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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에도 꽃은 피더라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0월 23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하늘이 구름 한 점 없이 맑고 깊다. 가을을 산책하기에 더 없는 안성맞춤이다. 매일 새벽길을 한 시간 정도 걷기로 하루를 시작한다.
오늘은 새벽예배가 없는 주말이라 아침 운동을 하지 않아서인지 몸이 근질거린다. 새벽예배에 나오는 이유를 묻는다면 첫째는 하루의 시작을 예배와 기도로 정리하고 시작하는 기쁨이요 둘째는 맑은 아침 공기를 마시며 산책과 운동을 동시에 할 수 있다는 꿩 먹고 알 먹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날씨가 쾌청한 날에는 혼자만의 산책을 즐기고 싶어진다.걸어야겠다. 예배당 골목길을 돌아 유토피아 아파트를 지나면 시원하게 확 트인 강에 버금가는 전주천이 나타난다. 시민의 건강과 휴식을 위해 물길을 따라 산책로와 자전거길이 잘 조성되어 있다. 물길을 따라 갈대와 억새가 군락을 이루며 은빛 머리를 흔들어 댄다.
애완견을 데리고 산책하는 사람, 조깅하는 사람, 하이킹을 즐기는 사람 모두 천변의 풍경에 어울리는 자유분방한 모습이다. 강물에 볕살이 은비늘처럼 쏟아진다. 간간이 청둥오리가 무리를 지어 수면에 차르르 내리더니 유유히 강물을 유영한다. 갈대 덤불 속에서 노니는 굴뚝새 재잘거림이 정겹다. 사람들과 친해진 탓인지 멀리 달아나지 않고 몇 발짝 자리를 옮겨 앉는다. 작은 가지와 수풀을 오가며 한때를 즐기는 모양이다.
전주 대교를 앞두고 방향을 틀어 농수산물도매시장을 돌아 발단 마을로 들어선다. 이 마을은 철도 길 건너 과거 전주 비행장 남녘 기슭에 자리 잡고 있다. 전주 시내와 철길 하나를 두고 있는 자그마한 농촌 마을이다. 지금이야 군부대가 임실로 이전하면서 에코시티라는 거대한 아파트단지가 들어와 전주시의 미개발 노른자 땅이 되었지만, 그 전만 해도 군부대가 인접해 있고 철도 건너편에 있었기에 도심을 벗어난 외진 마을이었다. 마을 초입에서 송천중학교로 이어지는 경운기 겨우 지날만한 이 길이 발단길이다. 길 초입에 배추를 심은 채소밭이 있다. 시내 사는 그 댁의 가족인 듯싶다. 고구마 줄기를 따서 다듬고 있다. 고구마가 다 자라고 수확하기 전에 고구마 순을 따서 거친 껍질을 벗기고 김치를 담가 먹으면 그 맛이 그만이다.
잘 익은 대추가 붉은빛을 한껏 자랑하고 있지만, 주인의 손길이 모자라서인지 나무에서 쪼그라진 채 마른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을 김장을 위해 텃밭에 심어놓은 무가 푸른빛을 더해가고 배추는 속을노랗게 채워가며 김장을 기다리고 있다. 발단 마을을 빠져나오자 나락 논이 이어진다. 샛노랗게 물기 젖은 지난주 모습이 오늘은 볏짚이 마르고 색깔도 푸석푸석해지며 탈곡을 기다리고 있다. 누군가가 밭에 모과나무를 심어놓은 모양이다. 드문드문 심어진 나무에 이파 리 하나 없는 연둣빛 모과가 풍장처럼 달려 있다. 나무 아래 수풀 속을 보니 군데군데 모과가 떨어져 있다. 그중 실하고 잘생긴 놈 하나를 챙긴다. 제법 묵직하다. 엊그제 이 길을 지나면서 주워 갈까 하다, 짐이 될성싶어 다시 놓고 갔다. 그런데 오늘은 왠지 생각이 달라졌다.
지난번에 잘 익은 탱자를 주워다 거실 탁자에 붉은빛이 잘돈 사과와 함께 접시에 담아 가을을 들여놓았다. 그런데 어느 날 보니 사과는 온데간데없고 탱자만 홀로 남아 있는 것이다. 아마도 아내가 해치웠던지 냉장고로 들어갔을 것이다, 오늘은 그 자리를 모과로 채워 보아야겠다.
집으로 가는 길은 세병호를 가로질러 가거나 둘레길로 돌아가야 한다. 하지만, 아기 머리통만 한 모과를 손에 들고 가는 모습이 별다른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들판으로 이어지는 외곽 길로 돌아가기로 했다. 길 언저리에 노란색 들꽃이 눈에 선명하게 들어온다. 하나는 멀리서 보아도 뚱딴지꽃이다. 다른 이름은 돼지 감자꽃이다.
또 하나 멀대처럼 큰 키에 들판에 하늘거리는 마타리꽃이다. 꽃은 대부분 봄이나 여름에 피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을에는 꽃이 지는 계절로 알고 있다. 그러나 들판을 거닐다 보면 가을에 피는 꽃이 생각보다 많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특히 들국화와 불리는 구절초, 쑥부쟁이, 산국, 감국, 개미취 같은 청초한 가을 색으로 피는 꽃, 그리고 노랗게 피는 마타리와 뚱딴지꽃 거기에 가을의 상징 같은 코스모스가 있지 않은가. 강가나 금빛 들판에 하늘거리며 피어 있는 코스모스는 가을의 전령사라 했다. 그뿐 아니다. 선운사나 불갑사에 가면 애절하게 사랑 꽃으로 피는 붉디붉은 상사화가 있다.
이들이 가을날의 외로움과 쓸쓸한 빈자리를 채워 준다. 노랑은 희망을 노래하는 색이 아니던가.
코로나19로 뒤바뀌어 버린 우리의 일상이 서로의 만남과 모임과 갈라놓고 있다. 들판에 무더기무더기 피어난 뚱딴지의 노랑처럼 우리네 마음도 노랑 빛 희망으로 무더기무더기 피어났으면 좋겠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10월 2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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