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배(石舟)
비워두면 누군가가 채워주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요, 천지자연 곧 도(道)의 이치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03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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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어 있다는 것’은 없는 게(無) 아니라 앞으로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의 공간이다.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운 소리를 내는 악기라도, 풍경이 청아한 소리를 낼 수 있는 것도 소리를 울려 줄 수 있는 빈 공간이 그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무(無)는 우리에게 없게 해 놓고 채우려는 갈망을 불러일으키게 하는 천지자연의 이치요 조물주의 섭리이다. 때문에 비어 있다는 것은 간절하게 소망하는 허기짐이요, 또 새로운 미래에 대한 가능성이기도 하다. 이처럼 ‘없음’, 곧 ‘비어 있음’은 없는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그릇이 비어있기 때문에 음식을 덤아 쓸 수 있듯이, 천지의 기운은 비어 있는 곳으로 흘러 그곳에 사람이 모이고, 재물이 모이고, 세상의 인심이 모이게 된다는 것이다. 그래서인지 동양에서는 차(滿) 있는 것보다 비어 있는 ‘허(虛)’와 ‘무(無)’를, ‘실(實)’과 ‘유(有)’보다 더 큰 덕목으로 여겨 왔다. 눈에 보이는 보이는 세계(色)와 비어있는 공(空)이 서로 다르지 않다는 불교의 공즉시색(空卽是色)이라는 사상과도 다르지 않는 세계이다. 성경에 나오는 ‘가난한 자가 복이 있나나 천국이 저희의 것이로다‘도 다 욕심과 탐욕의 채움보다 비어 있음에 덕이 있음을 통찰한 역설의 미학이라 하겠다. 중국 전국시대 장주(莊周)의 《장자(莊子)》라는 책에 <빈 배虛舟> 라는 글이 있다. 장자가 평소 강에서 홀로 작은 배를 타고 명상에 잠기기를 좋아 했다. 그런데 어느 날, 장자가 여느 때처럼 배 위에 앉아 명상에 잠겨 있었다. 그때 갑자기 어떤 배가 장자의 배에 와 부딪쳤다. 화가 치민 장자는 생각을 했다. “무례한 인간이군, 내가 눈을 감고 명상중인데 어찌하여 내 배에 일부러 부딪친단 말인가?” 장자는 화가 나서 눈을 부릅뜨며 부딪쳐 온 배를 향해 소리를 치려고 하였다. 하지만 다가가보니 그 배는 비어 있었다. 아무도 타지 않은 빈 배였다. 그저 강물을 따라 떠내려 온 빈 배였던 것이다. 순간 장자는 부끄러움을 느꼈다. 후에 장자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 모든 일은 그 배 안에 누군가 있기 때문에 일어난다. 만일 그 배가 비어 있다면 누구도 소리치지 않을 것이고 화도 내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세상의 강을 건너는 내 배를 빈 배로 만들 수 있다면, 아무도 나와 맞서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아무도 내게 상처 입히려 들지 않을 것이다.” 내 배가 비어 있는데도 사람들이 화를 낸다면 그들이 어리석은 것이다. 그러니, 마음을 비워라. 화가 났을 때에도, 화로 대응하지 말고 이를 남의 일처럼 객관화 시켜, 그 빈 자리로 사람들이 자유로이 지나다니게 하라. 돌(石)을 강에 던지면 가라앉지만 / 배(舟)에 싣고 가면 물 위에 뜬다. 내가 돌을 실은 배가 될 수 있다면 / 날아온 돌멩이도 안고 갈 수 있으리 돌보다 크고 넓은 가슴으로 내가 나를 비워 / 너를 태울 수 있다면 가슴 텅 빈 돌 배 하나 너와 함께 강을 흘러갈 수 있으리 - 김동수. 「석주石舟」 전문 비어 있다는 것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없다는 것이 곧 아무것도 아니라는 말이 아니다. 그래서 노자는 “천하 만물은 있음에서 나오고, 있음 또한 없음에서 나온다”(天下萬物生於有 有生於無)하였다. 이와 같이 비워두면 누군가가 채워주기 마련이다. 이것이 세상의 이치요, 천지자연 곧 도(道)의 이치다. 그러기에 비운다(空)는 것은 흔들리면서도(動) 흔들리지 않은 정(靜)이요, ‘있으면서도 비어 있는 없음(有無)의 세계’이다. 화가 나도 가만히 있다 보면 사그라지고, 비어 있어도, 그 비어 있음이 곧 무언가로 채워져 가는 진공묘유(眞空妙有)의 세계, 그것이빈 배의 철학, 곧 공즉시색(空卽是色)의 세계가 아닌가 한다.
/김동수 시인 본지 독자권익위원회 회장 사)전라정신연구원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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