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으로 가는 고향길 2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9월 30일
정성수 본지 논설위원/ 명예문학박사
추석날 아침은 이른 시간부터 분주하다. 부엌에서는 어머니가 송편을 찌느라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고, 고소한 참기름 냄새가 집 안 구석구석을 채운다. 아버지는 제사상을 위해 과일을 확인하고 술잔을 닦는다. 작은 접시 위에는 대추와 밤, 곶감이 가지런히 놓였고, 금세 차례상은 풍성한 빛깔로 가득 찼다. 아이들은 마당을 뛰어다니며 신이 난다. 평소에는 만나기 힘든 사촌 형, 동생들과 연신 웃음소리를 터뜨린다. 바람에 실려 오는 송편 냄새와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뒤섞이자, 집안에는 유난히 따뜻한 활기가 감돈다. 조금 뒤, 온 가족이 차례상 앞에 모인다. 조상님들 앞에 절을 올리고 술잔을 돌리며, 각자의 마음속에는 감사와 그리움이 고요히 자리한다. 눈을 감고 절을 하는 순간,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오는 듯하다. 어린 시절 늘 우리를 품어주던 너른 품이 생각나 가슴이 뭉클해진다. 차례가 끝난 뒤 식탁에는 송편과 전, 나물, 갈비찜이 차려진다. 삼삼오오 모여 앉아 음식을 나누는 동안, 대화의 주제는 자연스럽게 서로의 안부와 한 해 동안의 일들로 흘러간다. 고향에 내려오지 못한 가족 이야기도 오르내리고, 서울에 사는 큰이모 소식에 모두가 귀를 기울인다. 식사 후 마당에서는 놀이가 이어진다. 남정네들은 윷판을 펼쳐두고 큰소리로 환호하고, 아이들은 제법 진지하게 제기차기를 한다. 흥겨운 소리와 웃음이 들판 너머까지 퍼져나간다. 해가 중천에 다다를 무렵, 가족들은 함께 산소에 들린다. 잘 다듬어진 조상들의 묘 앞에 절을 드리자, 마치 조상이 살아돌아오는 느낌이다. 산 아래로 내려올 때는 주운 밤 몇 개는 황금덩이 못지 않다. 성묘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오후, 마을은 한층 더 활기를 띠었다. 골목마다 오래된 친구들이 모여 서로의 얼굴을 확인하며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평소에는 텅 비어 있던 마을회관 앞마당도 사람들로 북적였다. 고향을 떠나 도시에서 살던 이들이 다시 돌아오자, 작은 마을이 모처럼 활기를 되찾은 것이다. 아이들은 마당에서 제기를 차거나 땅 뺐기 놀이를 하고, 어른들은 삼삼오오 모여 마을의 옛이야기를 꺼냈다. 저기 느티나무 밑에서 같이 공기놀이하던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애들 아버지가 됐네.‘라는 말에 모두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 웃음 속에는 세월의 무게와 함께, 다시 만난 반가움이 묻어 있었다. 저녁 무렵이 되자 시골 특유의 정겨운 잔치가 시작되었다. 송편은 물론이고, 잡채와 전, 고기가 푸짐하게 올라와 사람들의 손이 분주해졌다. 막걸리 잔이 오가며 흥겨운 노랫소리가 터져 나왔다. 어머니의 손길로 차려진 음식은 어떤 진수성찬보다 따뜻하고, 사람들은 배부름보다도 마음이 먼저 채워지는 듯했다. 둥글고 밝은 보름달이 하늘 한가운데 걸리면, 아이들은 저마다 소원을 빌었다.‘공부 잘하게 해 주세요’‘우리 가족 건강하게 해 주세요.’순수하고 절실한 목소리들이 달빛에 실려 퍼져 나갔다. 어른들은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잠시 옛 시절을 떠올리며 미소 짓는다. 밤이 깊어갈수록 마을은 고요해지지만, 마음은 오히려 더 풍요로웠다. 오랜만에 가족과 이웃이 모여 나눈 웃음과 대화, 그리고 조상님들께 올린 정성은 사람들의 가슴에 긴 여운을 남겼다. 도시의 화려한 불빛 속에서는 느낄 수 없는, 고향만의 따뜻한 정서가 온몸에 스며드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추석의 하루는 달빛 아래에서 잔잔히 마무리되었다. 추석이 지나고 맞이한 아침, 마을은 전날의 북적임과 달리 한결 고요했다. 닭 울음소리가 들리고, 안개가 자욱이 내려앉은 들판 너머로 햇살이 부드럽게 번져 나갔다. 마당에서는 아직도 송편 냄새가 은은히 남아 있었고, 장독대 위에는 밤새 내린 이슬이 반짝였다. 집 안에서는 어머니가 남은 음식을 다시 차려내며,‘가는 길에 가져 가라.’고 손수 김치와 전을 꾸려 넣었다. 아이들은 여전히 명절의 여운 속에서 뛰어놀고 싶어 했지만, 아버지는 이미 자동차 열쇠를 손에 쥐고 있었다. 다시 먼 길을 떠나야 하는 시간이 다가온 것이다. 이웃집 아저씨도, 사촌네 가족도 하나둘씩 짐을 챙기며 인사를 나눴다.‘조심히 올라가세요.’‘내년에도 꼭 와요.’ 짧은 말 속에는 아쉬움이 깊게 배어 있었다. 차량에 올라 시동을 거는 순간, 집 앞에 서 있는 부모님의 모습이 창밖으로 보였다. 두 손을 흔들며 배웅하는 모습이 점점 멀어질수록, 가슴 한편이 뻐근해졌다. 아이들은 창문을 내려‘할머니, 또 올게요!’하고 소리쳤고, 할머니는 눈시울을 붉히며 고개를 끄덕였다. 고속도로에 들어서자 전날과는 또 다른 풍경이 펼쳐졌다. 이번에는 수많은 차들이 도시로 향하는 방향으로 몰려 있었다. 긴 행렬에 갇히자 지루함이 밀려왔지만, 차 안의 분위기는 달랐다. 전날에는 설렘이 가득했지만, 오늘은 아쉬움과 피곤함, 그리고 돌아가야 할 일상에 대한 묵직한 생각이 뒤섞여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두의 얼굴에는 따뜻한 미소가 떠올랐다. 어제 함께했던 웃음과 대화가 아직도 귓가에 맴돌고 있었기 때문이다. 휴게소에 들러 마시는 커피 한 잔, 아이들 손에 들려진 핫도그 하나조차 특별하게 느껴졌다. 고향의 기운이 아직도 옅게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돌아가는 길은 길고 고단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이번 명절에 채워 넣은 정과 기억이 따뜻하게 자리했다. 추석은 단순히 한 해의 절기를 기념하는 날이 아니었다. 흩어져 지내던 가족들이 모여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잊고 지냈던 고향의 향기를 다시 떠올리며, 바쁜 일상 속에서 잠시 숨을 고르는 시간이었다. 귀경길의 끝에서 도시의 불빛이 보일 때쯤, 사람들은 다시금 다짐한다. ‘다음 명절에도 꼭 내려와야지! 추석은 끝났지만, 마음속에서는 이미 다음 만남의 기다림이 시작되고 있었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5년 09월 3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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