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대의 비극 미당未堂 서정주徐廷柱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5월 06일
정성수 본지 논설위원/명예문학박사
1944년 12월 9일, 매일신보에 실린“아아 레이테만은 어데런가/ 언덕도/ 산도/ 뵈이지 않는/ 구름만이 둥둥둥 떠서 다니는/ 몇천 길의 바다런가”로 시작하는 미당 서정주(1915년∼2000년)의 시“마쓰이 오장伍長 송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가장 아프고도 역설적인 장면 중 하나다. 가미카제로 산화했다는 조선 청년 인재웅印在雄을 향해 "장하도다"라고 외쳤던 시인의 음성은 해방 후 군신軍神이 살아 돌아왔다는 충격적인 사실 앞에서 갈 길을 잃고 박제가 되었다. 이를 두고 많은 이들은 서정주를 친일파로 규정해 그의 문학적 성취마저 부정하고 있는 현실이다. 그러나 역사의 격랑 속에서 한 개인, 특히 예민한 촉수를 가진 시인이 겪어야 했던 시대적 한계와 그가 일구어낸 독보적인 예술적 금자탑을 분리하여 바라보는 균형 잡힌 시각이 절실하다. 우리는 이제 감정적인 매도를 넘어, 시적 완성도와 시인으로서의 역량에 집중하는 긍정적인 마인드로 서정주를 다시 읽어야 한다.
당시의 상황을 반추해 보면, 1940년대 중반은 일제의 압제가 극에 달했던 암흑기였다. 지식인과 문인들에게 가해진 전향의 압박과 협박은 회유 수준을 넘어 생존 그 자체를 위협하는 칼날이었다. 서정주가 마쓰이 오장을 기리는 시를 쓴 배경에는 일제의 정교한 선전 선동과 강압적인 동원 체제가 자리한다. 당시 총독부의 검열 아래 글을 써야 했던 문인들에게 거부란 곧 문학적 사형 선고이자 육체적 소멸을 의미했다. 마쓰이 오장의 전사 소식처럼 조작된‘영웅 서사’에 기만당해 그것이 비극적 민족사의 한 단면이라 믿고 붓을 들었던 지식인의 고뇌를 단순히 기회주의라는 낙인으로 단죄하기에는 역사의 무게가 너무나 가혹하다. 그가 적극적인 악의를 품고 민족을 배신했다기보다는, 시대의 광풍 속에서 한 인간으로서 느꼈을 공포와 무력감에서 비롯된 어쩔 수 없는 방어적 선택이었음을 우리는 이해의 범주에 두어야 한다.
친일 행적이라는 짙은 그림자에도 불구하고 서정주가 우리 현대 시사에서 차지하는 위상은 가히 독보적이다. 그는 우리말이 가진 잠재력을 극치로 끌어올린 언어의 연금술사였다. 그의 초기작“화사집花蛇集)”에서 보여준 강렬한 생명력부터 중년 이후의 불교적 성찰과 신화적 상상력에 이르기까지, 서정주는 우리 민족의 영혼 깊숙이 자리한 한恨과 풍류를 세련된 현대적 문법으로 재창조했다. 그가 조탁한 시어들은 토속적인 생명력을 잃지 않으면서도 보편적인 예술성을 획득하고 있다. 특히“눈이 부시게 푸른 날은 그리운 사람을 그리워하자”는 구절이나“한 송이 국화꽃을 피우기 위해 소쩍새는 그렇게 울었나 보다”와 같은 표현들은 우리 말의 결을 섬세하게 살려낸 유산이다. 이러한 문학적 성취를 정치적 과오와 동일시하여 매장하는 것은 우리 민족의 언어적 자산을 스스로 불태우는 행위와 다름없다.
마쓰이 오장이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은 서정주의 친일 시가 신기루였음을 증명하지만, 역설적으로 이는 시대의 광기에 농락당한 희생자였음을 방증한다. 존재하지 않는 죽음을 노래해야 했던 시인의 처지는 식민지 지식인이 짊어져야 했던 비극의 정점이다. 이제 우리는 그를 친일파라는 프레임에 가두어 매도하기보다, 비극적 시대를 온몸으로 통과하며 언어의 꽃을 피워낸 거장으로 예우해야 한다. 그의 잘못을 역사의 거울로 삼아 경계하되, 그가 남긴 시적 완성도는 민족의 자존심으로 계승하는 긍정적 분리가 필요하다. 시인의 영혼이 빚어낸 문장들은 시대의 고통을 자양분 삼아 피어난 언어의 승리이기 때문이다.
긍정적인 마인드로 서정주를 바라본다는 것은 그의 잘못을 덮어주자는 것이 아니라, 잘못조차 품어 안을 만큼 위대했던 그의 시의 세계를 인정하는 용기를 의미한다. 비판은 짧고 강렬하지만, 예술이 주는 감동은 길고 영속적이다. 서정주의 구축한 독창적인 시 세계와 우리 말에 부여한 생명력은 오늘날 우리 문학의 든든한 뿌리가 되었다. 시인은 인간으로서 완벽할 수 없었으나, 그가 남긴 시는 인간의 한계를 뛰어넘어 영원한 생동감을 얻었다. 그가 천착했던 영겁의 시간과 생명의 근원을 노래한 시들을 통해 여전히 깊은 철학적 위로를 얻는다.
서정주를 향한 날 선 비난보다는 그가 도달한 문학적 높이를 경청하고 그 가치를 보존하는 태도가 성숙한 문화 민족의 자세일 것이다. 군신은 없었으나 시는 남았다는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정치는 덧없고 권력은 유한하지만, 진정한 예술은 시대의 얼룩을 닦아내고 살아남는다. 서정주라는 이름은 친일의 상처보다 우리 언어를 아름답게 그려낸 시인으로서 기억되어야 마땅하다. 그가 짊어지고 가야 할 것을 역사의 장에 남겨두고, 그의 빛나는 시어들을 마음껏 향유해 우리 문학의 저력을 확인해야 한다. 그것이 비극적인 역사를 극복하고 미래로 나아가는 품격 있는 방식이자, 한 시인을 향한 진정한 예우다. 시인은 가고 시만 남는 것이 시인의 숙명이라면, 남겨진 그의 시에 집중하여 문화적 긍지를 드높여야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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