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노부부의 이야기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7월 01일
2014년에 세인들의 가슴을 울렸던 다큐영화 ‘님아 그 강을 건너지 마오’가 생각이 난다. 강원도 횡성의 산골마을에 사시는 노부부의 애 틋한 사랑 이야기이다. 76년째 연인으로 고운 빛깔의 커플 한복을 입 으시고 두 손을 꼭 잡고 다니신 노부부. 봄에는 꽃을 꺾어 서로의 머 리에 꽂아주고, 여름에는 개울가에서 물장구를 치고, 가을에는 낙엽 을 던지며 장난을 치고, 겨울에는 눈싸움을 하며 소년 소녀와 같이 애틋한 정을 나누며 살아가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순애보와 같은 감동 영화였다. 호스피스병원에 팔순의 노부부가 한 병실에 입원을 하셨다. 할아 버지가 할머니를 얼마나 아끼시는지 눈시울이 따가울 정도로 연민의 정이 앞선다. 한 병실에 남녀가 함께할 수 없게 되어 있는데 할머니가 대장암 말기로 입원하게 되었고 보호자의 간곡한 요청으로 요양병원에 계시던 할아버지께서 가까이 아내 곁으로 특별히 배려하여 오시 게 된 것이다. 2인실 병실로 침대가 본래 벽 쪽으로 각각 떨어져 있어 야 하는데 할아버지께서 자꾸 할머니 침대로 다가오셔 침대 밑으로 실족하거나 떨어지는 것을 방지하기 위하여 두 분의 침대를 아예 붙 여 놓았다. 늘 할머니께서는 바로 누워 계시거나 주무시는데 할아버 지께서는 할머니 쪽을 향하여 옆으로 누워 그윽한 눈으로 할머니를 바라보시면서 손을 꼭 붙잡고 계신다. 언제나 그 모양 그 모습이다. 할아버지께서는 말씀을 못하시고 듣지를 못하신다. 다섯 살 때쯤 인가 고열로 경기가 나 읍내 한의원에 가서 침을 맞았는데 잘못되어 일찍이 벙어리와 귀머거리 신세가 되셨다 한다. 깊은 산골에서 태어 나 학교는 문턱도 밟아보지 못하시고 어려서부터 부모님을 도와 농 사일을 돌보시면서 집에서 어린 시절과 젊은 날을 보내셨다한다. 제 대로 듣지 못하고 의사 표현을 못하는 것이 얼마나 답답하고 갑갑하 였으랴! 대신 눈썰미가 좋아 그림을 잘 그리시고 유달리 손재주가 좋 으셨다 한다. 스무 살에 이웃마을에 사시는 어머니를 만나 슬하에 3 남3녀를 두셨다. 몸이 불편하신 아버지는 성실하고 근면하여 가난 한 살림에 여섯 남매를 키우고 가르치기 위하여 담배농사에 누에를 치고 나무하는 일까지 제대로 쉴 틈이 없이 바삐 살아오셨다. 남다 른 부지런함으로 산골에서 논배미와 밭떼기를 늘리어 가면서 재미 나게 사셨다. 일에 묻혀 사신 아버지께서 환갑이 지나시면서 무리가 되었던 관절에 이상이 생겨 무릎수술을 받으셨다. 십년 동안 열 번이나 입원과 수술을 반복하신 남편을 지극정성으로 병간호하시던 어머니께서 병 이 나 말기 암 판정을 받으신 것이다. 아버지께서는 자녀들에게는 비 교적 온후하신 성품이셨지만 듣지 못하고 표현을 하지 못하니 성격이 급하셨다 한다. 여섯이나 되는 아들과 딸들은 사랑으로 잘 보살펴 주 셨지만 만만한 어머니에게는 함부로 하시고 화를 잘 내셨다고 한다. 그래도 평소 말이 없으신 어머니는 아버지가 가엾으시다며 아버지의 역정을 잘 받아 주셨다한다. 60년 남짓 부부로 살아오신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간 건강한 몸으 로 자신을 돌보아오던 아내가 더 큰 병을 얻어 병상에 눕게 되니 할 아버지는 마음이 바빠지신다. 아내가 어떻게 될세라. 깊이 잠에 든 아 내를 흔들어 깨워보기도 하고 아내의 거치러진 손을 잡아 당신 볼 에 대고 눈물을 흘리신다. 무엇이 두 사람을 이어주고 아프게 하는 것인가? 저러다가 한 분이 먼저 가시면 남은 분은 어찌 살아갈 것인 가? 생각하면,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아득해지고 아려온다. 힘든 병상 생활이지만 두 어른께서 자리를 오래오래 지켜주셨으면 하는 마음 이 간절하다. 오늘도 가뜩이나 옆으로 구부린 채 할아버지는 아내를 그윽하신 눈으로 바라보신다. 여보! 미안합니다. 지난날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아내를 함부로 하고 화를 낸 것 용서해주시오. 사랑한다 말 한 마디 건네지 못한 것도 용서해주시고요. 앞으로 내가 잘 하리이다. 알았지요? 라고 말씀하시는 듯하다. 지극정성의 세 딸이 돌아가면서 찾아와 병원 밥으로 채울 수 없는 부모님의 입맛을 과일이며 시골에서 지은 옥수수와 감자로 봉양을 한다. 아들들도 잘 자라 세상에서 건실하게 제 몫을 톡톡히 해 내고 있다 한다. 힘든 투병생활이지만 어르신들이 오래오래 사셨으면 하 는 마음이 간절하다. 부부란 무엇인가? 한 지붕 밑에서 한 솥밥을 먹고 살아가기에 고 운 정 미운 정이 든다고 한다. 가까이서 살아가기에 쉽게 대하고 함 부로 말할 때가 있다. 상처를 주고받고 아파할 때가 있다. 가까이 하 기에 서로를 존중하고 사랑하며 소중히 아껴야 한다. 애정표현을 제 대로 하지 못하고 살아온 노부부가 이제 생을 마감하여야 하는 호 스피스 병상 침실에서 인간애의 사랑을 나누고 있다. 그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하신 할아버지, 소중하고 아까운 시간에 말 못하는 장애자의 눈빛으로 말씀하시는 남편의 아내에 대한 사랑. 그야말로 거룩하고 숭고한 사랑이다. 할머니 역시 든든한 할아버지를 곁에 두 고 흐뭇해하신다.
/김영진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7월 0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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