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편) 전주세계소리축제의 서글픈 폐막공연에서 본 올바른 방향성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12일
제23회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이왕준, 집행위원장: 김희선) 마지막 하일라이트 폐막공연인 <조상현&신영희의 빅쇼>로 마무리되었다. 1995년 8월, KBS 음악 프로그램 ‘KBS빅쇼’에서 선보인 ‘조상현·신영희 소리로 한 세상’이라는 포맷의 무대였다. 당시 두 사람의 인기와 위상을 보여주었으나 그로부터 30여 년이 흐른 지금, 두 명창을 다시 한번 한 무대에 불러내었는데 조직위원회의 홍보대로 켜켜히 쌓아온 소리꾼으로서의 삶을 오롯이 담아낸 이 감개무량한 무대이며 오직 소리축제에서 만 볼 수 있는 무대가 되었나? 그러나 오늘 소리축제가 당면한 가장 서글픈 현실을 그대로 드러낸 무대가 아니었나 싶다. 분명 그들은 지금까지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로서 특권과 책무를 지닌 그리고 가장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소리꾼임에는 틀림없다. 주인공인 1939년 전남 보성 출생으로 올해 만 85세인 조상현, 1942년 고향은 전남 진도 출생인 만 82세인 신영희 노 명창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조상현은 담당 기관인 문화재청(청장 유홍준)으로부터 2007년 8월 관보에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판소리 보유자 인정해제 된 소리꾼이다. 사유는 ‘98 국악경연대회 심사 관련 금전을 수뢰하여 2004. 6. 4자로 광주지법으로부터 확정판결을 받아 해제되었다. 그런 80대 노객 두 명창의 무대가 오늘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줄 수 있는가? 예전처럼 그 창창한 목소리를 낼 수도 없는 상황에서 리허설에서 신영희는 서너 차례 목이 나오지 않는다고 호소하기도 하고 거동이 불편한 조상현 선생을 진행자들이 부축하여 무대에 서는 안타까운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다. 또 중요한 오류가 공연 도중 연출되었다. 조상현의 대표곡으로 소개된 단가 사철가가 작사, 작창이 조상현으로 표기되는 오류다. “이산 저산 꽃이 피면 산림풍경 너른 곳 만자천흥 그림병풍 앵가접무 좋은 풍류 세월 간줄을 모르게 되니 분명코 봄일러라”로 시작되는 단가 〈사철가〉는 분명하게 전남 고흥군 금산면에서 태어나 20세기 가장 큰 역할을 한바 있는 동초(東超) 김연수(金演洙, 1907-1974) 단장의 작품이다. ‘시대는 현재와 함께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소리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한번 진정한 삶의 노래로 함께 불려지기를 바라는 오늘날의 소망이다. 그 요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우리는 소리를 다시 이야기해야 하며, 시대의 판을 재정립해야 한다…’(‘또랑광대 선언문’ 중에서) 이 주장은 지난 2001년 전주산조예술제에서 시작된 ‘또랑깡대 콘테스트’ 통해 부활, 2004년 또랑광대전국협의회를 결성하고 판소리의 건강성과 현재성, 민중성과 대중성을 회복하기 위한 외치는 소리가 왜 다시 생각나게 할까?. 이때 발표된 실험적 판소리로 판소리 대중화의 대안으로 평가를 받았던 박태오씨의 창작판소리 ‘스타대전 중 저그 초반 러쉬’ 대목과 김치냉장고를 갖고픈 주부의 애환을 그린 김명자씨의 ‘수퍼댁 씨름대회 출전기’ 등을 다시 듣고 싶게 하는 축제였다. 분명 전주의 대표적 소리축제에게 요구되는 진정한 목소리다. 본래 무형문화재 보호법은 1962년에 처음 제정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어 오다 현재는 2024년 5월 7일부터 국가유산기본법을 개정되어 <문화유산의 보존 및 활용에 관한 법률 (약칭: 문화유산법)로 이어지고 있다. 이 문화유산법은 바로 보존과 전승을 목적으로 역사적·예술적·학술적 가치가 큰 무형문화유산 중 소멸되거나 변질될 위험성이 있는 것을 선별하여 원형적 형태가 지속적으로 유지·전승될 수 있도록 하기위해 시행되었다. 그리고 전승지원금지원을 위해서 보유자, 전수교육조교, 보유단체의 전수교육을 위한 기본적 경비를 지원하고 전수장학생에게 장학금을 지원하고 있다. 이런 문화재 보존과 전승은 원형적 형태가 지속적으로 유지·전승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 원칙과 목적이 되어 오늘까지 지속되는 과정에서 국가 지정 문화재의 보유자나 전수자, 이수자 사이에는 엄청난 독점적 문화권력, 특권적 지위라는 악습이 슬금 슬금 자리잡게 되었다. 현재와 함께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소리를 요구하고 있으며, 그것은 다시 한번 진정한 삶의 노래로 함께 불려지기를 바라는 오늘날의 소망과는 거리가 멀다. 원형보존과 전승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은 무형문화재법이 제정된 1963년부터 오늘까지 본래 음악이나 예술 창작에 필수적인 자유로운 상상과 창의력에 의해, 어떤 형식이나 규정이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작품 활동이 이루워져야 함에도 불행하게도 마치 전수자들의 손과 발이 묶는 족쇄가 되고 말았다. 그래서 지난 62년 법이 제정된 이후 원형보전을 위한 공연이라는 원칙으로 말미암아 그저 그런 똑같은 방식으로 소리나 춤이 그대로 반복 공연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전주소리축제같은 축제는 당연하게 62년전의 제정된 법규정에서 벗어나 오늘을 살아가는 수많은 무형문화의 전승자나 특히 1959년 서울대학교 음악대학에 국악과가 개설된 이후 전국에 있는 스물세 곳에서 배출된 국악과 졸업생들에게 전주소리축제는 자유로운 전승과 창작의 마당이 되어주어야 하는 것이 가장 우선된 책무이다. 그리고 내년 내후년 계속될 소리축제가 현재와 함께 할 수 있는 살아있는 소리, 마땅히 공연이나 축제등 설자리가 많지 않아 고통받고 있는 수많은 젊은 전승자들의 자유로운 전승과 창작 무대가 중심이 되는 그들의 예술성을 담아내는 축제로 나아가는 것이 할 진정한 전주소리축제의 방향성이다.
/최공섭 (프리랜서 피디)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4년 09월 1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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