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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형석 교수님을 돌아보며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11일
ⓒ e-전라매일
김형석 교수님은 나에게 많은 영향을 주신 분이다. 내가 고등학교 시 절 사랑에 관하여, 이별에 관하여, 죽음에 관하여 고민을 하고 방황을 할 때 나를 바르게 잡아주신 분이시다. 당시 발간된 두 권의 책 1959년 《고독이라는 병》과 1961년에 나온 《영원과 사랑의 대화》를 통하여 나에 게 아름다운 꿈을 갖게 하였고 철학과 사색을 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안내를 하여 주셨다.
첫 번째 《고독이라는 병》은 사소한 일상 속에서 작은 진리의 아름 다움을 발견해 내며 현대인들의 보편적 삶의 본질에 대해 성찰하는 자세를 보여준다. 선생은 “한때 나는 자유로운 지성인으로 살고 싶다 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는 동안에 자아를 상실한 군중 속에 외로이 서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기 시작했다. 군중 속의 고독 같 은 느낌이었다. 나 자신의 고독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그 한 방법이 글을 쓰는 일이었 다. 어떤 것은 나 자신과의 대화이기도 했다. 우리 모두가 안고 있는 삶의 이야기가 그 출발과 내용이 되었다”라고 말씀하신다.
두 번째 《영원과 사랑의 대화》는 인생의 의미를 그린 영원에 대한 그리움이다. 젊은이들을 향해 애정을 담아 건네는 인생 이야기인데 인생 의미에 대한 성찰과 죽음과 영원에 대한 무거운 사유까지, 서정 적이고 단아한 필치로 담담히 그리고 있다. 선생은 <부자가 된 이야 기>에서 “이왕 가난하게 살 바에는 철저히 가난해지자. 아무것도 소 유하지 않으면 그뿐 아닌가. 이러한 우연한 결심이 나로 하여금 지금 의 부자가 되게 한 것이다. 한 평의 땅이 없으면 어떠냐. 푸른 하늘도 달도 별도 내 것이면 그뿐이다. 한 칸 방이 없다고. 아무런 애착도 없 이 가고 싶은 곳 어디에나 가면 그만이 아닌가. 이렇게 해서 나는 남 이 소유하는 것은 다 버려도 남이 자기의 것으로 할 수 없는 것은 모 두 내 것으로 하자고 마음에 타일렀다. 소유를 거부한 뒤의 생활이란 여간 편안하고 유쾌한 것이 아니었다.”라 기술하고 있다.
나는 감수성이 민감했던 고등학교 시절에 《고독이라는 병》과 《영원 과 사랑의 대화》를 읽고 선생을 좋아하게 되었다. 한 편 한 편 모두가 감동적이었다. 죽었던 영혼이 깨어나는 듯이 꿈틀거렸다. 많은 질문 에 인생 회의론에 빠지기도 했었다. 우리에게 살아갈 이유가 무엇인 가?, 무엇 때문에 사는가? 현대인들이 왜 불행한가? 행복이란 무엇인 가? 왜 고생을 해야 하는가? 무엇이 진정 의미 있는 삶인가? 꼬리 무는 질문들에 가슴은 차가웠지만 머리통은 뜨거워졌다.
김형석 교수는 1920년 평안남도 대동에서 태어나 일본 조치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셨다. 연세대학교에서 30여 년간 후학을 길렀고 미 국 시카고대학교와 하버드대학교 연구교수를 역임했다. 다수의 베스 트셀러를 집필하였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철학과 명예교수이다. 100 세를 넘긴 고령임에도 불구하시고 현재 방송과 강연, 집필 등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
나와 교수님과의 인연은 197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학에 다니 면서 1년에 한두 차례 선생께서 우리 지역에 강연 차 내려오시면 빠 지지 않고 귀한 강연에 참석을 하였다. 그러던 차에 내가 1997년 가 을에 첫 시집으로 신앙시집을 내게 되었다. 교수님도 기독교인으로 책 한 권을 드렸는데 그게 연결의 끈이 되었다. 선생께서는 일본 우치 무라 간조 선생의 영향을 받아 무교회주의자시다. 교회예배는 아니 지만 뜻 있는 사람들을 모아 놓고 대중설교 말씀을 하신 듯하다. 말 씀을 녹음하여 한때는 테이프로, 한동안은 CD로 구워 한 달 치 분 4개를 묶어 매달 보내주시는 것이었다. 30년 동안을 보내 주셨다. 정 성에 힘입어 꼭 들었는데 말씀이 바르셨다. 어느 한 쪽으로 치우치지 않아 언제 어느 때 들어도 정도에서 벗어나지 않고 삿됨이 없었다. 우 리가 살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여 주셨다. 내가 근무하고 있는 학교 에 오시면 꼭 나를 불러주셨다. 둘만이 앉아 식사를 나눈 일도 있다. 보내주신 설교 말씀 잘 듣고 있다고 말씀을 드리니 웃으시면서 선하고 성실한 선생님 같다고 하신 말씀이 어렴풋이 떠오르고 다정다감 하신 분으로 기억이 된다.
