척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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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음절 ‘척’은 부사로 한눈에 바로 알아보는 모양을 나타내는 말이다. 예를 들면 ‘그 정도는 척 보면 알 수 있지.’, ‘척 보면 감이 와!’ 등으로 표현한다. 또한 ‘척’은 길이를 측정하는 기본 단위로 촌寸을 기준으로 한 10진위 단위 명이다. 이는 척도에 표시될 수 있는 최대한도의 단위이고, 길이의 표준원기標準原器의 길이로 1치의 10배, 1m의 3분의 1에 해당한다. 1척(=1자)은 후한 시절에는 23cm, 조선 시대에는 31.1cm였다고 한다. 그 후 일제의 국권 피탈과 더불어 곡척曲尺으로 바뀌어 30.30303cm인데 보통 30.3cm로 통용한다. 그 외에도 조선 시대, 소송사건訴訟事件의 피고를 말하는 척隻, 종묘 제례나 문묘 제례의 일무佾舞에서, 무인이 오른손에 잡고 추는 도끼 형태의 무구인 척戚, 친족이 아닌 고종姑從, 이종姨從, 외종外從 따위로 성姓이 다른 겨레붙이의 관계를 말하는 척戚, 배를 세는 단위를 나타내는 의존명사인 척隻 등 동음이어同音異語로 사용되고 있다. 척은 거시적인 측면도 있다. 그것은 지배적인 이데올로기가 떠올랐을 때 사람들이 그것을 따라가고자 한다는 전제에서 시작한다. 사회적 가치관과 자신의 가치관이 합일되는 가치관에 익숙해진 사고는, 부족한 사람으로 보일까 봐 자신을 드러내지 않아 결국 척을 만들어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는 사람임을 보여주고 싶어 한다. 인간관계에서도 ‘척’은 중요하게 인식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 다른 사람들의 시선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는 것이 불가능하다. 이런 현실 속에서 ‘척’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한 세상을 살다 보면 본의 아닌 실수로 남에게 피해를 줄 수 있다. 그런가 하면 마음을 잘못 써 남의 가슴에 못을 박을 수도 있다. 이런 일은 상대에게 천추의 한으로 남기도 한다. 잘못되면 불구 대천 원수가 되어 척을 맺게 된다. 상대와 맺어진 척을 풀기 위해서는 상대를 허물하기보다는 자신을 반성해야 한다. 남을 원망하면 자신의 운명에도 피해를 보기 때문이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고상한 척, 깨끗한 척을 함으로써 가깝게 지내던 사이가 소원하게 된다. 쥐뿔도 모르면서 아는 척하기 때문에 친구들 사이에 싸움이 나고, 잘난 척이 상대의 기분을 상하게 하고, 있는 척 해서 없는 사람과 원한이 생기고, 고상한 척하기 때문에 상대방의 빈축을 사고, 뒤가 구린 사람이 깨끗한 척을 하여 속을 보여준다. 빈 수레가 요란하고 빈 깡통이 시끄러운 것처럼, 인생 5척은 결국 나를 높게 봐달라는 구걸에 불과하다. 5척은 인격 수양이 덜 되고 자신감이 없는 사람들의 전유물이다. 이런 ‘척’들은 요즘 사회의 인간적 속성에서 발생하는 심리적 보상이라고 하지만 비아냥거림을 받는다. 심리적 보상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5척을 꼭 부정적으로 볼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이유는 세상과 사회 환경이 인간과 피드백하면서 발생하는 특성이며 자연 발생적 현상이라고 강조한다. 마음은 그렇지 않은데 ‘척’하는 행동은 자칫 위선으로 보일 수 있다.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느끼는 그대로 표현해야 한다고 말하지만 사람 살아가는 세상에서는 그러기가 쉽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무리를 이루고 살아가는 사회에서 ‘척’은 일종의 의무이자 상대를 위한 배려일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저마다의 책임감을 느끼고 각자의 임무를 수행하면서 살아간다. 젊은이들의 앞에서는 믿음직한 어른인 척, 부하 직원에게는 위엄 있는 상사인 척, 부모 앞에서는 아무 문제가 없는 자식인 척하며 의연한 모습을 보여준다.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주변 상황을 파악하고 분석하고 맞춰 살아야 하기에 ‘척’하지 않을 수 없다. 인생은 길이 단이 ‘척’이 아니다. 복합적이기 때문에 상식이나 법으로만 살아갈 수 없다. 따라서 우리가 갖춰야 할 덕목은 ‘척’이 아니라 겸손이다. 유교가 충효이고, 불교가 자비이고, 기독교가 사랑을 가르치는 것은 겸손하게 살라는 것이다. 하지만 세상은 혼자 살아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척’하는 척하며 살아간다. ‘척은 결국 상대에게 정신적 피해를 입히는 행위이다. 결과적으로 나에게 증오심을 갖게 하고 한을 맺게 한다. 뿐만 아니라 그 연장선상에서 척신의 음해를 입게 되므로 모든 일을 그르치는 장애물이다. 이것이 천지에 가득 차서 세상에 재앙을 내리기도 한다. 상대와 용렬한 시비를 가릴 것이 아니라 마음 수양으로 자신을 다스리면 상대를 교화시킬 수 있다. 언행을 바르게 하면 상대는 감동을 하기 때문이다. 설령 상대가 나를 헐뜯고 비방하더라도 내가 마음을 잘 먹으면 복이 된다. 원래 척慽은 ’근심할 척慽‘으로 마음의 근심이다. 인사人事가 도의道義에 어긋나 원한怨恨이 쌓이고 맺혀 마침내 참혹한 재앙을 만들어낸다. “말 한마디로 천 냥 빚을 갚는다”라는 속담이 있다. 상대를 무시하는 한마디의 말이 능히 천지를 분란케 할 수 있다. 척慽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는 칼이 될 수 있다. 아는 척, 잘난 척, 있는 척, 고상한 척, 깨끗한 척으로 누구와도 척慽지지 마라.
/정성수 시인 |
전라매일 기자 / 00hjw00@hanmail.net  입력 : 2022년 12월 20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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