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패의 갈림길, 미성일괴(未成一簣)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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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유하자면 학문은 산을 만드는 것과 같아서 마지막 흙 한 삼태기를 붓지 못해 산을 이루지 못하고 그만둔다면 그것은 내가 스스로 그만둔 것이다.” 공부하는 자세를 산에 비유한 공자의 가르침이다. 무릇 학문하는 자는 그를 이룰 때까지 쉼 없이 정진해야 하지만 마지막 한순간을 견디지 못하고 멈춘다면 마치 한 삼태기의 흙을 채우지 못하여 산을 완성하지 못함과 같다는 경구이다. 땅을 고르는 것 역시 마찬가지이다. 흙 한 삼태기를 부어 진전되었다면 그만큼은 진도가 나아간 것이니 그것도 내가 스스로 성공을 향해 나아간 것이다라고 덧붙인다. 산을 이루느냐 그렇지 않느냐는 내가 붓은 한 삼태기의 흙에 달린 것이라는 ‘미성일궤(未成一簣)’의 고사가 생기는 대목이다. 한 삼태기의 흙이 모자라서 산을 이루지 못한다는 미성일궤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발견된다. 100일을 참지 못하고 굴을 뛰쳐나감으로써 인간으로의 환생을 포기한 호랑이의 조급함이나 거북이와의 경주에서 낮잠 때문에 그만 패하고 말았던 토끼의 자만 또한 이의 다름 아니다. ‘다 된 밥에 코 흘린다.’, ‘다 된 밥에 (스스로) 재 뿌린다.’는 속담도 이와 관련이 된다. 조금만 더 노력하면 산을 완성한다는 미성일궤는 주나라 무왕과도 연관된 경구이기도 하다. 주나라가 상나라를 멸한 후 천하를 통일하여 세력이 막강함을 느낀 주변의 소국들은 여러 방법으로 친교를 꾀하려 든다. 그중에서도 남방의 여 국(旅國)은 오(獒)라는 특이한 외모의 큰 개를 바쳤는데, 키가 넉 자나 되며 사람의 말도 알아듣는 명견이었다. 개에 빠져 애지중지한 무왕을 염려한 사촌 동생 소공은 이를 경계할 것을 당부하는 글을 올린다. 즉, “아 아,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조금도 부지런함이 없어서는 안 되니. 조그만 일이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됩니다. 아홉 길이나 되는 산을 만드는 공도 한 삼태기의 흙 때문에 무너지는 법입니다.” 이와 같은 간언에 정신을 가다듬은 무왕은 정사를 잘 돌봄으로써 주나라 건국 800여 년의 기초를 다졌다. 이 경계 글 중 아홉 길의 산도 한 삼태기의 흙 때문에 무너진다는 ‘위산구인 공휴일궤(爲山九刃 公虧一)’에서 논어의 ‘미성일궤’가 연원했음을 알 수 있다. 또 소공의 조그만 일이라도 신중하지 않으면 큰 덕에 누를 끼치게 된다는 ‘불긍세행 종루대덕(不矜細行 終累大德)’은 오늘까지도 리더의 경구로 자리 잡고 있는 명언이 되고 있다. 이에서 보듯 학문이라는 것은 자기를 위한 것이며 자기 자신이 손수 행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일이기에 목표를 세웠으면 끝까지 책임 의식을 갖고 완성해야 함을 깨우친 가르침이 된다. 해 보지도 않고 차음부터 못 하겠다고 포기하는 염구는 정주영 회장과는 많은 대조를 이룬다. 그는 “해 보자는 말은 없고 온통 포기하자는 의견뿐이다. 임자, 해보긴 해봤어?”라고 독려하며 서산 방조제 끝 물막이 공사를 지휘했던 정 회장은 힘이 있으면서도 스스로 한계를 지어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염구와는 전혀 달랐다. 집채만한 바위도 초속 8m의 급류에 속수무책인 방조제 축조 마지막 구간에 폐유조선을 침몰시켜 급류의 틈을 메우는 사상 초유의 공법은 전 세계를 놀라게 했다. 학문적 지식이나 경험에만 의존하여 “안 됩니다.” “어렵습니다.”라고 하는 건의는 어쩌면 가장 손쉬운 선택인지도 모른다. 그렇지만 그는 해 보지도 않고서 못하겠다고 포기하는 대신 일단 해 보는 그래서 결국 헤 내고 마는 열정 맨이었다. “아무리 작은 일일지라도 시도하지 않으면 이루지 못한다(명심보감).” “군자가 도를 좇다가 중도에 죽게 되어도 나는 그만두지 않겠다(중용).” “남이 한 번에 능하거든 나는 백 번을 행하며 남이 열 번에 능하거든 나는 천 번을 하겠다(중용) “아홉 길이나 되는 우물을 파고서도 수원에 도달하지 않았다고 해서 그만두면 이를 버리는 것과 같다(맹자).” 이런 생각들이 그를 지배하는 힘이 되었을 것임에 분명하다. 자신만의 안일함과 경험에 비춰 판단하면 공든 탑도 쉽게 무너지듯 학문 또한 이와 다를 바 없다. 끝까지 최선을 다하는 시종일관은 일마다 온 힘을 쏟아 끝을 맺으라는 주문이다. 그렇기에 힘써 쌓은 그간의 공을 허문 것도 내가 한 일이고, 그 공을 이룸 역시 내 손에 달린 일이다. 주인 된 책임 의식을 강조한 이 경구에 힘을 얻은 선현들은 학문 성취에 진력할 수 있었다고 한다. 조선 중기의 문신인 김일손은 한유의 문장을 천 번 읽었고, 윤결은 ‘맹자’를 천 번 읽었으며, 차운로는 ‘주역’을 오천 번 읽었고, 유몽인은 ‘장자’와 유종원의 문장을 천 번 읽었다고 한다. 단지 글자를 읽는 것에 지나지 않는 ‘그냥 독서’로는 공부가 되지 않았기에 열 번을 읽어 알지 못하면 백 번을 읽었고 백 번을 읽어도 모르면 천 번을 읽어야 했다. 사서를 풀이했던 주자 또한 “남이 한 번 읽어 알면 나는 백 번을 읽는다. 남이 열 번 읽어 알면 나는 천 번을 읽는다.”는 중용의 구절을 읽는 순간 몸 깊숙한 곳에서 솟구쳐 오르는 강렬한 힘을 느꼈다고 고백한다. “반걸음이 쌓이지 않으면 천 리에 이를 수 없고 실개천이 모이지 않으면 큰 강을 이룰 수 없듯” 꾸준히 노력하지 않으면 뭔가를 이룰 수 없는 것이 세상 이치이다. 특히 구할수록 멀고 어려운 것이 학문이라고 하지만 한 삼태기의 흙이 그 성패를 좌우한다는 미성일궤는 늘 간직해야 할 좌우명이 되어야 한다. 염구 되고 정주영도 되는 나침판이기 때문이다.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0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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