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스승은, 온고지신(溫故知新)上
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맹자는 강조한다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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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들의 병통은 남의 스승 되길 좋아함에 있다” 맹자가 한 말이다. 이런 류의 사람은 스스로 자신을 만족스럽게 여겨서 더 이상의 발전이 없을 것임은 당연하다. 우월감은 남의 부족함만을 볼 뿐 자신에게는 눈을 감게 한다. 그래서 조금도 진전됨이 없을 것이라는 사실이 더 큰 두려움을 준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화하여 다양한 모습으로 다가오니 늘 그를 살펴 연구하고 발전을 꾀해야 하기 때문이다. “스승이란 도를 전하고, 학업을 가르치며, 의혹을 풀어준다. 사람은 나면서부터 아는 게 아니기에 의혹이 많을 수밖에 없고 그 의혹은 스승에게 배우지 아니하면 끝내 풀리지 않는다. 나이의 많고 적음이나 사회적 지위의 높고 낮음을 떠나서 도를 들음이 나보다 앞섰다면 그를 스승으로 삼아야 한다” 한유가 쓴 글 ‘사설(師說)’의 내용이다. 이런 이유로 성인인 공자도 일정한 스승은 없었지만, 모르는 것이 있으면 누구에게나 배웠다. 담자에게 관직 제도를, 장홍에게 음악을, 사양자에게 가야금을, 노담에게는 예를 각각 배웠다. 이처럼 성인도 스승을 좇아 물었는데, 지금의 사람들은 성인에 비교할 바도 안되면서도 스승에게 배우길 부끄러워한다. 성인이 성인 된 이유와 어리석은 사람이 어리석게 된 소이가 모두 여기에 기인함도 한퇴지는 잊지 않는다. 그 무렵 멀리 남쪽 지방으로 유배 중이던 유종원 역시 자신을 스승 삼고자 한다는 관리 위중립의 서신에 그럴 자격이 없음을 답하는 겸손을 드러낸다. 장기간 유배 중이면서 각기병까지 얻은 데다가 道 역시 돈독하지 못하고 학업도 천근함으로 출중한 그대의 스승 노릇을 할 수가 없음을 고백한다. 그러면서도 젊어서는 현란한 문장을 훌륭한 것이라고 여겼었지만 나이가 듦에 따라 文이란 道를 밝히고자 하는 것임을 알았다면서, 여러 가지 유의점과 공부할 책 등을 소개하는 답장을 보낸다. ‘위중립에게 보낸 답장 글(答韋中立書)’의 내용이다. 비록 스승이라는 이름은 사양했지만 터득한 바의 비법을 알려주었으니 이미 스승 노릇을 한 것임은 분명하다. 학문 공부를 확장하여 도를 밝히는 나름의 사도(師道)를 읽을 수 있다. 이와 같이 사람은 사람에 의해 성숙하고 그럼으로써 국가사회의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나를 키워줄 의미 있는 타인(Signifi cant Others)은 언제 어디서나 필요하지만 특히 요즘과 같이 복잡다단한 시대에는 더욱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래서 “신하를 스승으로 삼는 자는 황제가 되고, 스스로 스승을 얻는 자는 왕이 된다”는 옛말도 있었다. “말을 했다고 하면 경전이 되고 일거일동이 법도가 되어서 남보다 뛰어나고 무리에서 벗어나 충분히 성인의 경지에 들 수 있었던 맹자나 순자였지만 쓰임 받지 못한 채 맹자는 천하를 돌다가 길에서 늙었고 순자는 참소로 도피 중에 죽었다” 그만큼 성군과 현상(賢相)이 만나서 태평성대를 이루기가 어렵다는 얘기다. 스승 찾기도 어렵지만 그만큼 참 스승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그러면 어떤 사람을 참 스승이라고 부를 수 있는가? 이에 대해서는 정답이 없다. 그러나 추측은 된다. 남의 스승이 되기 위해선 먼저 자신부터 올바르게 수신한 사람이어야 함은 물론이다. 자신이 바르지 않고서 남을 바로잡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는 여말의 거유 이색의 부친 이곡 선생의 가르침이다. 무릇 스승은 가르쳐서 글을 익히게 하고 교습해서 실천하게 하며 전수해서 바른 마음을 갖게 함인데, 제자가 스승을 통하지 않으면 이를 이룰 수 없음이다. 그래서 “한번 임금의 마음을 바르게 하면 나라가 안정되는 것이다”고 했는데, “오직 대인만이 임금의 마음을 바로잡을 수 있다”고 맹자는 강조한다.
/양 태 규 옛글 21 대표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1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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