삐쩍 마른 것이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24일
형효순 수필가
시어머니 등은 따뜻했다. 뭐라 표현하기 힘든 감정이었다. 말없이 물을 첨벙첨벙 건너던 어머님 “밥 좀 많이 묵어라” 끌끌 혀를 차는 어머님 말씀이 아니더라도 마음은 가시 방석이다. 내 엉덩이를 받쳐 든 어머님 손 때문에 어색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어머님 목을 마음대로 끌어안을 수도, 그렇다고 두 손을 내려놓을 수도 없어 남편 등에 업혀 건널 때는 그리 가깝던 냇가가 천리만리 멀었다. 성적굴 논 옆에 작은 고추 밭이 있다. 다리를 건너가면 빙 돌아 멀지만 냇물을 건너면 절반은 가까워 곧잘 물을 건너가곤 했는데 큰 걸음으로 먼저 냇가에 다다른 어머님이 냇물에 툭 들어서더니 등을 내미셨다. “업혀라” 언감 생신 시어머니 등에 업히라고? 순간 잘못 들었나 멀거니 서 있다가 얼른 양말을 벗는 나를 보고 “업히랑깨 삐쩍 마른 것이” 어쩌지 못하고 주춤거리는 나를 채가듯이 업은 어머님은 정강이 까지 오른 냇물을 철벅철벅 기운차게 건너 반대편 언덕에 내려 주었다. 밭을 매면서 이젠 꼼짝없이 분명 이 집 귀신이 되겠구나, 평생 어머님 말씀에 토를 달지는 못하겠구나, 깊이 깨닫고 말았다. 그리고 참 많이 어머님 말씀에 반박을 하지 못하고 울고 웃었다. 그날 등에 업힌 것을 후회하면서. 서울에서 손자를 돌보며 잠시 살던 겨울, 갑자기 어머님이 쓰러지셨다는 전화를 받고 내려 왔을 때는 이미 의식이 없었다. 주말마다 오르락내리락 하는 내가 걱정되었는지 일주일 전 올라 갈 때도 건강한 목소리로 “조심허고 잘 댕겨라.” 하시고서는 어떻게 이럴 수 있나. 처음에는 믿고 싶지 않았다. 그 오랜 세월 함께 한 애증은 어쩌라고. 살면서 용서 받고 싶었던 마음, 사과 받고 싶었던 일, 모두 풀어드리고 헤어져야 하지 않을까. 의식 없는 어머님께 일주일 동안 혼자 넋두리를 해댔다. ‘이러시는 것이야 말로 반칙입니다’ 어느 땐가 어머님이 반칙이 무슨 뜻이냐고 물었다. 지켜야 할 법이나 규칙을 어기는 것이라고 대충 설명했더니 그 뒤 당신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반칙이라고 무조건 나무라셨다. 그래도 꿋꿋이 그것이 아니라고 대들었던 날이나 순간순간 미워했던 마음 잔소리에 억지라고 혼자 격분했던 것도 용서하시라고 말씀드려야 하고, 너랑 나랑 한 집에서 40년이 넘는 세월 우리 잘 싸우고 잘 웃고 잘 살았다고도 듣고 싶었다. 하지만 끝내 어머님은 한마디 말도 없이 그렇게 가셨다. 내가 못 마땅할 때마다 “밥 좀 많이 묵어라 그래야 심이 생길 것 아니냐. 그래각꼬는 우리 아들만 고생 시킨다”. 행여 당신 아들 힘들까봐 밥심으로 나를 길들이셨다. 어머님 말로 삐쩍 말랐다는 나는 어머님 양푼 비빔밥으로 어머님만큼 몸이 불어났으며 당신 아들 고생 안 시킬 것처럼 몸무게도 묵직해졌다. 그리고 어느새 옛날 나보다 훨씬 연약한 며느리를 맞았다. 떨어져 살다보니 일 년에 몇 번의 만남이 전부지만 일철에는 곧잘 내려오게 할 수밖에 없다. 모내기를 도와주려고 아들 딸 며느리 사위가 모두 모였다. 끝나고 마늘밭으로 집합시켰다. 한고랑에 지 짝들끼리 경쟁을 붙였다. 아들과 한조가 되어 마늘을 뽑던 며느리 한 뿌리를 뽑아 올릴 때마다 된 숨과 함께 꽁꽁 안간힘을 다한다. 연약한 모습이 옛날 내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안쓰럽다. 나랑 눈이 마주치자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어머님 그동안 힘들었겠네요. 이젠 마늘 뽑을 때마다 우릴 부르세요” 해맑은 얼굴로 웃는 며느리를 향해 ‘밥 많이 먹자. 농촌에서는 밥심으로 일을 한단다. 그렇게 약해가지고 힘든 세상을 어떻게 견디겠니.’ 할 뻔 했다. 어쩐다니 나도 천상 시어머니 닮았나봐.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24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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