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을 담다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21일
유인봉 시인 / 수필가
섬에 가고 싶었다. 파스텔빛으로 끝없이 가슴을 열어젖힌 바다, 수평선이 아득하게 펼쳐지고 파도가 바다를 돌돌 말고 와서 하얀 물보라를 부리고 달아나는, 드문드문 포구가 파도에 지친 고깃배를 품어 주는 아늑함과 비릿한 갯비린내까지. 각박한 도심에서 찌든 마음을 떨어내고 쉼을 얻기에 딱 좋은 곳이 바닷가이다.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나 심란함을 떨쳐 버리고 싶을 때는 바다를 찾는다. 그중에서도 남해의 섬들이 좋다. 삼천포항을 마주 보고 쪽빛 바다 위에 평화롭게 떠 있는 섬, 벼르고 벼르던 신수도를 찾았다. 뱃길이 열리는 선착장, 터널처럼 생긴 천막 좌우로 어전이 즐비하게 자리를 잡고 있다. 수조마다 싱싱한 바다가 팔딱거린다. 민어, 도미, 전어, 병어, 오징어까지 바다가 통째로 뭍에 올라와 있다. 방파제 마당에는 채반에 마른 생선들이 몸을 잔뜩 웅크린 채 누워 있다. 배를 열어젖히고 눈을 부릅뜬 채 꼬들꼬들 물기를 말리며 생을 마감하는 중이다. 아침 선착장에는 섬으로 들어가는 주민들이 보따리와 생활용품을 담은 장바구니를 들고 배를 기다리고 있다. 섬으로 들어가는 보건소 직원도 있고 파출소 직원도 눈에 띈다. 출근길인 모양이다. 배가 들어오고 하나둘 배에 오른다. 배가 출항을 시작하는데 멀리서 소리를 지르며 달려오는 지각 손님들도 있다. 선장이 친절하게도 다시 접안을 시도하고 지각 손님을 태우는 넉넉함을 보인다. 배 시간은 하루 여섯 번에서 코로나19로 방문객이 줄어들면서 세 번으로 줄었단다. 뱃머리가 섬을 향해 물살을 가르기 시작한다. 물결이 잔잔하고 바다색은 진청색이다. 공원 언덕 풍차 머리 전망대가 빨간 머리 모자를 쓰고 바다를 바라보며 서 있다. 이국적 풍경이다. 유럽 항구에 와 있는 착각을 하게 한다. 남해와 사천을 잇는 삼천포대교가 하늘로 솟은 두 다리 교각에 의지한 채 섬과 뭍을 이어준다. 다리를 통해서 길과 길이 이어지고 섬과 뭍이 이어지고 있다. 아치형 둥근 머리 붉은 교각도, 케이블카도, 순환버스도 붉은색이다. 검푸른 바다와 빨간빛 등대까지 잘 어우러진 동화 속 그림 같다. 뱃고동이 신수도 선착장을 알린다. 뭍으로 나오는 아침 손님들이 줄을 서 있다. 고구마 상자가 즐비하다. 해풍을 맞고 자란 섬 고구마가 유명한가 보다. 크고 작은 보따리도 따라나섰다. 시장으로, 어느 가게로, 아니면 먼 곳 친척이나 자식들에게 보내지리라. 나루터에서 내려 선착장 끝을 돌아 작은 논골과 큰 논골을 거쳐 대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을 걷는다. 겨울 초입이라 바닷바람이 차다. 논골을 돌아가는데 공공근로 나온 구부정한 노인들이 방파제를 등지고 따뜻한 양지쪽에 앉아 한기를 피하고 있다. 늦가을 햇살 아래 도란도란 대화를 이어간다. 논골을 감아 도는 방파제 콘크리트 벽에 바다를 향해 이름 모를 나무 한 그루가 단단한 틈 속에 뿌리를 내리고 온몸으로 바람을 받아내고 있다. 어떻게 저 단단한 콘크리트 틈새에 뿌리를 내렸을까. 몸통이나 키를 보니 족히 십수 년은 넘었겠다. 왕가산과 대왕가산으로 이어지는 허리 잘록한 대구항으로 향하는 개미허리 입구에 새로 이사 온 듯 보이는 낡은 정자가 나그네에게 자리를 내어 준다. 발밑까지 파도가 밀려와 젖은 몸을 뒤집고는 하얗게 포말로 부서진다. 오두막 몇 채 남은 대구마을, 작은 파도 소리만 들릴 뿐 기척이 없다. 모두 바다로 나간 것일까? 잘록한 개미허리 방파제 너머로 동글동글한 몽돌 해변이 펼쳐진다. 수없이 많은 파도의 혀가 닦아낸 둥근 머리들, 그때마다 돌들은 차르르, 차르르 등 비비고 울었을 것이다. 누군가에게는 에메랄드빛 노랫가락으로 들렸을지도 모른다. 섬 중턱까지 집터가 곳곳에 흔적으로 남아 있다. 옛적에는 많은 사람이 살았겠다. 처마가 바닥에 코를 대고 있는 묵은 집 마당에는 잡풀이 무성하다. 집터로 보이는 손바닥만 한 마당이 누군가 살았을 거라는 흔적으로 남아 있다. 바닷바람을 막아 주던 키 낮은 돌담조차도 무너져 내려 구멍 숭숭 바람만이 집 안을 들락거리고 있다. 사연을 품고 있는 대구마을을 뒤로하고 몽돌을 지나 에베미를 돌아 나선다. 오솔길은 산으로 이어지고 다랑다랑한 고구마밭과 아직도 푸른빛이 돌고 있는 고사리밭이 층층이 어깨를 맞대고 있다. 얼마만 한 세월을 견디었을까? 팔뚝만 한 가시오가피나무가 제 몸에 창끝 같은 대못을 박고 서 있다. 고행을 자처한 수행 중일까? 아니면 전생에 대역죄를 지어 천형을 치르고 있는 것일까? 질푸여산 허리를 가로질러 염식개 해안도로로 접어든다. 사람들이 모여 사는 신수본동 마을과 가까운 탓인지 산자락마다 모두 경사진 밭들로 이어져 있다. 섬 머리까지 집들이 올라와 있다. 고구마 수확이 한창이다. 내 고향 어머니처럼 호미질이 한창이다. 관리기로 힘을 보태는 모습도 눈에 띈다. 길가에는 그물망에 담긴 갓 캐낸 고구마가 즐비하다. 상품성이 낮은 고구마는 납작하게 잘라 그물망을 깔고 절간고구마로 변신 중이다. 주정 원료나 환자나 아이들의 죽을 만드는 가공 원료로 쓰인단다. |
전라매일관리자 기자 / jlmi1400@hanmail.net  입력 : 2026년 06월 21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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