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갑이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24일
저 지난해 4월 중순쯤 강갑이가 우리병원에 들어왔다. 해 질 무렵 시내 정신요양원 시설에서 들어온다며 두 분 선생님이 모셔다 놓고 갔다. 잘 부탁한다며 몇 가지 이야기를 해 주었다. 나이가 57세로 아 직은 미혼이고 사고무친으로 돌보아 줄 가족이나 친척이 없다고 했 다. 다만 정부에서 관리해주며 생활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다는 것이 었다. 어쨌든 관심을 가지고 내가 돌보아야할 환자로 마음을 먹었었 다. 훤칠한 키와 뻐드렁니에 앞니가 빠져 싱겁게 보이는 인상으로 싱 글싱글 웃어줄 때에는 천진난만한 어린아이와 같았다. 처음 올 때만 하여도 손수 화장실을 다니며 스스로 용변처리도 하 고 세면 등 일상생활을 하는데 별다른 어려움이 없었다. 다만 말이 조금 어눌하고 생각하는 것이 부족할 뿐 병원에서 지내는데 큰 어려 움이 없이 병원가족들과 스스럼없이 지냈다. 체격이 있고 식성이 좋아 잘 먹었는데 언제나 배가 고프다는 것이 었다. 병원에서 주는 밥이 부족하다하여 국그릇에 밥을 가득 담아주 고 나라에서 지원해주는 돈으로 빵과 두유, 요거트 등 간식거리도 떨 어지지 않게 사주었다. 말기 암으로 진단을 받아 호스피스 병원에 오게 되었는데 나름 의 사 선생님이나 보조활동인력 선생님들에게 적절히 처신할 줄도 알아 직원들로부터 귀여움을 받았다. 오랫동안 시설에서 생활을 하여 눈치 가 빠르고 처신을 잘 하였다. 제가 아쉽고 필요할 때는 보조활동인력 선생님들에게 엄마, 엄마, 또는 누님, 누나라고 어리광을 부리지만 비 유가 틀어지면 함부로 욕을 하기도 하였다. 나에게도 아저씨라 불렀 지만 기분이 좋을 때는 형님, 형님하며 아양을 떨었다. 호스피스병원에 들어오는 대부분의 환자들은 두세 달이 고비가 되 었지만 강갑이는 1년 하고 4개월을 지내고 갔으니 대단한 체력의 소 유자인 셈이었다. 암이 온 몸에 전이가 되어 거동을 못하고 침상에서 지낼 때에도 비교적 잘 견디었다. 편안하게 누워 있으라 하여도 고집 을 부려 앉아있기를 좋아하더니 엉덩이 한 가운데에 욕창이 크게 생 겨 고생을 많이 하였다. 강갑이가 병상생활을 하면서 찾아온 방문객이라곤 전에 있던 시설 에서 젊은 남자 직원 한 분이 잘 있는지 궁금하여 왔다고 다녀간 일이 있다. 시설에서 있던 형제들의 안부며 근황을 묻는 등 다정하게 대화 가 이루어지는 것을 보았다. 언젠가 나에게 할 말이 있다며 자신에게 딸이 둘이 있는데 서울에서 직장에 다닌다고 한 일이 있고 형제간이 있다는 이야기를 얼풋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어머니를 만났다고도 하 였다. 어쩌면 그리하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모아 꿈같은 이야기를 나 에게 해준 듯하다. 몹쓸 암으로 고통이 심할 때는 소리도 많이 질러댔 다.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부르짖는 소리는 마치 짐승이 울부짖는 소리와도 같았다. 같은 병실에 있는 보호자로부터 시끄러워 함께할 수 없다고 하여 쫓겨나다시피 다른 병실로 옮겨가기도 하였다. 암은 잔인하다. 연세가 지긋하신 분들에게는 비교적 진행이 늦어 관대하지만 3~40십대 젊은이에게는 진행이 매우 빠르다. 