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모엠파티쿠스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호모 사피엔스’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서로 배려하는 ‘호모 엠파티쿠스’의 세상으로 갈 것인가?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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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간을‘만물의 영장’혹은 ‘이성적 동물’이라 한다. 이러한 인간 중심의 사고에는 인간이 다른 동물들에 비해 ‘사유의 능력’이 우월하다는 생각을 전제로 하고 있다. 생물학에서 현생인류를 호모 사피엔스(homo sapiens), 곧 ‘지혜가 있는 사람’이라 이름하고, 이를 기준으로 원시 인류와 현생 인류를 구분하고 있음도 이와 같다.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인간, 다시 말해 인간의 이성이나 합리성이 오늘날 인간을 고귀한 존재가 되도록 만들어 주었다는 믿음이다, 이러한 믿음이 1619년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의 그 유명한 명제를 기점으로, 중세의 신(神) 중심주의에서 근대의 인간(人間) 중심으로 전환되는 계기가 되었다. 이때부터 인간들은 이성의 위대함을 찬양하며 신(神)의 자리에 인간을 가져다 놓고 합리와 과학이라는 이름으로 문명의 바벨탑을 높이 쌓아 올렸다. 신(神)이 아닌 이성(理性)의 힘이 세상의 어둠을 밝혀낼 수 있다는 신념으로, 자본주의가 생겨나고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인류의 문명사는 오늘 날까지 그야말로 눈부신 문명의 꽃을 피워왔다. 그러나 과학의 발달로 인한 물질적 풍요는 전쟁과 파괴, 무한 경쟁의 피폐와 상처라는 예기치 않은 역기능을 낳게 되었다. 세계 1, 2차 대전을 치루는 동안 우리를 저 하늘 위의 이상세계로 데려다 주리라 생각했던 이성과 문명이 오히려 우리의 생명을 겨누는가 하면, 끝없는 경쟁에서 밀려난 패자들은 사회적 루저(loser)가 되어 우리의 삶은 더욱 각박해져 갔다. 경제규모 세계 12위권이라는 우리의 경우만 보아도, 생존의 경쟁에서 내몰린 실업자와 자살자가 해마다 급증하고, 아이들의 양육과 교육비가 두려워 신혼부부들이 출산을 꺼리고 있다. 이러한 물신주의(物神主義)의 한계 상황 앞에서 인간의 무력을 절감하면서 사람들은 새로운 신화를 찾아 나서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과 해체주의 그리고 동양 정신에 관한 관심 등도 그 중의 하나이다. 남성과 이성 중심주의에 밀려 있던 여성과 감성 그리고 자연과 환경의 등장도 같은 맥락이다. 그 어떤 법률과 과학, 경제 등 근대의 신화들이 인간의 존엄과 행복을 지켜주는 진정한 보루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때에 미국의 문명비평가이자 미래학자인 제러미 리프킨(Jeremy Riffkin)의 ‘인간은 공감의 존재’라는 선언이 주목을 받고 있다. 인간은 ‘이성적 존재’가 아니라 ‘공감하는 존재’, 곧 호모 엠파티쿠스’(Homo Emphaticus)라는 것이다. 개인적 능력보다 사회적 공감 능력이 요구되는 감성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주장이다.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도 남들과 공감하지 못하면 일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없지만, 서로가 공감하게 된다면 일이 좀더 성공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고, 또 이런 과정 속에서 개인의 능력도 십분 발휘된다는 것이다. ‘공감’은 남의 아픔이나 기쁨을 내 것처럼 느끼는 불교의 자비심이나 맹자의 측은지심과도 같은 말이다. 그런데 현대사회는 아직까지도 ‘이성의 힘’이 인간의 욕망과 결합되어 남보다 앞서가는 ‘승자 독식의 신화’가 이 사회를 주도(主導)하면서 사회적 갈등과 분열이 가시지 않고 있다. 급기야 자본주의의 심장부인 미국 뉴욕 월가에서 금융폭동이 일어나 유럽을 비롯하여 전 세계로 번져가고 ‘코로나 바이러스’가 급증하면서. 문명중심, 경제중심의 자본주의가 위기를 맞고 있다. 앞으로 우리의 생존은, 자연과 인간, 그리고 서로가 서로를 얼마나 돌보고 어루만져 삶의 공동성이 복원될 것이냐? 그리하여 우리가 얼마나 공감의식을 확장하고 발휘할 것이냐?에 달려 있다. 이는 승자 독식의 경쟁구도가 아니라, 너도 좋고 나도 좋은 ‘자리이타(自利利他)’, 주객일체의 상생정신이다. 생각하는 주체로서의 ‘호모 사피엔스’에 머물 것인가? 아니면 서로 공감하고 소통하며 서로 배려하는 ‘호모 엠파티쿠스’의 세상으로 갈 것인가? 여기에 오늘, 아니 내일 우리의 삶이 놓여 있다고 본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0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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