즐겨찾기+  날짜 : 2026-08-07 03:27:57 회원가입기사쓰기전체기사보기 PDF원격
검색
PDF 면보기
속보
;
지면보다 빠른 뉴스
전자신문에서만 만날 수 있는 전라매일
·17:00
··
·17:00
··
·16:00
··
·16:00
··
·16:00
··
뉴스 > 칼럼

[위대한 유산(2-8)] 시詩 밭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07일
고구마 순을 추어올린다. 우두둑 소리를 내며 마디에 서린 인 연들이 사정없이 뽑힌다. 쇠해지는 귀뚜라미 소리에 까마중도 제 온 곳으로 갈 채비를 하는 텃밭. 수돗간 옆 자두나무의 늦여 름을 갉아먹은 쐐기벌레가 미끄러진다. 내 생의 실타래도 덩달 아 아득한 기억 너머로 미끄러진다.
옆구리를 쏘인 것 같은 통증의 시간. 나는 내 옆구리 갈비뼈 어디쯤 쐐기 한 마리가 오래도록 살았다. 시도 때도 없이 따끔거 리면 그 통증을 잊기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 했다. 아마 그때부 터 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보다는 아버지가 남겨주신 텃밭에 나가 있는 시간이 많아졌던 것 같다. 텃밭에는 철 따라 고추와 호박이, 그리고 잠자리와 귀뚜라미가 벗으로 찾아와 내 통증을 차츰 거두어 갔다. 감나무에 매달린 무거운 호박을 건사하는 가 냘픈 넝쿨손의 옹골참을 보면서 감당하지 못했던 이별에 대한 두려움도 점점 사그라졌다.
‘지나가 버린 일을 헤아려 보네~’ 손전화 컬러링이 텃밭에 울 려 퍼진다. 방아깨비가 더듬이를 들어 낯선 소리를 벗겨낸다. 틀 림없이 교장으로 재직 중인 지인이지 싶다. 토요일만 되면 전화 하는 그는 한시도 가만히 있지 못하는 성격이다. 나는 늘 그에 게 전화를 잘 받지 않는다는 지청구를 듣는다. 다시는 인연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다짐 때문이기도 하지만 특별히 전화가 올 곳도, 기다려지는 전화도 없기 때문인데, 오늘도 그에게 지청구 를 들을 것 같아 휴대전화를 가을볕에 걸어 두었던 터다.
그러나 폴더 폰을 쓸 때는 기다리는 목소리가 있었다. 스마 트폰으로 스마트하게 교체하라고 전화를 해대는 통신사 여성 들의 목소리다. 딱히 여자와 이야기할 기회가 없는 나로서는 그 여성들은 귀한 분이었다. 지금이야 호객 전화인 것 같으면 예고 없이 끊거나 받지 않지만, 그때는 따박따박 대답을 해주었다. 친 절한 내 응대에 처음엔 호감을 갖고 상품 설명을 하다가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알았을 땐 퉁명스럽게 끊거나 아무 말도 없이 전화를 끊어버리곤 했다.
추어올리던 고구마 넌출을 놓고 매화나무에 걸어놓은 전화 기를 향해 간다. 받기도 전에 끊긴다. 액정에 나타난 이는 예상 대로 y 교장이다. 다시 벨이 울린다. 컬러링이 소음으로 들리는 것인지 돌확에 앉아 쉬고 있는 방아깨비가 몸을 돌린다. 가만 바라본다. 저 더듬이 사이로 여름이 머물다 가고 가을이 찾아왔 을 터, 오가는 것에 가슴 아파한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 나간다.
통화버튼을 누른다. “배 선생님, 학생들 시화전을 하는데 선 생님의 시도 몇 편 보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y 교장의 목소리다. 전화를 늦게 받는다며 한소리할 줄 알았 는데 의외다. 긴장했던 귀가 귀뚜라미 소리 뒤끝처럼 순해진다. 그러나 웬걸 끝내 한마디 걸친다.
“아따, 근디 어쩐 일이다요, 전화를 두 번만에 받고?”
“전화기를 매화나무에 걸어 놓고 고구마 순을 추어올리고 있 었습니다.”
“늘 말하던, 그 시詩밭 말이오?”
저물녘 막걸리 한잔하자는 y 교장의 말에 가을볕 서두르는 한나절이다.

/배귀선
시인


전라매일 기자 / 입력 : 2024년 05월 07일
- Copyrights ⓒ주)전라매일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트위터페이스북밴드카카오스토리네이버블로그
 
오피니언
칼럼 기고
가장 많이본 뉴스
오늘 주간 월간
기획특집
귀농·귀촌으로 다시 뛰는 김제, 지역 활력으로 이어지다  
전주비전대, K-컬처 기술인재 양성 AI 실무연수 성료  
도서관, 책을 넘어 사람과 지역을 잇다  
김제, ‘머무름’의 가치를 깨우다… 체류형 관광 이정표 제시  
지역소멸의 시대, 마을의 시간을 기록하다  
정읍시 ‘잘 쓰는 행정’ 선언…재정혁신으로 미래 기반 마련  
고창군, 민선 8기 3년…산업·관광·복지 10대 성과 결실  
김제시, 생활밀착형 자살예방 안전망 확대  
포토뉴스
어반자카파·심수봉부터 AI 판소리까지…전주세계소리축제 `풍성`
2026 전주세계소리축제가 대중음악과 전통예술, 인공지능(AI) 기술을 접목한 다양한 프로그램으로 관객들을 맞는다. 감성 보컬 그룹 어반자카파 
국립민속국악원, 임서연 `강산제 심청가` 완창 무대
국립민속국악원이 판소리 완창의 깊은 멋을 느낄 수 있는 '소리 판' 무대를 마련한다.국립민속국악원은 오는 22일 오후 2시 예음헌에서 소리꾼  
지역 창작연극 `감정거래소` 8일 우진문화공간 무대
전북특별자치도문화관광재단이 지원하는 창작 연극 '감정거래소'가 오는 8일 우진문화공간 예술극장에서 관객들과 만난다.이번 공연은 전북문화관광재단 
백정신 센터장 ˝청년들이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문화공간 만들겠다˝
삼천생활문화센터가 청년들의 취향 탐색과 문화예술 활동을 지원하는 프로그램 '오늘은 딴짓 좀 하겠습니다 : 기지개 기록'을 운영하며 참가자를 모 
전주문화재단 공연예술지원 선정작 `전주-무경` 무대 오른다
전주문화재단의 2026 공연예술지원 사업 선정작인 '박현희 무브먼트'의 창작 한국무용 공연 'RETURN-전주-무경(舞景)'이 오는 8일 전주 
편집규약 윤리강령 개인정보취급방침 구독신청 기사제보 제휴문의 광고문의 고충처리인제도 청소년보호정책
상호: 주)전라매일신문 / 전주시 완산구 서원로 228. 501호 / mail: jlmi1400@hanmail.net
발행·편집인: 홍성일 / Tel: 063-287-1400 / Fax: 063-287-1403
청탁방지담당: 이강호 / 청소년보호책임자 : 최미숙 / 정기간행물 등록번호: 전북,가00018 / 등록일 :2010년 3월 8일
Copyright ⓒ 주)전라매일신문 All Rights Reserved. 본지는 신문 윤리강령 및 그 실요강을 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