공산사회를 겪으며, 해방을 맞이한 조국은 환희와 더불어 혼란 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38선이 남북을 갈라놓았고, 평양에 주둔한 소 련군은 일본인들을 차별 없이 학대하고 부녀자들을 납치해 갔다. 붉 은 군대와 더불어 공산당이 38선 이북을 완전히 무력과 이념으로 다 스리기 시작했다. 불행하게도 나는 본명이 김성주인 김일성과 고향이 같았다. 그리고 그는 같은 초등학교의 선배이기도 했다. 종전 뒤에 고 향에 돌아온 김일성과는 하루 오전을 함께 보내기도 했다. 그때 나 는 그가 공산주의자라는 사실을 눈치 챌 수 있었고, 김일성이 소련의 사주를 받아 집권하게 되는 과정을 가까이서 볼 수 있었다. 그의 친 인척들이 모두 아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역사의 아이러니도 몸소 체험할 수 있었다. 그 뒤 나는 신앙과 자유를 위해 1947년 8월 18일 새벽 탈북하였다.
고독에 관하여, 사귐과 대화가 끊어졌을 때 느끼는 마음 상태를 우리는 고독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해 고독은 홀로 있는 마음 상태 다. 이때 우리의 마음 또는 정신이 홀로 있는 상태가 고독이라는 것 이다. 육체가 혼자 남아 있다고 해서 고독인 것은 아니다. 자신과 대 화가 가능한 때는 고독을 느끼지 않는 법이다. 사색을 하든가, 음악을 듣든가, 그림을 보는 때, 이런 때는 내가 혼자 있는 것 같아도 어 떤 사상, 예술과 더불어 대화를 나누는 때이므로 고독을 느끼지 않 는다. 물론 대화가 끊어지면 고독을 느끼게 된다. 정신생활이 풍부한 사람은 언제든지 고독을 느끼지 않는다. 항상 자신과 대화의 시간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처음과 마지막 시인 윤동주, 시인 윤동주의 고향은 간도 용정 이다. 당시 그곳 동포들은 애국심으로 뭉쳐 있었다. 윤 형이 평양의 숭실중학을 찾아온 것은 기독교 신앙의 민족애를 뜻했기 때문이었 다. 나는 윤 형과 한 학년 같은 반에서 공부를 하는 동안에 그의 곧 고 따뜻한 마음씨를 가까이서 느끼곤 했다. 윤 형은 그때부터 시를 쓰고 있었다. 황순원 선배와 더불어 학교 잡지인 《숭실활천》 편집에 정성을 쏟던 흔적은 지금도 엿볼 수 있다. 그들의 작품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조선총독부는 우리 학교의 문을 닫고야 말았다. 신사참배를 거부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학교를 자퇴했고 윤 형은 신 사참배가 없는 고향으로 돌아갔다.
그 뒤 윤 형은 연희전문 문과에 입학했고 계속 시를 연마해갔다. 지 금 연세대학 교정에는 그의 시비 <서시>가 세워져 있다. 친필을 옮겨 실은 것이다. 그 뒤 동주 형은 일본의 도쿄와 교토에서 수학하다가 일경에 붙들려 투옥, 해방을 앞두고 29세의 나이로 삶을 마감한다.

/김영진
시인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입력 : 2023년 12월 1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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