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멸법과 인과응보
하루에도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인(因)과 연(緣)을 자신이 만들며, 그 과(果) 또한 자신이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를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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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멸법(生滅法) 우주 만물은 인연 따라 나타났다(生) 인연 따라 사라진다(滅). 하지만 이러한 생멸(生滅)이 그냥 흔적 없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뫼비우스의 띠처럼 끊없이 이어져 또 다른 생멸을 거듭하고 있으니 이것이 곧 연기(緣起)요, 무상(無常)이고 공(空)이다. 그러면서 그 공(空)과 멸(滅)에서 만물이 다시 생(生)하니, 불생불멸(不生不滅)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세계요, 아인슈타인이 말한, 질량과 에너지가 동등하게 호환된다는 ‘등가(等價) 원리’(E=MC2)이기도 하다. 예컨대 하나의 양초(질량)가 탈 때 거기에서 발산되는 열과 빛이 동등한 에너지(氣)로 변환되니 이 또한 늘지도 않고 줄지도 않는 부증불감(不增不減)의 세계라는 것이다. 이 세상은 원자(原子)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무한히 펼쳐지는 연기의 장(場)이다. 그리고 원자가 양(陽)의 원자핵(양성자+중성자)과 음(陰)의 전자로 구성되어 있고, 이 양성자와 중성자속에는 또 수많은 불가시적(불가시적) 미립자들이 모여 생명(生滅)을 거듭하고, 이것들이 다시 분자(分子)를 이루고, 그 분자들이 모여 비로소 우리가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가시적(가시적) 물질계를 이루고 있다. 이처럼 한 입자의 멸(滅)은 다른 입자 생(生)의 원인이 되어 상호작용하고 있다. 불생불멸((不生不滅) 하나의 입자가 눈앞에서 사라졌다고 하여 무언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며, 하나의 입자가 또 나타났다고 하여 무언가 없던 것이 생겨난 것이 아니다. 하나의 입자가 사라졌다는 것은 다시 무엇인가 생겨나는 준비과정이며, 하나의 입자가 나타나는 것 또한 하나가 사라져 가는 과정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어느 순간에도 제 스스로 생겨나는 것이 없고, 없어지는 것도 없다. 낮과 밤이 나타나고 사라지듯, 우주적 관점에서 보면 생(生)과 멸(滅)은 본디 없다. 원자라는 작은 세계 안에서 펼쳐지는 무한한 연기의 장(場)일뿐, 삼라만상 모두가 예외 없이 무진한 연기의 무대 위에서 생멸을 거듭하며 나타나고 사라질 뿐이니, 천지자연은 참으로 냉정하고 엄혹한 진리의 화엄경이다. 그러기에 이 세상에 그저 생(生)하는 것도 없고, 그저 멸(滅)한다는 것도 없다. 생하는 것도 없고 멸하는 것도 없으니 이것이 도(道)요, 생이 있는 그 자리에 바로 멸이 존재하며, 멸이 있는 그 자리에 바로 생이 존재하는 불생불멸의 세계다. 그런데도 우리는 하나가 생긴 것만을 볼뿐, 그러기 위해 하나의 물질이 소멸한다는 것을 보지 못한다. 거시적 관점에서 본다면 ‘멸’이 곧 ‘생’이고 ‘생’이 곧 ‘멸’이니, 생(生), 그 자리가 곧 불생불멸의 중도(中道)요, 멸(滅), 그 자리에서 또한 생이 태어나니, 생과 멸이 불일불이(不一不異)한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라 하겠다.
인과응보(因果應報) 인과응보란 인과(因果)의 법칙, 곧 원인이 있으면 반드시 결과가 있다는 말이다.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마음가짐, 말과 행동들은 인(因)이며 이것들이 나중에 어떤 연(緣:조건)을 만나 그에 상응하는 과(果)를 만들게 된다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원리는 네 가지 법칙에 의해 작동된다. 첫째는 현재의 즐거움을 위해 남을 괴롭히면 미래의 불행을 만드는 것이고. 둘째는 현재는 괴롭더라도 그것을 참고 견디면 미래가 편안해지는 것, 셋째는 선(善)한 일을 한 결과로 미래에 더 좋은 과보를 받는 것. 넷째는 나쁜 짓을 한 결과로 나중에 고약한 과보를 받는 것. 이 네 가지 길에서 우리가 결코 남에게 해를 끼치거나, 또 정의나 의리를 내세우면서 남을 이용하는 일을 선택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선인선(善人善果)과 악인악과(惡人惡果)를 받게 되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우리는 수많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러한 관계속에서 인(因)과 연(緣)을 자신이 만들며, 그 과(果) 또한 자신이 받는 인과응보(因果應報)의 세계를 오늘도 살아가고 있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사)전라정신연구원장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1월 1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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