장성한 손 주들이 병문안을 오는 어르신들을 볼 때에는 마음이 덜 아프지만 유 치원생이나 초등학생을 둔 엄마, 아빠가 병상에 누워 있을 때에는 가 슴이 아려 차마 바라볼 수가 없다. 이를 어쩌나, 어찌하나 하다보면 금세 유명을 달리한다. 사람이 태어나 한 생을 살다 가는 것은 매 한가지라고 하지만 강갑 이는 불행한 삶을 살았다. 어느 때까지 부모 형제와 함께 살다 시설 에 들어와 살게 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힘든 세상길에서 가족의 도 움 없이 혼자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외롭고 팍팍하였으랴. 마지막 때에 병상에서 찾아주는 사람이 없이 눈을 감아야하는 순간이 얼마 나 비참하고 참담하였으랴. 정신박약으로 시설에서 살다 남들이 다 하는 결혼식도 올리지 못하고, 처자식도 없이, 부모도 모른 채, 따뜻 한 가정을 꾸려보지 못하고 쓸쓸히 갔다. 이리 갈 줄 알았더라면 좀 더 잘 해주었을 것을. 후회가 앞선다. 밥 먹기 싫다고 입에 든 밥알을 뿜어버릴 때, 와상환자로 기저귀에 대소 변을 보아야하는데 기어이 화장실 간다며 침대에서 내려오다 넘어질 때, 아무데에나 가래침을 뱉어댈 때, 제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되지 못할 욕을 해댈 때는 꿀밤이라도 한 방 먹이고 싶었던 마음이 일어나 곤 했었는데, 미안하다. 네가 형님이라고 의지하고 불러준 이 형님이 너를 더 안아주고 더 사랑했어야 하는 데 지금 돌아보니 그리하지를 못한 것 같아 미안하다. 용서해주기 바란다. 마지막 가는 길에는 곁에서 외롭지 않게 강갑이 네 손을 꼭 붙잡 아주고 싶었다. 그런데 하필 내가 비번일 때 네가 쓸쓸히 갔다고 한 다. 가족이 있었더라면 장례식이라도 조촐하게 치러주었을 터인데 그 마저도 못했다고 한다. 살붙이라고는 멀리 울산에 사는 조카딸이 있 다고 하여 연락을 해 주었는데 소식이 없었다고 한다. 그리 되면 행 정관서에서 무연고자로 시신을 처리할 수밖에 없다고 하는데 마음 이 아프다. 지금도 강갑이가 허연 뻐드렁니를 드러내고 싱겁게 웃으며 ‘형님! 그간 잘 돌봐주어 고맙습니다. 안녕히 계세요.’ 라며 마지막 수인사 를 건네는 듯하다.
호스피스병원에 강갑이가 산다 쉰하고 일곱 해 혼자 몸으로 시설을 떠돌다 마지막 안주할 곳으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 헐렁한 키에 뻐드렁니 드러내고 하얗게 벙글벙글 웃어대는 강갑이 보기만 해도 마음이 놓이고 시름이 풀린다 좋거나 아쉬울 때면 누님, 누님! 우리 누님하며 환대하지만 배고프거나 아프면 참지 못하고 징징댄다 혼자 켜놓은 티비가 제 아무리 떠들어대도 비 오고 눈 내리는 하늘나라 몰라도 하얀 도화지에 숯 검댕이 연필 칠하듯 얼룩덜룩 변하고 쉬이 검어지는 강개비 기우뚱기우뚱 병실에서 화장실 넘나들 듯이 요샌 다리가 꼬이고 욕창으로 누워버렸다 잠들면 형제 만나는지 부모가 보이는지 이따금씩 중얼중얼 소설을 쓴다 꽃철인 봄철에 들어와 가을 겨울 보내고 하이얀 배꽃웃음 날리며 먼 길을 간다 ‘우리 색시 정말 곱네’하며 꽃가마 타고 장가들 날 있을는지 희죽희죽 환하게 웃는 강갑이 손잡고 가는 길 안내해 주고 싶다
/김영진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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