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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숲길에서 배우는 조화와 기도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9월 02일
최인숙 아동문학가

이른 아침, 시작 기도로 하루를 연다. 묵주를 손에 들고 주모경을 읊조리며 아파트 둘레길로 천천히 걸음을 옮긴다. 어느새 나를 감싸는 것은 신선한 공기와 고요한 숲의 숨결이다. 오랫동안 몰랐던 길, 우연히 발견한 이 산책로는 내 일상의 귀한 선물이 되었다.
주민들에게 불편함을 주지 않도록 외곽으로 조성된 이 오솔길을 처음 발견한 것은 교수직을 퇴직하고도 1년이 지나서였다. 오랫동안 살아온 아파트 울타리 안에 이렇게 아름다운 길이 숨어 있으리라곤 단 한 번도 생각하지 못했다. 리드미컬하게 펼쳐진 숲길의 다양함은 발걸음을 가볍게 해준다. 촘촘히 박힌 작은 벽돌길을 들어서면 듬성듬성 묻어놓은 크고 작은 네모 돌판길이 있다. 걷다보면 기하학적 무늬로 즐거움을 더해주는 대리석길이 나오고, 격자나무아치가 관문 통과를 환영하듯 곳곳에서 맞이해주며, 오르락내리락 작은 언덕을 편하게 발을 옮길 수 있게 해주는 통나무길의 따스함도 고맙다. 사이사이 발끝에서 촉촉한 흙을 느끼게 하는 흙길, 그리고 잠시 쉬어갈 수 있는 벤치와 운동 기구 까지. . ., 섬세하게 설계된 이 숲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나는 감사가 절로 나온다. 이 숲길을 디자인한 이가 누구든, 그는 분명 따뜻하고 세심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리라.
오솔길 양옆에는 키 큰 나무에서 작은 풀꽃까지 질서와 조화를 잘 이루며 살아가고 있다. 많은 식물이 풍부하게 갖추어진 야외 식물원이다. 고개를 들어 올리면 눈을 사로잡는 예술의 소나무와 우람한 떡갈나무가 멋스럽게 시야를 채우고, 시선을 낮추면 질경이, 씀바귀, 민들레, 달맞이꽃이 다정하게 인사를 건넨다. 이곳저곳 자리를 지키고 있는 살구나무, 감나무는 새들과 벌레들에게 양식을 제공하고 있다.
숲길에서 유난히 많이 보이는 보랏빛 맥문동은 걷는 이의 품격을 높여주는 듯하다. 꼿꼿하게 솟은 꽃대는 흐트러짐 없는 자태를 오래도록 지켜낸다. 처음엔 짙은 보랏빛만 보였으나, 보고 또 보고 하니 이제 막 자라고 있는 여린 연분홍에 가까운 꽃, 조금 더 자라 연보랏빛을 띠는 꽃까지, 생명의 여정이 층층이 펼쳐져 있다. 순간 나는 속삭이듯 감탄한다. “아, 맥문동은 이렇게 자라는구나!”
숲길은 눈으로만이 아니라 귀로도 빛난다. 지휘자 없는 오케스트라가 숲을 선율로 가득 채운다. 검은댕기 해오라기가 “꺄악” 소리 내어 합창의 문을 열면, 까치가 “깍깍깍” 화음을 넣고, 참새가 “짹짹” 경쾌한 음을 얹는다. 매미는 한여름의 애잔한 리듬으로 가슴을 울리고, 풀벌레는 “찌르르, 쓰르르, 치익” 현악기처럼 잔잔한 배경 음악으로 손색이 없다. 그 사이에 나지막한 기도 소리가 더해지면 숲은 완벽한 합창 교향곡으로 감동을 전한다. 누구 하나 혼자서 독차지하는 소리는 없다. 다만 서로 어울려 한 곡의 조화를 이룬다. 당연히 청중은 숲을 가득 메운 푸르른 나무, 풀, 꽃들이다. 말없이 감상하는 모습이 사뭇 진지하다.
이렇게 멋진 자연의 음악회를 누가 지휘 하고 있다는 것인가! 기도와 함께 그 장엄한 힘이 큰 믿음으로 승화되는 순간이기도 하다.
가끔 반려견을 데리고 나온 사람들을 만난다. 주인의 취향에 따라서 눈처럼 하얗고 귀여운 ‘말티즈’, 갈색 털이 복슬복슬한 ‘포메라니안’, 작고 큰 눈을 가진 ‘치와와’, 묵직한 눈매의 ‘시추’ …, 종류도 다양하다.
강아지와 함께 걷는 사람들의 걸음도 제각각이다. 어떤 이는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앞에서 걸어가니 반려견이 계속 비틀어진 목으로 끌려간다. 어떤 이는 목줄을 잡고 있지만 뒤에서 강아지가 가면 따라가고, 강아지가 멈추면 서 있고, 딴 짓하면 그대로 뒤에 서서 차분히 기다리고 있다. 가다 멈추기를 수도 없이 반복하며 강아지의 자유를 존중하고 있는 모습을 보면서 나는 문득 깨닫는다. “주님께서 우리를 이끄시는 모습도 이와 같지 않을까?” 하고. 우리를 앞서 끌고 가지도, 성급히 밀어붙이지도 않고, 그저 곁에서 기다리며 함께 걸어주시는 모습 말이다.
다른 사람을 배려하는 모습도 다르다. 어떤 이는 지나는 사람이 놀라지 않고 지나갈 수 있도록 잠시 반려견을 데리고 한쪽으로 피해주는가 하면, 어떤 이는 그 좁은 길에서 강아지가 낯선 사람에게 “컹컹”하며 달려들어 놀라게 하는 경우도 있다. 잠시 스쳐 지나가는 짧은 만남에서 여러 가지를 느끼고 배운다.
둘레길 한 바퀴는 30분 남짓, 두 바퀴를 돌면 한 시간이 된다. 처음엔 힘차던 발걸음도 시간이 흐르면 점차 느려지고, 땀이 송골송골 맺힌다. 그러나 기도 주모경은 어느새 60회가 채워진다. 마지막 기도를 드리며 집 안으로 들어서면 하루가 새롭고 귀하다. 기도의 향기와 자연의 풍광이 어우러진 아침, 그 순간은 내게 가장 진실한 감사와 충만한 은총이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입력 : 2025년 09월 02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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