“늙어 용도 폐기가 될지라도 억울해 하지 말고 유용하게 쓰이는 사람이 되라”말하고 있었다.
인간들은 누구나 태어날 때 숟가락을 하나씩 들고 이 세상에 온다고 한다. 그것은 먹고 살아야 한다는 뜻이고 먹고 살기 위해서는 숟가락이 달챙이 숟가락이 될 때 까지 땀을 흘려야 한다는 것이다. 영정속의 어머니가 한 번 만져보기라도 하자는 듯 달챙이 숟가락으로 손을 뻗는다. 아직도 쓸 만하니 버리지 말라고 당부 하는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나는 어머니의 달챙이 숟가락을 오랫동안 바라보았다.

/정성수
논설위원/명예문학박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1월 29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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