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유산(2-2)] 위대한 유산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28일
눈을 뜬다. 머리가 아프고 목이 탄다. 째깍거리는 초침 소리 를 따라 고개를 든다. 아직 날이 설은 탓인지 벽시계의 시간이 보이지 않는다. 일어서려는데 다리가 풀린다. 엉금엉금 기어 벽 의 스위치를 누른다. 딸칵 소리와 함께 눈이 부시다. 어둠과 빛, 그 찰나에 낀 눈을 애써 비벼 뜬다. 방바닥에 빈 맥 주병 몇 개 넘어져 있다. 지난가을에 말려 두었던 망둥어를 안주 삼았는지 먹다 남은 꼬리와 바스러진 몸뚱이가 방바닥에 널브 러져 있고, 양말 한 짝의 목이 꺾인 채 접혀 있다. 쭈그려 앉아 장판에 흥건한 물을 바라보며 어제의 일들을 되짚는다. 머릴 흔들며 무슨 일이 있었는지 떠올리려 노력해도 도 무지 생각이 나지 않는다. 평소처럼 전화기의 통화 내역을 먼저 살핀다. 늦은 시간, 원광대 k 교수와 전주의 y 시인의 전화번호 가 줄지어 뜬다. 미루어 술김에 전화를 한 것 같은데 기억이 없 다. 어느 술자리에 들었는지 증거를 찾으려 주머니 속 영수증을 찾아보았으나 역시 허탕이다. 물을 마시려 벽을 의지해 일어선다. 주방에 든다. 수도꼭지에 입을 댄다. 차가움이 온 얼굴에 눌어붙는다. 아예 머리를 숙여 수돗물을 맞이한다. 옆에 있는 행주를 들어 대충 머리카락의 물 기를 닦는다. 지금까지의 전개만을 놓고 보면 내가 말술을 먹고 빈둥거리 는 사람이거나 알코올 중독자쯤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가사는 기본이고 얼마 되지 않는 밭뙈기 건사하랴, 작품 쓰랴, 강의하랴, 술 마실 시간이 많지 않을뿐더러 주량은 소주 한 병 정도이고 두 병이면 취하는 사람이다. 삼사십 대 때 만 해도 지금 같지는 않았다. 그런데 나이가 들어감에 따라 조 금 과하다 싶으면 기억이 끊기곤 한다. 어쨌거나 육 남매 중 유일하게 나만 술을 마신다. 가끔 술을 즐기는 데는 나름의 연원이 있다. 말하자면 내 음주 문화는 아버지와 밀접한 관계에 있다. 더 정확히 말해 아버지의 영향이 크 다. 이를테면 내 음주 경력은 어릴 적 막걸리 심부름에서부터 시 작이 되었으니, 얼추 사십 년은 넘고 근 오십 년에 가깝다. 돌아 가신 아버지가 이 글을 접하신다면 싸가지 없는 녀석이라고 할 수도 있겠다. 아버지는 장남인 나에게 늘 막걸리 심부름을 시켰다. 동네 어 귀 하꼬방에서는 막걸리와 함께 봉초 담배를 팔았다. 먼지가 푸 석한 나무 선반에는 셀레민트 껌이 있었고, 투명한 유리병에는 알사탕이 들어 있었다. 가끔 어머니가 소다를 사 오라 심부름을 시키는 날, 하꼬방 할머니는 방 안에서 ‘씨롱’이라고 쓰인 위장 약 깡통을 신줏단지처럼 조심스럽게 꺼냈다. 그 속에는 위장약 대신 소다가 들어 있었다. 그때 그 시절, 이스트 대용으로도 쓰 였던 소다는 시큼해진 막걸리에 넣으면 거품과 함께 신맛이 감 해졌다. 생의 체증 때문에 소화가 안 될 때 어머니는 으레 그 소 다를 입에 털어 넣곤 하셨다. 막걸리는 땅속 깊이 묻은 독에서 퍼 올렸다. 손잡이가 긴 네 모난 나무 됫박의 가장자리를 타고 쏟아지는 막걸리는 함석으 로 만들어진 나팔 모양의 깔때기에서 회오리를 일으키며 2리터 유리병으로 들어갔다. 