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 을사년 신년 국악과 함께 대마도 역사 탐방
이광현 기자 / 입력 : 2025년 02월 02일
전북지방법무사회(회장 이형구)는 우리땅 찾기 운동의 일환으로 구성된 역사탐방단 시민단체 회원들과 함께 2025년 1월 31일 우리땅 대마도 역사 탐방기회를 가졌다.
이 역사탐방단은 2025년 1월 31일 전국에서 함께하기로 한 회원들과 부산국제여객터미널에서 집결하여 9시10분 정기쾌속선 니나호에 승선하여 1시간 50분만에 불과 49.5㎞ 밖에 떨어져 있는 대마도에 도착하여 탐방일정으로 제일 먼저 대마도 최북단에 있는 한국전망대를 방문하였는데 선명하게 눈에 들어온 부산시를 바라보고 모든 회원들은 지금까지 대마도가 이렇게 가깝게 있는지를 오늘에서야 확인하고 만감이 교차함을 느꼈다. 이 전망대 바로 옆에 조선시대에 대마도를 방문하다 풍랑으로 묵숨을 잃은 역관사 108명을 추모하기 위하여 세워놓은 조선국 역관사 수산지비 앞에서 참배를 마치고 남쪽으로 이동하면서 임진왜란 당시 선발대인 고니시 유키나가가 왜군 18,700명과 왜선 700척으로 1592년 4월 13일 출발하였던 오우라항을 직접 목격하였으며, 백제근초고왕대인 서기 346년에 미개한 일본인들에 최초로 학문을 전수하여 오늘날의 일본 학문이 있게 한 백제국 왕인박사 현창비와, 덕혜옹주의 결혼봉축비, 수선사에 들려 애국지사 최익현 순국비에 참배를 하였다.
또한 한글을 수백년전부터 가르쳐왔던 한어학소, 부산 앞 바다에서 대마도까지 떠내려간 어부들을 보호하였던 표민옥적의 흔적, 백제에서 건너간 1,500년된 은행나무, 러일전쟁에서 소련의 발틱함대가 전멸한 노도자키 해변, 1607년부터 1811년까지 일본에 조선의 모든 문물을 전해주었던 조선통신사를 접대하기 위하여 3,000명이 머물기 위하여 세워진 건물의 자리인 조선통신사접우노지비 등을 탐방하였다. 이 터는 대마도에 13곳에 세워져있다. 이 번 역사 탐방팀에는 덕혜옹주결혼봉축비앞에서 덕혜옹주의 한 많은 이국땅의 삶의 위로하기 위하여 회원 중에 대금연주자와 고전무용인 우리춤 보유자가 있어 현장에서 진솔한 무대를 마련하여 잔잔한 감동을 주었고 많은 탐방객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갈채를 받았다.
한편 대한민국 대마도 반환운동본부 의장이기도 한 연구원 이사장 이형구는 우리 땅 대마도의 반환 등에 관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제1세미나의 주제는 세종대왕은 “왜구들이 고려말부터 당대까지 무려 250여 차례의 아국 도서벽지를 침범하여 백성을 살해하는 등 그 피해가 극심하여 그들의 본거지인 대마도에 1419년 이종무 장군을 보내 대마도를 거점으로 활약하는 왜구들을 토벌하였다. 그 다음해인 1420년에 대마도 8대도주 종정성으로부터 신하의 도리를 다하겠다는 맹서를 받아들이고 도주명칭을 태수로 봉하고 관인과 관직을 하사하여 조선 500년 동안 조선의 땅으로 관리를 하였다는 조선실록과 조선 영토로 표기된 지도 등의 자료가 차고 도 넘친다.”고 하면서 대마도는 1868년 명치유신으로 이유 없이 강탈당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대한민국의 부속도서라고 말했다. 또한 “대한민국 초대 이승만 대통령은 1948년 8월 18일 정부수립 3일 후 9회에 걸쳐서 일본에게 대마도 반환 촉구 성명을 하였으나 그 후 어느 대통령도 반환 요구를 한 바 없다.”고 하면서 이제는 국민 모두가 나서서 반환운동에 나서야 할 때라고 강조하였다. |
이광현 기자 /  입력 : 2025년 02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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