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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팀목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4일
형효순 수필가

“어매! 어디까지 왔어?”
“오냐! 이제 다 왔다”
어매의 다 왔다는 말은 믿을 수가 없었지만 그 말을 들으면 힘이 생겼다. 산 고개를 수없이 넘고 넘어야 갈 수 있는 외갓집이었다. 같은 대답을 열 번도 더 들어야 외갓집이 겨우 보였다.
어른이 되어서도 어머니는 내가 지쳐 보일 때마다 매번 같은 말씀을 하셨다.
“조금만 참고 살그라이! 참을 인忍자 세 번만 새기면 살인도 면 헌다고 안 허드냐? 참고 살다보면 모든 일들은 다 풀리게 되어 있응께….”
외갓집 가던 길만큼이나 힘든 인생살이에 어머니의 똑같았던 그 말씀은 맥이 풀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위로가 되었다. 엄마가 된다는 것은 가지고 있던 꿈도 이상도 내려놓아야 했다.
물론 어머니 자격증 없이 시작한 어머니로서의 역할도 쉽지 않았다. 움푹진푹한 세상살이의 고달픔을 알았더라면 지금보다 더 잘 살았을까. 세월이 해결사라는 것도 물론 알지 못했다.
우리의 강한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했던 큰딸은 힘들다 하소연은 못하고 눈빛은 이렇게 말했다.
‘엄마 얼마큼 살아야 앞길이 훤하게 보일까?’
‘조금만 참아라. 살다보면 금방 길이 보일거야. 아무리 힘든 일도 세월이 해결해 준단다.’
어머니와 똑같은 말을 하고 있었다. 시련을 겪는 딸에게 도와 줄 능력이 없어 참 힘들었다. 어느 해 여름날 초저녁 냇가 다리 밑에 앉아 울음을 토했는데 하필 사람이 내려왔다. 멋쩍어 다슬기를 잡는 척 했더니 그냥 울던 대로 실컷 울고 가란다. 사람 사는 것 다 그런 거라면서.
시원한 대답도 하지 못했던 것 같았는데, 딸은 어둡고 긴 터널을 잘 빠져 나왔다. 친정어머니 말씀처럼 세월은 험한 길도 평평한 길로 안내하기 마련인가 보다. 하긴 세월이 어디 생색을 낸 적이 있었던가. 견디는 사람에게도 견뎠던 사람에게도 공평하게 받아주고 보내기를 반복 할 뿐이다.
아들내외가 집을 샀다. 대견하고 흐뭇하여 문자를 보냈다.
“너희 집에서 사니 참 좋지?”
“네 좋아요. 그런데 앞길이 조금 어두워요.”
“어두우면 마음에 불 켜면 된단다.”
대출 걱정 때문에 그럴 것이라고 생각되면서도 걱정하지 말라고 할 수밖에 없다. 하루 등산을 해도 가파른 오르막과 내리막을 수시로 만나야 정상에 오를 수 있다.
다행히 며느리는 살아가는 과정을 중요시 하는 좋은 사고력을 가지고 있다. 스마트폰이 울려 열어보니 손녀와 손자가 환하게 웃고 있다. 이렇게 예쁜 아이들이 있어 아들내외도 힘을 얻곤 하겠지.
막내딸은 고민 끝에 일과 육아를 병행했다. 슈퍼우먼이 되어야 하는 딸을 보는 심정이 편치 않다. 헉헉대는 딸에게도 조금만 더 참고 살자고 한다. 또 그 말 밖에는 해줄 것이 없다. 마음 놓고 아이를 낳고 키우는 정책은 멀기만 한지…. 아이들은 지금 세월의 한복판을 살고 있다.
내게 매번 조금만 참고 살다보면 세월이 모든 것들을 해결해 준다던 친정어머니 마음을 짚어 본다. 달리 시원하게 해줄 말이 없어 안타까웠던 어머니의 마음이 지금 내 마음이었겠지. 아무리 마음 바빠도 여전히 세월은 결과를 미리 알려주지 않는다. 그저 지켜볼 뿐이다.
둘째 딸이 미혼이다. 생의 한 가운데에서 달리기를 할 나이인데 결혼에 대한 매력이 없다고 한다.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가족이 모여 사는 것이 인생의 전부가 아니라는 딸의 마음에 결혼에 대한 타당성을 제시할 자신도 사실 없다. 요즘 유행한다는 싱글슈머가 되지 않기를 바래본다.
내가 어머니에게서 똑같은 대답을 듣고도 힘이 솟았던 것처럼, 아이들도 내 똑 같은 대답에 힘이 되기를 소망해 본다. 굳이 다른 대답을 해본다면, 네 곁에 있는 모든 것들이 너를 위해 존재 한다고 생각하면 ‘지금’이 소중하고 길가에 핀 풀 꽃 한 송이까지도 삶이 아름다운 이유가 된다고 말 할 수밖에.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6월 1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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