배고픈 시절, 꼬르륵 소리를 내며 들어가는 막걸리를 보며 나는 고인 침을 삼키곤 했다. 무엇보다 막걸 리의 시큼한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는데, 그때 나는 병 모가지가 넘치도록 부어주던 그 할머니를 잊을 수 없다. 차츰 내 심부름은 담대해져 아버지의 막걸리를 훔쳐 먹기 시 작했다. 그 한 모금의 막걸리는 배고픔과 군입정의 욕구를 잊게 했다. 해진 옷을 입고 구멍 난 검정 고무신을 신었어도 창피함 을 잊게 하는 묘약이었다. 말하자면 술기운에서 오는 호기 같은 것인데, 지금의 내 취중 호기와 흥은 아마 그때 시작된 것 같다. 어쨌거나 내 유년은 아버지의 막걸리를 버릇없이 홀짝거렸고 그만큼의 공간에 물을 채워 놓으면서 여물어 갔다. 하지만 그 짓을 아무 때나 하지는 않았다. 아버지가 맨정신에 심부름을 시 키거나 손님이 왔을 때는 양심상 맥주 컵 반 잔 정도의 양만 마 셨다. 그러나 아버지가 취한 것 같으면 대범하게 잔 반 정도는 해치웠다. 처음에는 머리가 빙 돌기도 했으나 육 학년이 되어 갈 즈음에는 취기에 제법 내성이 생겨 사뭇 기분이 좋아지기도 했 다. 수돗물이 떨어지는 머리카락을 수건으로 닦으며 방에 든다. 맥주병을 치우고 장판에 흥건한 물기를 걸레에 적셔 짜낸다. 익 숙한 냄새다. 맥주 같기도 하고 오줌 같기도 한 냄새를 좇아 장롱 속 이불을 살핀다. 축축하다. 아무래도 장롱문을 화장실 문 으로 잘못 알고 실례를 한 것 같다. 어쩌랴, 날 떠들면 한 이틀 말리거나 볕 좋은 날 빨면 될 일이거늘. 후회해서 뭐하겠는가. 이제 할 일은 쓰린 속을 콩나물해장국으로 달래고 밭에 나갈 준비를 해야 한다. 어머니는 타작한 콩으로 가을부터 이듬해 봄까지 콩나물을 길렀다. 그 때문에 윗목에서는 겨울내 콩 비린내가 났다. 콩나 물은 반찬이 되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해장국으로 더 많이 쓰였 다. 아버지의 해장국에는 고소한 참기름이 동동 떠 있었다. 그러 니까 지금처럼 찬 바람이 불기 시작하거나 술에 되게 맞은 다음 날 아침 콩나물국이 생각나는 것은 주당 경력과 함께 아버지로 부터 물려받은 또 하나의 유산인 셈이다. 콩나물국밥에 잘게 저민 청양고추를 듬뿍 넣은 다음 휘휘 저 어 한 숟갈 뜨겁게 삼키면 눈물이 글썽해지면서 정신이 번쩍 든 다. 매운맛에 두통도 쓰린 속도 다소곳해지는 느낌은 경험해 본 사람만이 안다. 더욱이 아삭아삭 씹히는 콩나물에는 아스파라 긴산이라는 성분이 들어 있어 숙취에 좋다고 하니, 당시 어머니 의 콩나물국은 아버지의 해장국으로 손색이 없었던 것 같다. 어머니의 콩나물국이 그리운 아침. 그때 기억을 되살려 콩나물국을 끓이려 냉장고 문을 연다. 얼마나 오래되었는지 봉지 속 콩나물이 검게 변해 있다. 단념하고 장화를 신는다. 밭에 가는 길 콩나물국밥집에 들러 김이 모락모락 나는 콩나물국밥에 아 버지가 그랬던 것처럼 참기름 한 방울 떨어트려 쓰린 속을 달래 야겠다.
/배귀선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2월 2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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