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추가포상에 관련하여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18일
|
 |
|
| ⓒ e-전라매일 |
| 세계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체제에 반대하는 세력이 번성했던 사실을 금세 찾아볼 수 있다. 유사 이래 인간은 더불어 살아왔지만 당연히 의견이 다른 세력들이 있기 마련이어서 자기 패거리를 뭉치게 하여 반대 패거리를 억누르는 수단으로 삼아왔던 것이다. 여기서 필연적으로 싸움이 붙을 수밖에 없었으며 권력을 잡는 과정에서 부모형제 간에도 치열한 공방전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른바 골육상쟁이 전개되어 피비린내 나는 투쟁으로 발전했다. 항차 다른 부류는 말해서 뭘 하랴. 여기서 승패가 갈라지면 패자는 재빨리 다른 곳으로 도망치거나 항복하고 승자의 노예로 살게 되는 것이다. 민주주의가 대세가 되기 전에는 대부분 왕조시대였기에 권력세습으로 모든 것이 마감되었지만 왕당파와 비왕당파는 치열한 경쟁으로 당파싸움이 그칠 사이 없었다. 더구나 권력자들은 자기 세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백성으로부터 온갖 가렴주구(苛斂誅求)를 다하여 원성이 높게 마련이었다. 이에 견디다 못한 백성들의 궐기가 창궐했고 이를 부추기는 반대세력이 준동하여 분탕질이 심했다. 특히 군대가 동원되는 사례가 많았기에 관군과 반란군의 전투가 공공연하게 전개되었다. 관군이 이기면 반란군을 진압한 공로를 보상받게 되지만 반란군이 승세를 굳히면 혁명으로 승화한다. 군대의 힘으로 정권이 뒤집히면 쿠데타가 되지만 실패하면 대대적인 숙청과 보복이 뒤따른다. 우리 역사에서도 홍경래의 난과 동학혁명 전봉준의 궐기는 전국의 모든 백성들의 호응을 받았으면서도 훈련이 잘된 관군이나 신무기로 무장한 일본군이 개입하여 참담한 실패로 돌아간 쓰라린 역사가 있다. 박정희의 5.16쿠데타의 성공은 예외적인 것이어서 충분히 제압할 수 있었음에도 장면정권의 무능으로 권력을 헌상하는 이변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1960년 4.19혁명이 성공한 것은 미국의 개입과 계엄군의 자제력이 상호보완 역할을 잘 해줬기 때문으로 판단된다. 특히 이승만의 집권12년 동안 6.25사변과 온갖 정치파동이 나라를 휩쓸었고 영구집권을 꾀하는 자유당의 복심이 3.15부정선거로 치달았기에 민심이 돌아선 때문이었다. 나이 어린 학생들이 일어섰기에 부모들까지도 합세할 수밖에 없었으며 186명의 희생자를 내면서도 꺾이지 않는 학생들의 열기는 세계에 큰 충격을 주며 다른 나라에서도 이를 벤치마킹한 학생운동이 크게 일어났다. 나라마다 스투던트파워의 힘을 중시하게 된 계기다. 4.19혁명은 강원도 산골짜기로부터 제주도 막다른 섬까지 모두 일어난 국민혁명이 되었다. 특히 마산에서의 김주열죽음은 전국을 울음바다로 만들었다. 4.19혁명이 성공한 후 우리국회는 내각책임제로 개헌을 단행하고 해산한 후 새로운 정부가 탄생했다. 야당 민주당은 자연스럽게 집권당이 되면서 장면을 국무총리로 선출했다. 그러나 5.16쿠데타를 제압하지 못하고 군사정권이 생겨 기나긴 독재의 길을 열어줬다. 군사정권은 5.16을 혁명으로 부르며 4.19를 의거로 낮췄다. 그리고 전국 각 학교에 지시하여 4.19공로자를 추천받고 그들에게 건국포장을 수여하여 민주정권을 유린한 강압정권의 색깔을 부드럽게 바꾸려 했다. 이 때 수상한 사람은 대부분 학생조직의 간부들이 차지했으며 학교추천이 유일한 증거였다. 그 뒤 여러 차례에 걸쳐 추가포상의 이름으로 4.19공로자를 포상했으나 그 숫자는 지극히 인색하여 현재 생존자와 사망자를 합쳐도 500명 내외다. 그것은 역대정권이 독립유공자 발굴에는 발분노력하면서도 4.19 발굴에는 큰 힘을 쓰지 않았기 때문으로 생각된다. 다행히 윤석열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4.19묘지를 참배하고 당선인 신분으로도 4.19혁명 62주년 기념식에 참석하여 민주운동의 요람인 4.19혁명을 칭송하면서 공로자의 예우와 신분에 대해서도 정부에서 배려할 것임을 약속했다. 그리고 이번에 2023년 4.19혁명63주년에 포상할 새로운 주역들의 발굴에 나선 것이다. 특히 보훈처를 보훈부로 승격시키기로 여야가 합의한 마당이라 추가포상은 너무나 당연하다. 여기에는 박민식 보훈처장의 강력한 의지도 작용했을 것으로 보인다. 추가포상은 대대적이고 포괄적인 결단이 필요하다. 약1천3백명 정도의 기존신청자가 존재하고 있는데 이들은 모두 4.19당시 큰 역할을 했던 사람들이다. 이들의 나이가 평균 80세를 웃돈다. 재학시절 가장 명예로웠던 혁명아들이다. 4.19는 학생 아니었으면 성공할 수 없었다는 사실을 이번 포상에 반영하기를 확실하게 요청한다.
/전대열 大記者 전북대 초빙교수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18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
|
|
오피니언
가장 많이본 뉴스
기획특집
포토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