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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시 들려주는 할배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27일
이경재 전주대 교수(전,경영대학장)
시 쓰는 경제학자
‘시가 내 인생에 들어왔다’ 저자


직장에서 정년을 맞아 퇴임하는 일은, 인생으로 보면 살아온 한 세계를 마감하는 일과 같다. 정년은 시기가 정해져 있어 예측 가능하지만, 언젠가 찾아올 삶의 진짜 마지막은 알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정년은 어쩌면 삶이 우리에게 준 ‘예고된 전환점’일지도 모른다.
서두부터 끝을 운운하니 마음이 무겁지만, 여기서 말하는 끝은 생의 마감이 아니라 ‘직장인으로서의 삶의 종료’를 의미한다. 그 순간을 마주하며 지나온 날들을 돌아보고, 앞으로 맞이할 제2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해 보고자 한다.
얼마 전, 전주시의 한 노인복지관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다. 원래는 매주 글쓰기 강의를 맡으시는 분이 내 책과 시를 소개했는데, 어르신들께서 저자를 직접 만나보고싶어하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러나 책정된 강사료가 없어 선뜻 강의를 요청하지 못하는 듯 했다. 나는 어르신들의 간절한 바람을 듣고 강사료는 걱정하지 말아라며 흔쾌히 기부강의를 약속했다.
강의 당일, 어르신들의 열정은 뜨거웠다. 질문도 쏟아지고 웃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나 역시 강의를 하면서 마냥 행복했다. 강의 후 돌아오는 길에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 이런 것이 바로 내가 퇴직 후에 해야 할 일이구나.”
정년은 단순한 종결이 아니라, 세상 속에서 나의 새로운 역할을 찾는 출발점이라는 깨달음이었다.
앞으로는 아이들과도 만나고 싶다. 아이들에게 동시와 동화를 들려주고, 함께 시를 써보고 싶다. 글쓰기를 어려워하는 아이들에게 생활 속에서 쉽게 마음을 담아내는 글이나 시를 쓸 수 있는 노하우를 전수해 주고 싶다.
아이들의 상상력이 싹트는 모습을 곁에서 지켜보는 삶, 그렇게 퇴직 후 ‘동시 들려주는 할배’가 되어볼까 한다.
직장에서의 역할이 끝났다고 해서 사회적 존재 이유까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퇴직 후의 삶을 그저 여유로운 여가로만 채우고 싶지는 않다. 물론 여행도 가고 늦잠도 자며 계획 없는 하루를 누리는 기쁨도 크겠지만, 세상과 숨 쉬는 나만의 역할을 계속 이어가고 싶다. 그동안 쌓은 전문성을 바탕으로 ‘시 쓰는 경제학자’, ‘보험 전문가’의 역할도 해 나가겠지만, 아이들에게는 꿈을, 어르신들에게는 공감을,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지난 삶에서 얻은 작은 지혜를 나누는 것. 그것이 내가 꿈꾸는 제2의 인생이다.
지난 1년 동안 마음속에 ‘캠퍼스에서 보내는 지금 이 순간이 모두 마지막’이라는 생각이 자리했다. 그 마음을 품으니 모든 순간이 소중하고 아름답게 다가왔다. 출근길, 연구실 문을 열 때마다 가슴이 설레고 감사했다. 계절 따라 변하는 캠퍼스의 풍경, 단풍이 들고 낙엽이 지며 눈이 내리고, 겨울이 지나 봄꽃이 피는 모습 하나하나가 마치 내게 주어진 마지막 선물처럼 느껴졌다.
인생의 ‘죽음’이 모든 것의 끝이라면, 직장 정년은 시한부 인생처럼 끝을 맞지만, 진짜 죽음과 달리 제2의 삶이 또 시작된다. 정년은 시기가 정해져 있지만, 죽음은 아무도 예측할 수 없다. 그렇기에 나는 정년 후 삶을 ‘모든 것이 마지막일 수 있음’을 가슴에 새기며 하루하루를 소중히 살아가려 한다. 오늘 만난 이가 마지막일 수도, 오늘 한 강의나 건넨 인사가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하면 삶을 대하는 태도는 엄숙해지고 따뜻해진다.
106세의 철학자 김형석 박사는 100년 넘게 산 인생을 돌아보며 “돈이든 명예든 성공이든, 내가 나를 위해 한 일들은 결국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라고 했다. 나 역시 그동안 참 열심히 살아왔지만, 돌이켜 보면 스스로의 욕망을 채우기 위한 조바심도 많았다.
이제 다가올 삶은 부디 허공으로 흩어지지 않고, 누군가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오래 남을 일들로 채워가고 싶다. ‘동시 들려주는 할배’의 첫걸음을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려본다.(econo4you@nate.com)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6년 08월 2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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