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 지구촌 경제문제의 해법을 찾아서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6월 16일
이 시점에서 지구촌의 리더들이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경제문제에 대한 해법을 논의한다면 어떤 주제 들을 다루어야 할까. 필자는 두 개의 축을 제안하고 싶다. 하나는 자유무역의 지속을 위한 의지를 다지는 일 이다. 다른 하나는 새로운 소득분배의 길을 모색하는 일이다. 사실 자유무역은 그 동안 당연한 것으로 여겨왔다. 온 세계가 지금 역사적 기준으로 볼 때 상당한 수준 의 평화를 누리고 있는 데는 자유무역의 힘이 크다. 곳곳에서 선동가들이 증오의 메시지를 퍼뜨리고 있지만 세계전쟁이 일어나지는 않는 이유도 무역의 상호의존성이 이를 막고 있기 때문이다. 그동안 세계는 세계화와 혁신의 덕택으로 상당 기간 번영해왔다. 그런데 이 성공은 역설적으로 세계화 와 혁신 자체를 위협하고 있다. 각국의 국내정치가 반이민정책으로 선회했다. 이제는 한술 더 떠서 트럼프의 관세정책에서 보듯이 자유무역 자체에 저항하는 흐름이 생겼다. 좀 더 있으면 혁신에 대한 저항운동이 일어 날지 모른다. 산업혁명 시대에 노동자들이 기계를 부쉈던 것처럼. 이러한 반세계화와 반혁신의 흐름을 어리석은 군중의 저항과 이를 이용한 선동가들의 날뜀으로 치부하 기에는 실제로 해결해야 될 커다란 문제가 있다. 우선 당면한 소득양극화가 그 것이다. 그런데 당장 보이지 않을지 모르지만 더 심각한 문제는 시장경제의 소득분배 메커니즘 자체가 붕괴되고 있는 것이다. 이를 방치 하면 공산주의 혁명과 같은 파국이 잉태될 지도 모른다. 분배문제는 현하 지구촌이 해결해야 될 가장 심각한 경제문제다. 왜 그런가. 한 동안 인류가 사용해온 소득분배 메커니즘이 이제 잘 작동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 동안 활용되어온 소득분배 메커니즘의 기본원리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 소득으로 받아간다는 것이다. 노동자는 생산에 기여한 만큼 임금을 받아간다. 원료, 중간재, 기계, 건물 등 자본재의 소유주는 그 생산요소 가 기여한 만큼 원료비용, 임대료 등으로 받아간다. 그런데 몇 가지 서로 연관된 변화가 생겼다. 첫째, 기술의 발달, 특히 최근 인공지능의 발달로 생산에서 사람의 역할과 기여가 변화되고 있다. 그동안 기계는 사람의 팔다리를 꾸준히 대체해왔다. 육체노동의 역할 이 줄어든 것이다. 이는 축복이며 저주였다. 장기적으로는 노동자들의 수고가 줄어들♘지만 단기적으로는 육 체노동자가 일자리를 잃기도 했다. 그런데 이제는 인공지능이 사람의 머리를 대체하기 시작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에서도 컴퓨터의 발전은 괄목할 만하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컴퓨터는 인간의 뇌와 같은 역할을 한다. 인공지능의 발전은 이미 컴퓨터와 함께 잉태되♘던 것인데 이제까지 그것을 깨닫지 못한 것이 오히려 이상할 정도다. 인공지능의 발전으로 정신노동의 역할이 줄어들고 있다. 이로 인해 앞으로 전문직 종사자이 일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물론 사람들이 골치아픈 정신노동에서 해방되어 여유를 즐길 수 있게 되♘으니 이 또한 장기적으로 보면 축복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육체노동도 정신노동도 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소득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심각한 문제가 생긴다. 둘째, 경제가 가변비용경제에서 고정비용경제로 변화해가고 있다. 생산비용의 큰 부분을 개발비용이 차 지하게 되고, 상품이나 서비스의 개별사용자를 늘리는 제조비용은 무시해도 좋은 상황이 되어가고 있다. 문 화콘텐츠 제작비용, 소프트웨어 개발비용, 연구개발 비용 등이 모두 여기서 말하는 개발비용에 해당한다. 개 발과정이 아닌 제조과정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몫은 현저히 줄어들 수밖에 없다. 소수의 개발 엘리트와 다수 의 제조 군중 간의 뛰어 넘기 힘든 간극이 생긴다. 소득양극화를 넘어 소득분배 메커니즘 자체가 붕괴된다. 소득 없는 계층이 생긴다. 농업 시대는 신분 사회였다. 일하는 농민계층과 지배하는 귀족계층이 있♘다. 공업시대에는 육체노동하 는 노동자 계층과 기계를 소유한 자본가 계층이 있♘다. 산업이 바뀔 때마다 사회구조가 변화하고, 변화기에 인류는 진통을 겪♘다. 이제 또 다른 과도기를 맞고 있다. 육체노동을 로봇이 대체하고 정신노동은 인공지능 이 대체하는 시대가 되고 있다. 육체노동하는 로봇아바타와 정신노동하는 인공지능 아바타를 둔 사람들은 무엇을 할 것인가. 이제 사람들은 여가만 즐기면 되는가. 모든 인간이 여유롭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어떤 형태로든 사회적 불평등은 존재하게 될 것이다. 그동 안의 양극화는 정신노동과 육체노동의 차이로 나타났다. 이제는 초 정신노동과 보통 정신노동의 차이로 나 타날 것인가. 사회적 혼란이 더 진전되기 전에 이런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아야 한다. 문제의 핵심은 소득분배다. 결국은 정치가 이를 결정하게 될 것이나 해법은 학자나 사상가들이 마련해야 한다. 존 메이너드 케인즈가 말했듯이, 공중에서 소리를 듣는 미친 권력자도 몇 년전 어느 학자가 써갈긴 것을 추출해서 소란을 피우 는 것이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6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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