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제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25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요즈음은 인사법도 유별나다. 카톡이 인사까지 대신하는 나라다. 요란하게 카톡이 축하 메시지를 전한다. 삼수 도전 끝에 지역문화예술육성사업 지원 대상자로 선정되었다는 명단을 보고 축하 인사를 건네고 있다.
삼 년 전쯤, 시가 무엇이고 수필이 무엇인지도 제대로 모르는 사람이 몇 년간의 졸작을 모아 출간한다고 하니 아내가 남들처럼 지원금을 받아서 책을 내지 왜 생돈을 들여 책을 내느냐며 응원 반, 핀잔 반, 타박을 한 적이 있다. 그런 탓에 언젠가는 남들처럼 나도 한번 나랏돈을 지원받아 출간하고 싶다는 부러움을 품은 적이 있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선정을 아내에게 은근히 자랑하고 싶은 마음도 들었다. 아내도 창작지원금을 받게 되었다니까 잘된 일이라며 축하해 주었다. 그렇게 약간은 들뜸과 기쁨으로 기분 좋은 하룻밤을 보냈다.
들뜨고 기분 좋은 시간은 거기까지였다. 이튿날이 되자 그 기쁨은 온데간데없고 마음에 묵직한 부담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이 아닌가. 소화가 되지 않아 체기가 있는 사람처럼 가슴도 답답하고, 등짐을 지고 있는 듯 어깨가 무겁게만 느껴지는 것이다.
올해 시집을 내리라 마음은 먹었지만 아직 시집을 낼 작품 분량도 부족하고, 이미 써 놓은 글도 부족함과 모자람이 가득했다. 나름 서너 번의 퇴고를 해 두었건만 보면 볼수록 가야 할 길이 멀어 보이기만 했다. 어느 선배 시인님의 말씀에 따르면 그해 출간을 계획하고 있다면 6월 이내에 인쇄에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서둘러 준비해야 가을 중에 모든 과정을 마칠 수 있다고 했다. 자비를 들여 책을 낼 때에는 이런저런 부담 없이 작업을 마무리하곤 했는데, 정작 지원금을 받아 하는 일이라 그런지 부담스럽고 무겁게 느껴지는 것이다.
선정되기 전에는 지원금이 공돈처럼 느껴졌는데, 막상 선정되고 보니 짐이 되고 마는 부담스러운 숙제로 여겨졌다. 해도 그만, 안 해도 그만인 일이 아니라 반드시 해야만 하는, 그것도 정해진 기한 내에 창작집 한 권을 발간해야 하는 책임과 평가가 뒤따르는 무거운 숙제가 되어 버린 것이다.
‘세상에 공짜 점심은 없다’라는 말이 있다. 하물며 나랏돈인들 오죽하겠는가. 반드시 지원 조건을 이행해야 하고 결과물을 만들어 그 결과를 보고해야 하는 의무까지 져야 한다.
지역문화예술육성사업 지원금은 문화예술인들의 창작 의욕을 높이고 경제적 부담을 줄여주기 위해 국가에서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는 사업이다. 더군다나 국민의 세금으로 조성된 재정을 도움받아 사용하는 돈이기 때문에 이행에 대한 책임과 의무가 반대급부로 주어지기 마련이다. 이 도움과 기회를 얻기 위해 많은 사람이 손을 들었을 것이다. 운 좋게도 그중에서 내가 선택된 것 아닌가.
경험을 통해 익혀 둔 것이 있다. 눈물을 흘리고 나면 슬픔도 아픔도 사그라들고 마음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그다음이 문제였다. 그 가벼움은 게으름을 낳고 무사안일 쪽으로 데려가곤 했다. 하지만 상을 받거나 성과를 내어 축하를 받게 되면 다음에는 반드시 무거운 책임감과 의무감 같은 것이 따라왔다. 그러나 책임과 의무감은 다시 도전하고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힘이 되어 주었다.
그때의 간절했던 마음으로 돌아가자. 어차피 사업 대상자로 선정된 이상 좋은 책을 만들어 보자. 작품에 더 열중해 보고 퇴고도 몇 번 더 해야 할 것 같다. 누군가의 도움을 받았으니 누군가를 위한 더 좋은 글을 담고 그 결과를 보여 주어야 하지 않겠는가.
부담을 설렘으로 바꿀 수만 있다면 더없이 좋은 일일 것이다. 어깨가 한결 가벼워졌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25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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